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정부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추진 논란

약처방 이익 놓고 ‘제2 의약분업 사태’ 우려
정부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추진 논란

  김양중 기자  

» 정부의 의약품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주수호 회장(가운데)과 회원들이 20일 오전 국립의료원 앞에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의사 “국민 건강 위협”…약사 “환자 편의” 공방
찬반 이유와 속내

‘성분명 처방 제도’를 두고 대한의사협회가 7년 만에 ‘의사 총파업’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뭘까?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의사들은 약의 성분만을 결정할 뿐, 약품의 결정권은 약사에게 넘겨야 한다. 이는 “의사의 전문적 직능에 대한 몰이해인 동시에, 약효 동등성이 확인되지 않는 약으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게 의사들의 주된 항변이다. 반면 약사들은 시범사업 범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약사들이 성분명 처방을 환영하는 이유는 정부의 제도 도입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 쪽=박경철 의사협회 대변인은 “현재 성분이 같은 약품들에 대한 약효 동등성 검사는 ‘생물학적 약효 동등성 시험’으로, 이는 약을 먹은 뒤 혈액에서 검출되는 약 성분의 범위가 비교 약품의 80~120%에 들면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성분명 처방 아래서 이처럼 효능이 다른 약을 섞어 쓰게 되면 고혈압·당뇨 등의 조절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심장질환처럼 농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심각한 이상을 부르는 질환의 경우 환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수호 의협 회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성분명 처방의 문제점을 제기했는데도 정부가 이를 무시했다”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성분명 처방은 권고사항이지 강제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약계 및 제약 관련 사업 관계자들 사이에선 의사들의 반대 이유가 그동안 약을 처방하면서 제약업체들로부터 받아 왔던 채택료(리베이트) 등 여러 이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한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은 “과거보다 줄기는 했지만 (약품을 처방해 주는 대가로) 리베이트, 연구비, 학회 지원 등을 요구하는 의사나 병원들이 여전히 많다”며 “명분은 국민의 건강이라지만 속내는 이런 데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박 의협 대변인은 “의사들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리베이트 받지 않기 선언, 받는 회원 자체 징계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약사=대부분의 약사들은 “그동안 의사들의 잦은 처방 변경으로 많게는 수천종의 약품을 갖춰야 했고, 의사가 처방을 바꿔 버리는 바람에 약품을 폐기해야 하는 손해를 고스란히 감수했다”며 성분명 처방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약사들은 환자들이 쉽게 약을 구할 수 있는 편의를 위해서라도 성분명 처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다. “제약업체의 리베이트 제공 대상이 의사에서 약사로 바뀌는 것도 저버릴 수 없는 유혹”이라고 말하는 일부 약사들도 있다.

그러나 동네 약국들은 일제히 반기는 반면, 대형 병원 인근의 대형 약국 업주들 가운데는 ‘반갑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면, 약품을 굳이 병·의원이 내는 처방 약품들이 갖춰진 병·의원 근처 약국만이 아니라, 동네 약국에서도 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약사회는 정부가 나서 추진하는 만큼 될수록 의사협회와 직접 충돌을 피하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가 시범사업 시행을 번복할 경우, 약사회 또한 실력 행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

정부 “정착되면 동네약국서 값싼 약 이용 가능”
도입 취지와 배경
  
정부가 성분명 처방을 추진하는 주된 이유는 환자들의 편의 도모와 약제비 절감을 위해서다. 오창현 보건복지부 의약품정책팀 사무관은 “의사들이 상품 이름으로 처방하다보니, 환자들이 해당 약을 조제받기 위해 여러 약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며 “성분 이름으로 처방하면 동네 약국 등 아무 약국에서나 약을 쉽게 조제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의약품 품목에 따라서는 한 성분당 수십 가지 상품도 있다. 이를 약국이 모두 갖출 수 없기 때문에, 현재처럼 상품명으로 처방하면 환자들은 종종 그 약을 조제받기 위해 여러 약국을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기도 했다. 약 조제가 간편해지는 것과 함께 동네 약국을 단골로 이용하면 약의 효능이나 부작용, 복용법에 대한 설명도 더 잘 듣게 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아울러 성분명 처방으로 같은 성분이라도 높은 가격을 받는 약, 곧 오리지널 약의 사용 비율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건강보험 재정 가운데 약제비 비중은 2001년 23.5%에서 2006년 29.4%로 빠르게 늘고 있으며, 고가약 처방 비율 증가가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복지부의 2005년 자료를 보면 한 성분당 세 품목 이상이 있는 약들 가운데 가장 비싼 약을 처방한 고가약 처방 비율은 종합전문병원 56%, 종합병원 44%, 의원 20%로 나타났다. 오 사무관은 “효능의 차이가 거의 없는 소염진통제, 소화제, 제산제 등은 성분명 처방으로 오리지널 약보다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약품 사용이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복제약의 효능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고 효과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환자들이 오리지널 약을 찾으면서 불편만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일부 의사들은 정부의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의 추진 배경에는 약사회와 약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요구도 작용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약사 출신인 문희 한나라당 의원과 장복심 열린우리당 의원이 성분명 처방 시행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성분명 처방은 노무현 현 대통령의 2002년 대선 당시 공약이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참여정부 때 시범사업이라도 진행한다’는 태도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

제약사 달라도 효능 같고 ‘리베이트 관행’ 바로잡아야
성분명 처방 정착 되려면

성분명 처방과 같은 제도가 정착돼 환자들이 품질이 검증된 약을 동네 약국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환자들이 안전하게 약을 먹기 위해서는 같은 성분이 든 여러 제약회사 약들의 효능이 같아야 한다. 심장질환, 당뇨, 암 치료제 등 약효가 조금이라도 과하거나 떨어져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약들도 있기 때문이다. 신상구 서울대의대 약리학교실 교수는 “현재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시험 검사에서는 처음 허가받은 약의 80~120%정도면 효능이 같은 것으로 인정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심장질환자, 당뇨환자 등이 평소 80% 효능이 있는 약을 먹어서 조절되고 있다가 120% 효능을 보이는 약을 먹으면 혈압이나 혈당이 너무 내리거나 심장박동에 문제가 생겨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검사 기준 문제 외에 생동성 시험 검사 결과를 조작한 사건을 들어 성분명 처방을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있다. 박경철 의사협회 대변인은 “정부의 관리 소홀로 지난해 대규모 생동성 시험 조작이 있었음이 드러났다”며 “의사들이 불안해서라도 성분명 처방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성분명 처방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의사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거나 성분명처방 목록을 제한하자는 주장도 있다. 김종명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정책팀장은 “환자들이 동네 약국 등에서 간편하게 약을 구할 수 있도록 성분명으로 처방하는 것에 동의한다”며 “하지만 약효 차이가 나는 것을 고려해 증상의 완화나 가벼운 질환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성분명 처방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약 유통 질서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현재 의·약계 일부에 남아있는 리베이트 등 제약회사의 영업 비리를 해결하지 않는 한 성분명 처방은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김종명 인의협 정책팀장은 “성분명 처방으로 약의 선택권을 의사에서 약사에게 옮긴다해도 리베이트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약사가 특정 약만을 조제하게 된다”며 “약값을 낮춰 건강보험 재정을 아껴보자는 의도는 물 건너가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제약회사 영업사원도 “품질이 보장된 약만 유통되도록 정부가 규제하지 않는 상태에서 성분명 처방을 하면 영업 대상이 의사에서 약사로 옮겨갈 뿐”이라며 “환자들이 좀 더 나은 약을 먹게 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환자들이 약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구할 수 있도록 돕는 정보화 작업도 필수다.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사무국장은 “성분명 처방으로 환자들이 필요한 약을 아무 약국에서라도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에 맞는 약을 이용하려면 약값, 약효, 부작용 가능성 등에 대한 충분한 자료에 대해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