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發 의료개혁’…시작부터 ‘비틀비틀’
의료계-시민사회 “개정 의료급여법 거부하겠다”
2007-07-02 오후 2:34:27
7월 1일부터 적용되는 개정 의료급여법이 의료계,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빈곤층이 병ㆍ의원을 이용할 때 수천 원의 본인 부담금을 물도록 한 개정 의료급여법은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이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강력하게 추진했던 정책이다.
대한의사협회 “개정 의료급여법 거부…돈 안 받고 빈곤층 치료할 것”
대한의사협회는 1일 ‘의료급여 환자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 “개정 의료급여법의 본인 부담금 제도는 환자 여러분이 최선의 진료를 받아야 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대한의사협회는 이렇게 환자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는 제도를 전면 거부하고 모든 1종 의료급여 환자를 기존처럼 본인 부담금 없이 무료 진료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는 의료급여 환자의 병ㆍ의원 이용이 많아 재정에 부담이 간다며 환자의 병ㆍ의원 이용을 감소하는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며 “이 정책은 정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빈곤층의 병ㆍ의원 이용을 환자, 의사에게 부당하게 떠넘기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개정 의료법 거부 이유를 밝혔다.
애초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로 지정을 받은 103만2000여 명의 빈곤층은 병ㆍ의원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 의료급여법은 본인 부담금이 월 6000원을 넘을 경우 환자가 돈을 내도록 규정하고, 이들에게 건강생활유지비 명목으로 매달 6000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지급되는 월 6000원은 의원을 한 달에 4번밖에 방문할 수 없는 금액이다(의원 1000원, 약국 500원).
현재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대개 월 30만 원 안팎의 돈으로 생활을 영위한다. 더구나 이들 대다수는 국민건강보험 수급권자와 비교했을 때, 각종 질병을 앓는 경우가 많아서 병ㆍ의원 이용이 훨씬 많다.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이런 상황을 두고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의료쇼핑’ 탓에 재정에 부담이 간다”며 의료급여법 개정을 강력히 추진했었다.
시민ㆍ사회단체는 헌법소원…”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법”
의료급여법 개정을 앞장서 반대해온 시민ㆍ사회단체도 2일 개정 의료급여법을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반대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인권운동사랑방, 참여연대 등 시민ㆍ사회단체는 이날 오전 성명을 내 “의료급여법 개정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건강생활유지비라는 명목으로 매월 지급되는 6000원은 다양한 질병을 앓는 빈곤층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는 매월 2~3회만 의료기관을 이용하라는 협박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월 30만 원으로 생활하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병ㆍ의원을 이용할 때 부담하는 월 1000~2000원은 아주 큰 금액”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단체는 개정 의료급여법의 선택 병ㆍ의원제도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상 ‘강제 지정’ 병ㆍ의원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 의료급여법은 규정된 의료급여 일수를 초과한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병ㆍ의원을 지정하고 있다. 불필요하게 여러 병ㆍ의원을 이용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시민ㆍ사회단체의 해석은 다르다. 이들은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여러 병ㆍ의원을 이용하는 것은 복합질환을 앓는 그들의 처지를 염두에 두면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 단체는 “복지부는 이런 사정을 외면하고 지정된 병ㆍ의원 외의 진료는 의뢰서 없이는 절대 받을 수 없도록 했다”며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악법”이라고 덧붙였다.
인권위도 ‘반대’했던 법…유시민 전 장관은 ‘자극적’ 예까지 들며 ‘강행’
이 개정 의료급여법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조차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15일 건강권과 같은 사회권에 침묵해온 관례를 깨고 이례적으로 “개정 의료급여법은 빈곤층의 병원 이용을 일률적으로 제한해 건강권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 의견을 냈었다(☞ 관련 기사 : “인권위 반대 의견 뭉갠 ‘유시민式 의료급여 개혁’”).
그러나 이런 국가인권위원회의 반대 의견에도 복지부는 “본인 부담금이 월 2만 원을 초과하면 초과 금액의 50%를, 5만 원을 초과하면 초과 금액의 전부를 부담해주기 때문에 빈곤층의 실제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급여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의료급여 제도의 개선이 불가피하다”며 의료급여법 개정을 강행했다.
한편,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2006년 10월 ‘의료급여제에 대한 국민 보고서’라는 15쪽 분량의 글을 발표해 의료급여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었다. 특히 유 전 장관은 이 주장을 위해 “1년에 병ㆍ의원을 2287회나 드나드는 수급권자”와 같은 자극적인 사례를 들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시민ㆍ사회단체는 “전형적인 침소봉대”라고 유 전 장관을 비판했었다(☞ 관련 기사 : “유시민 장관, 당신의 기회주의가 슬픕니다”).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