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EU 깜짝공세에 허찔린 한국… FTA협상 ‘한·미 수준’개방 약속

EU 깜짝공세에 허찔린 한국… FTA협상 ‘한·미 수준’개방 약속
입력: 2007년 09월 21일 17:35:57

벨기에 브뤼셀에서 21일 막을 내린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3차 협상 결과 우리측은 당초 예상과 달리 최소한 한·미 FTA 수준의 개방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미 FTA 당시와 유사한 ‘주고받기’식 협상 전략을 채택했던 정부는 협상 초반부터 최종안에 가까운 개방안을 제시하는 EU의 ‘대담한’ 전략에 허를 찔렸다. 협상이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한·미 FTA를 넘어서는 수준의 개방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 이어 거대경제권 중 하나인 EU와의 동시다발적 FTA로 피해대책 마련에 따른 국민들의 부담이 더 커지게 됐다.

◇강공으로 돌아선 EU=정부 협상단에 따르면 우리측보다 더 강력히 연내 협상 타결을 원하는 쪽은 EU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국 미국의 한국 시장 선점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단’ EU는 27개 회원국의 의견을 수렴, 2차 협상때부터 적극적 개방안을 제시하며 우리측에 ‘연내 타결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정부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협상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고 있는 상품 관세 개방안을 놓고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도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품목을 제외하면 우리측이 제시한 상품 관세 수정 개방안의 관세 조기(즉시+3년) 철폐 비율이 교역액 기준으로 EU 수준을 능가한다는 이유를 들어 최대한 ‘보수적’으로 협상에 임했던 것.

문제는 협상 파트너인 EU가 우리측의 전략을 이미 눈치챘다는 점이다.

EU는 “미국에는 개방하면서 우리에게는 왜 개방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어차피 개방할 거면 지금 밝히라”며 정공법으로 나왔다.

반FTA진영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끝내 관철시켰던 정부로선 EU의 이같은 강공에 대응할 마땅한 논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한·EU FTA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란 점은 어느 정도 예견된 사안이다. 1년 넘게 찬반 진영간에 거센 대립을 불러왔던 한·미 FTA 협상안에 대한 비준동의도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서둘러 협상 개시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정태인 민주노동당 한·미FTA저지사업본부장은 “헤비급과의 복싱 경기에서 만신창이가 된 선수가 곧바로 라이트헤비급 선수와 경기에 나서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그러나 ‘미국과의 FTA도 이끌어냈는데 EU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협상 개시를 선언했고 결과는 예고된 수순을 밟고 있다. 정부의 바람대로 ‘연내 협상’을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EU가 생각하는 수준으로 국내 시장을 열어젖혀야 하는 형국으로 점차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4차 협상은 다음달 15일부터 서울에서 열린다.

〈권재현기자 jaynew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