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미 쇠고기 수입중단 않고 해명기회 제공, 국제·국내법 근거 없다

미 쇠고기 수입중단 않고 해명기회 제공, 국제·국내법 근거 없다

WTO협정 “사후에 요구”
농림부고시 규정 자체 없어
시민·정치권 “수입중단을”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금지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미국 쪽 해명을 먼저 듣기로 한 것은 국제법이나 국내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는 등골뼈(척추) 같은 위험물질이 발견되면 바로 수입을 중단시킨 뒤 해당 수출국에 해명 기회를 주는 게 법에 맞는다고 지적한다.

3일 농축산물 위생검역을 규율하는 국제법인 ‘세계무역기구 위생검역 협정’과 국내 법령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 조건’을 보면, 정부가 수입 금지 여부 결정에 앞서 미국에 제공한 해명 기회의 근거 규정이 없다. 해명과 관련된 규정이 들어 있는 세계무역기구 위생검역협정 제5조 8항을 보면,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중단 조처를 내렸을 때 사후적으로 미국이 한국 정부에 해명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한-미 사이에 합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 조건(농림부 고시)에도 미국에 해명의 기회를 주는 규정은 없다. 미국 쪽이 위생 조건을 위반해 우리 정부가 ‘수출 선적 잠정 중단’ 조처를 내렸을 경우 미국에 통보해 협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규정(제20조)만 있을 뿐이다. 수입위생 조건에서, 우리 정부는 △해당 쇠고기의 반송·폐기처분(20조) △수출 선적 잠정 중단(20조) △수입 전면 중단(21조) 등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 2일 미국산 쇠고기에서 등골뼈를 발견하고도 검역 작업만 중단한 채 미국 쪽에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등 해명을 요구했다. 또 미국 쪽 해명을 들어본 뒤 일회성이고 재발이 안 될 것으로 판단되면 검역 중단도 해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이 포함된 쇠고기를 수출한 나라에 대해 정부가 수입 중단도 하지 않고, 위반국인 미국 쪽에 먼저 해명 기회를 주는 것은 국제통상법과 국내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국민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창섭 농림부 가축방역과장은 “위생검역 관련 국제 규정에서 무역에 저해되는 조처를 취해선 안 된다는 게 일반 원칙이며, 미국에 재발 방지와 원인 규명 기회를 준 건 수입위생 조건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어떤 조항에 근거해 해명 기회를 줬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한편, 미국산 쇠고기의 즉각 수입 중단을 요구하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보건의료연합,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소비자시민모임, 한-미 자유무역협정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국민 감시단, 전국한우협회 등이 성명을 내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아무리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중요하다고 해도, 국민 생명이 걸린 문제를 볼모로 무작정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수입 금지 등 강력한 조처를 정부에 촉구했다.

김진철 박현정 기자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