노인요양보험 준비 부실…시범대상 35% ‘외면’
복지부, 8곳 시범사업…65살 이상 2%만 혜택
전문가들 “서비스·시설 부족해 불신 확산우려”
정세라 기자 김양중 기자 신소영 기자
» 요양보험 등급 실태 및 미이용 사유 현황
보건복지부가 내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전면 실시를 앞두고 지난해부터 일부 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벌였으나, 대상자의 30% 가량이 서비스를 외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한겨레〉가 입수한 보건복지부 회의자료 등을 보면,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경기도 수원 등 8개 시·군·구에서 7678명이 보험적용 등급을 받고도 4314명만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사망·이주 등으로 보험에서 빠진 인원을 빼면, 등급 유효 대상자 6637명 가운데 35%인 2323명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은 셈이다. 복지부는 이번에 처음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일반 노인을 대상으로 요양보험을 적용했다. 결국 해당 지역 65살 이상 노인 20여만명의 2%만이 보험 혜택을 받은 셈이다.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이용 실적 부진 원인으로 우선 ‘요양보험 준비 부실’과 ‘경제적 부담’을 꼽는다. 이용자들의 욕구는 다양한데, 서비스 종류는 제한적이고 시설 등 인프라도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이용자들 75.9%는 가족이 수발을 계속하거나 서비스 이용을 일단 미뤄놓아 서비스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고양곤 강남대 석좌교수(사회복지)는 “미이용자 35%는 적지 않은 숫자로 이들 대부분은 이용을 포기했다고 봐야 한다”며 “보험 자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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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은 치매, 중풍,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자의 간병·요양을 개인과 사회가 함께 분담하는 제도다. 간병이 필요한 65살 이상 노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보험급여를 신청해 1~3등급 판정을 받으면, 총비용의 15~20%를 본인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내년 보험 혜택 범위를 15만8천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모든 건강보험 가입자들은 다달이 2700원 정도의 요양보험료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 치매에 걸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서비스를 신청한 최구용(72·오른쪽)씨가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 집으로 찾아온 수발요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 수원/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준비 실태 들여다보니
요양보호사·행정인력 확보 ‘물음표’
법안 국회서 낮잠…‘충분 타령’
시설 미비·지역 불균형 불보듯
최구용(72·경기 수원시 지동)씨는 뇌경색과 파킨슨병으로 인한 치매를 앓고 있다. 최씨는 ‘노인장기요양보험’ 1등급으로 주중에 수발요원이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요양’을 받는다. 하지만 최씨 가족은 이런 혜택을 포기할까 고민 중이다. 지금의 서비스로는 일상이 힘겹기 때문이다.
장기요양 1등급은 한달에 110시간의 방문요양이 허용되지만, 실제는 하루 4시간씩 20일치 80시간만 사용하고 있다. 하루 4시간이 한도이고, 주말엔 서비스 요원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5~6곳 요양시설을 둘러보기도 했지만, 중증 환자라서 입소를 거절당했다. 아침에 데려가 저녁에 집으로 데려다 주는 주간보호시설도 경증 환자 위주인데다, 이미 만원이다.
며느리 박아무개(49)씨는 “현재 요양보험 서비스는 제한도 많고 맞춤한 요양시설도 없어서 어차피 가족 누군가가 환자 수발에 매달려야 한다”며 “요양보험 혜택을 포기하고 월 150만원을 100% 자비 부담하는 치매전문병원을 택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내년 7월 전국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시범사업에 참여한 시·군·구 현장에서는 ‘준비 부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부족한 전문인력=요양보험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장기요양요원’(요양보호사 등)과 행정인력 등 전문인력 확보가 필수다. 적정 교육도 뒤따라야 한다. 복지부는 내년까지 일선에서 노인을 수발할 요양보호사 4만8천명을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법적 근거인 노인복지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1~2차 시범사업에 참여한 수원재가복지센터의 박희숙 요양팀장은 “열 명이 노인 수발 교육을 받아도 일이 생각보다 힘들고 보수가 적어서, 실제 남아 활동하는 사람은 두셋 정도”라며 “행정당국은 교육을 거쳐간 명단만 쥐고 ‘인원이 충분하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 행정인력 부족도 요양보험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장재혁 복지부 노인요양제도팀장은 “노인의 요양등급을 판정하러 방문조사를 다닐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등 관련 행정인력이 2300여명 필요하다”며 “건강보험공단의 인력 1천여명을 전환 배치하고, 나머지 1천여명은 간호사 등으로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정미 복지부 보험정책팀장은 “사회보험징수공단이 만들어져야 보험공단의 인력을 노인요양으로 돌릴 수 있는데 관련 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고 했다.
» 정부의 2008년 요양보험 시설확보 계획 혼선 추이
■ 시설도 불균형=복지부는 내년까지 입소 요양시설과 방문요양 등 재가서비스 시설을 확충해 요양보험 수요를 100% 충족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인프라의 질적·양적 불균형이 심각해, 100% 인프라 확보는 ‘허풍’이라고 말한다.
복지부도 지방재정 부담이나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의지 부족으로 지역간 시설 배치의 불균형 등이 예상되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원에서 요양보험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창호 사회복지사는 “전체 숫자만 채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행정당국은 주간보호소 이용 희망자가 20명이면 시설 한 곳으로 해결된다고 계산하지만, 20명이 중증·경증 치매, 중풍 환자로 각각 서비스 욕구가 다르면 한 곳에서 해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요양시설과 재가서비스 시설의 비중을 놓고 오락가락하고, 민간과 공공의 참여 비율도 갈피를 못잡는 등 정책 혼선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라 김양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