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름제거 일당으로 생계’ 아파도 못아픈 주민들, 유해물질에 피부·눈질환…뇌졸중·천식 위험도

기름제거 일당으로 생계’ 아파도 못아픈 주민들
유해물질에 피부·눈 질환…뇌졸중·천식 등 위험도
의료진 부족한데 정부 팔짱…나흘뒤 의료공백 예상
한겨레         정세라 기자 이완 기자
        
» 기름 범벅이 된 게가 16일 오후 충남 태안군 의항2리 구름포해수욕장 모래 위를 힘겹게 기어가고 있다. 태안/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머리 아프고, 목 아프고, 배 아프고 …. 안 아픈 데가 없어요.” 기름 제거에 바쁜 김경순(52·태안군 소원면 모항4리)씨는 “아파도 그냥 견딘다”고 했다. 시내 병원에 가고 싶지만, 당장은 약만 먹는다. 하루 기름 제거를 하면 작업 일지에 일당 6만원씩이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당장 생계가 막막한데 병원에 갈 짬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16일 기름 유출 사고 열흘째를 맞으면서, 매서운 추위와 악취 속에 기름 제거에 나선 태안 주민 대부분이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당장 다음주 후반부터 의료 공백이 예상돼 주민 건강에 비상이 걸렸다.

현지 주민 6천∼1만여명은 하루 6만∼7만원의 노임을 받기로 하고 오염 현장에서 일한다. 이들은 하루이틀 작업하는 자원봉사자와 달리 피로 누적이 심하다. 하지만 생계가 어렵다 보니 건강에 무리를 느끼면서도 일당 벌이에 뛰어들고 있다. 대부분이 감기몸살이나 두통을 앓고 있는데, 유해 물질에 장시간 노출돼 피부염과 눈 질환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에는 뇌졸중 등 응급 환자도 생겨나고 있다.

오염 현장 의료를 책임지는 태안보건의료원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같은 일시적 의료봉사로는 의료 공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전공별 의료인력의 체계적 지원은 꿈도 꾸기 어렵다. 당장 성탄절과 연말이 다가오면서 21일 이후 의료 지원을 오겠다는 신청이 뚝 끊긴 상태다. 이 지역의 공공 의료 인력은 읍내 보건의료원과 7개 보건지소에서 일하는 의사 11명, 간호사 30명 가량이 전부다. 외지에서 의사 30명, 간호사 60명 가량이 지원을 나왔지만, 상당수는 하루이틀이면 돌아가 버린다.

현재 태안군의 방제 작업장 40곳 안팎 가운데 1천명 이상이 일하는 열 군데 가량에는 의료진이 상주하고 있다. 나머지 30여 군데는 응급차 4∼5대로 구성된 순회 진료단이 하루 두세 차례 방문해야 한다. 태안군 이원면 보건지소장인 홍재민(28) 공중보건의는 “동네 주민이 작업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들었다”며 “워낙 고령자가 많고 고혈압·천식 환자도 있어서 위험한 응급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선 보건소 의료진이 하루 걸러 오염 지역 출장을 나가면서, 주민들의 일상적인 의료 환경도 악화하고 있다. 안면도에 자리잡은 고남면 보건지소장인 안채연(27) 공중보건의는 “이런 특수 상황이 장기화하면 혈압·당뇨약 등을 타야 하는 일상 환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고 모든 부처의 면밀한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당장 일주일 앞의 의료 인력 수급이 불안한데도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현장 대응을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종일 태안보건의료원장은 “의료 인력과 값비싼 일부 의약품의 수급을 빠른 시일 안에 체계화하지 않으면 의료 공백은 불 보듯 하다”며 “작업이 두세 달 이상 장기화하면 응급 상황 발생 등 현장의 건강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세라, 태안/이완 기자 sera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