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靑 386, 삼성경제硏 보고서 베껴 썼다”, 서비스개방론에서 한미 FTA로

“靑 386, 삼성경제硏 보고서 베껴 썼다”
입력: 2007년 11월 21일 03:04:46

#.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5월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선언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모인 첫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다. 대·중소기업의 고른 성장과 이를 위한 투자를 촉구하는 자리였다. 비슷한 시기 노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개정안을 놓고 “일부 부칙조항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계열사 지분 불법보유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각료들을 질책했다.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삼성 봐주기’란 비판을 받던 개정안이다. 청와대는 ‘삼성 봐주기’ 의혹에 대한 내사에도 들어갔다.

지 난 5년간 참여정부와 삼성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들이다. 초기 밀월 조짐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시선은 각각 ‘투자’와 ‘규제완화’로 내내 엇갈렸다. 참여정부가 ‘반재벌’과 ‘친재벌’이란 비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배경이기도 하다.

진보적 학자들은 참여정부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노대통령 2003년 6월 국정과제회의)의 성장전략을 택하면서 청와대와 삼성의 관계는 예정된 길로 들어섰다고 평가한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경제학)는 “참여정부가 ‘1만달러의 덫’이란 표현을 쓰면서 개혁은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게 아니라 삼성으로 넘어갔다”는 진단도 있다.

학계는 인수위 시절 전달된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보고서에 주목한다. 한·미 FTA,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론, 신성장동력 개발론, 혁신주도형 경제론 등이 모두 이 보고서와 무관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기식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노무현 당선자 책상에는 인수위 보고서와 삼성연 보고서가 같이 놓여 있었다. 386 측근 참모가 SERI와 같이 만든 보고서였다”면서 “핵심 내용이 ‘대미·대북관계는 진보적으로, 사회경제 정책은 보수적으로’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실제 이후 북핵문제, 전시작전통제권 등에 대한 노대통령의 발언과 “장사의 원리”에 따른 아파트 원가공개 반대, 한·미 FTA 등 경제분야 정책은 우연처럼 SERI의 충고와 일치했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개혁적 소신을 유지한 이정우 전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 이동걸 박사 등의 조기퇴진 배경에는 삼성생명 상장과 개혁정책을 둘러싼 청와대 386 및 관료들과의 파워게임이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2004년 9월부터 정부조직의 혁신을 기한다는 취지로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삼성인력개발연구원에서 연수를 받게 한 것도 그런 흐름과 맥이 닿아 있다.

한·미 FTA의 논리적 기반도 삼성이 제공했다는 평가다. 노대통령이 FTA 대책과 양극화 해법으로 강조해온 ‘지식서비스업 강화론’이다. 삼성연은 한·미 FTA 개시선언 직후인 지난해 3월 ‘도대체 왜 한·미 FTA를 해야 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서비스시장 개방론’을 처음 이슈화했다. 10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남북FTA론’도 비근한 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8월초 발표한 ‘남북한 경제협력강화약정(CEPA)’이 그 토대이기 때문이다. 김상조 교수는 “심각한 것은 삼성연 보고서의 보수적 경제논리가 정부정책은 물론 국민의식을 지배해 버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삼성 등 기업에 대해 개별적인 호불호는 없다”면서 “국민경제에서 중요한 액터(관계자)인 만큼 세습문제 등 경영시스템의 문제는 제도적·시민적 통제의 틀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광호·김재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