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불 태안원유 유출 – 삼성과 현대와 정부가 만든 재앙 / 우석균

우석균 칼럼 – 메스를 들이대며
태안 원유 유출 – 삼성과 현대와 정부가 만든 재앙

우석균 의사/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가  
  

△ “삼성 개*끼”라고 적힌 작업복을 입고 있는 자원봉사자 – 이번 사건에도 한몫한 삼성  

1989년 엑손발데즈 호의 원유 유출 사건을 보면 태안 사태의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피해는 상상 이상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태안 생물들의 떼죽음이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치명적인 위험들이 더 많다. 원유에는 많은 유독물질들이 포함돼 있다. 발암물질인 PAH(다환방향족탄화수소), 중금속(아연, 니켈, 알루미늄), 휘발성 유기화합물(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등이 그것이다.

지역주민, 군인, 자원봉사자들이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유독물질에 그대로 노출됐다. 유기용제 방독마스크는 고사하고 보호복조차 본인이 알아서 준비해야 했고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보호용구는 알아서 준비하면 좋고 구토, 호흡곤란 증세가 일어나면 10분 휴식하면 된다’는 ‘보호조치’를 내놓은 것이 사건 발생 일주일 뒤였다.

더 심각한 것은 장기적 문제다. 여러 연구들이 있지만 삼성이나 현대가 모두 과장이라고 할테니 미국 정부 조사만 보자. 엑손발데즈 호 사건 12년 뒤인 2001년 미국환경청(EPA)이 알래스카 연안지역의 토양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91개 지역 중 53개 지역에서 원유성분이 여전히 검출됐다. 미국 환경청은 생물들이 PAH에 장기간 노출돼 환경적응력이 약화됐고 이 때문에 기형이 생기고 생식력이 떨어져 개체수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아래 사진참조)

독성

이 때 문제가 되는 PAH는 극소량으로도 강한 독성을 띈다. 그래서 흔히 공기나 물 속의 유독물질 농도를 표시할 때 쓰는 PPM(1백만 분의 1)이 아니라 PPB(10억 분의 1)를 사용한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처(NOAA)가 올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알래스카 연안에는 엑손발데즈 호 사건으로 유출된 원유가 아직도 남아 있고 앞으로 1년에 4퍼센트씩 분해돼 결국 한 세기가 넘도록 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러한 유해물질은 먹이사슬을 통해 농축돼 인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장 피해지역 주민 1만 5천여 명이 문제지만 지금 기름은 인천 덕적군도와 군산 앞바다까지 번지고 있다. 태안 원유 유출 사건에 의해 태안 주민들과 서해 생태계, 그리고 한국사회가 입은 피해는 사실상 계산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 재앙은 누구 책임인가? 시프린스 호 사건을 비롯해 모든 원유 유출 사건의 교훈은 초기 24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지만, 정부는 초기 방재에 실패해 사태를 크게 악화시켰다.

그 뒤의 방재 조치도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지휘부도 없고 지침도 없었다. 우리 보건의료단체연합의 한 회원은 사건발생 3일 뒤 의료지원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태안군청에 물었다가 봉사활동은 5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는 짜증 섞인 대답을 들었다. 태안에는 흡착포도 방재도구도 개인보호도구도, 아무것도 제대로 준비된 것이 없었다. 수많은 평범한 자원봉사자들과 태안 주민들의 맨손밖에 없었다.

벌써부터 현대오일뱅크와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은 책임을 미루기에 바쁘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던 삼성은 ‘가족’을 재앙에 빠뜨려놓고는 가출했는지 사과문 한 장 없다. 현대는 사건은 삼성이 냈는데 왜 우리가 문제냐고 항변한다.

현대의 유조선은 단일선체였다. 유조선의 단일선체는 사고가 나면 곧바로 기름유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선체외곽과 기름탱크 사이에 3미터 정도 공간을 두는 이중선체화가 필수적이다. 이중선체가 의무화돼 있었다면 이번 사고에서 기름 유출을 60퍼센트는 줄일 수 있었다고 추정된다.

엑손발데즈 호 사건 후 도입될 듯 보였던 이중선체화는 20년이 다 된 지금까지 의무규정이 되지 못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이를 2010년까지 의무화하도록 권고하는 것에 그쳤다. 여기에 한국 정부는 2015년까지 예외허용조항을 둔 상태다. 바로 현대오일뱅크와 같은 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중선체가 의무화되면 손해를 볼 아람코·엑손·칼텍스·BP 등 석유자본들이 이중선체 의무화를 막았다. 올 한 해 단일선체 유조선으로 수입한 원유는 전체 수입원유 중 52.5퍼센트이다. 4대 정유사 별로 보면 에스오일이 96퍼센트, 현대오일뱅크가 54.9퍼센트, SK에너지가 52.6퍼센트, GS칼텍스가 34.2퍼센트다. 이 4대 정유사는 각각 IPIC(아랍에미리트), 아람코(사우디아라비아),  BP, 셰브론(칼텍스)이 50퍼센트의 지분을 가진 다국적 석유기업의 합작사들이다.

바로 이들이 이윤을 위해 이중선체 의무화를 막았고,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한국에는 이중선체 의무규정이 없어 태안에서 재앙이 발생한 것이다. 현대오일뱅크는 말할 것도 없고 다국적 석유자본과 국내합작사들이 이번 사태의 주범이다.

책임 회피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주범은 삼성물산(인양선)과 삼성중공업(해상크레인)이다. 해경의 말을 빌면 이번 사건은 “기본적으로 주차해 있는 차에 운행 중인 차가 와서 부딪친 것”이다. 삼성이 할 일은 직원들을 자원봉사자로 동원해 고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엑손발데즈 호나 시프린스 호 사건에서 보듯이 이러한 재앙적 사건 앞에서도 이들 자본들은 주판알을 튀기며 책임 회피에 여념이 없다. 삼성중공업은 이중선체규정이 강화되면 조선사업이 활성화돼 돈을 더 벌 것이다. 이미 삼성물산 주가는 단기하락을 거쳐 다시 상승중이란다.

엑손발데즈 호 원유 유출 사건 당시, 엑손모빌은 1년 이윤에 해당하는 50억 달러(5조 원)의 징벌적 피해보상 판결을 받았다(이후 25억 달러로 감액). 그러나 엑손모빌은 지금까지 이 피해배상액중 단 1원도 내지 않고 있고 이미 피해 복구 작업으로 피해보상을 다했다고 소송중이다.

삼성과 현대 또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를 축소하려 할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신속한 방재’를 했다고 자랑하는 정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하고 회피해도 삼성, 현대 그리고 정부가 바로 태안과 서해를 망가뜨리고 지울 수 없는 생태계 재앙을 안긴 주범들이다. 이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

<  맞불 >  70호 (발행일 : 2007-12-24 / 기사 입력일 : 2007-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