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24시간 CCTV 감시-곱빼기 근무”
<토론회> 대책위 “1천4백건의 불법사실 적발되기도”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 돌연사 사태에 대한 노동당국의 개별 역학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태의 본질이 사측의 24시간 노무감시 시스템 및 곱빼기 근무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했다.
“24시간 CCTV 감시, 곱빼기 근무”
민병기 한국타이어 대전대책위 간사는 20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18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타이어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시민대책위)’ 주관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이뤄지는 현장 감시와 통제, 사측의 노조 선거 개입, 산재 은폐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라며 “사측의 독특한 노무감시 시스템이 산재은폐를 심화시키고 노동자의 희생을 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 간사는 “대전공장과 금산공자에는 생산라인과 탈의실, 휴게실 등 곳곳에 노동자들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한 CCTV가 수십 대 설치되어 있다”며 “대전공장은 언론보도 이후 일부 가동중단한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대부분의 CCTV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감시받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상황이고 이로 인해 사내에서 동료들 간 대화조차 편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심지어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측에게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민노당 당원인 대전공장 백모씨가 지난 2005년 8월 작성한 자술 증언을 통해 “당원 가입자가 있는 부서는 곤혹을 치르고 장기간 사측의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한 자료를 공개했다. 그는 “백씨는 사측의 감시 행위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야했고 다른 당원들도 감시와 징계를 반복하며 활동을 통제하고 사내에 공포감을 조성해 다른 노동자들과 분리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돌연사의 주원인이었던 뇌심혈질환의 직무 관련성과 관련, 최근 10년간 이뤄졌던 한국타이어의 구조조정과 근무형태 변경에 주목했다.
한국타이어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1대의 기계에서 2명의 노동자가 타이어를 생산하는 생산구조를 1명에게 담당케 하는 ‘1인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이 하루 2백30개의 타이어를 생산하던 구조는 1명이 2백개를 생산하는 구조로 전환, 두 배 가까운 생산량을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한다. 한국산업보건연구원 조사팀도 지난 역학조사 발표에서 “한국타이어는 소위 ‘곱빼기 근무’라고 해서 야간조 근무 후 그대로 다시 오전조 근무를 하는 공출근무가 있었다”며 노동자들의 과로 환경을 지적한 바 있다.
◀ 한국타이어 피해대책위는 20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노동자 집단 돌연사에 대한 재발방지를 위해 노동자의 철저한 역학조사와 노동탄압 실태를 노동부가 파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최병성 기자
“대의원선거도 자필로 적도록 하고 있어”
민 간사는 이러한 사측의 일상적인 노무감시 시스템이 활성화될 수 있는 근본적 요인으로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노조와 사측의 노조 관리를 꼽았다.
그는 “한국타이어는 사측이 노동조합 대의원 선거가 진행될 경우 후보등록부터 선거 결과에 이르기까지 개입과 관리가 이뤄져 자주적 노조 활동이 사실상 막혀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타이어 노조는 대의원 선거를 일반화된 기표식이 아닌 후보 이름을 자필로 적는 자서식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선거관리를 하는 노조나 사측이 필체 감정이 가능토록 해 자율적인 투표를 사실상 가로막고 있는 것.
민주노동당 대전시당이 지난 2005년 8월 대전공장, 금산공장, 중앙연구소 노동자 1백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노조 선거과정에서 대의원 후보 출마 의사를 사측에 미리 이야기해야한다’는 응답이 64.3%,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불지지를 강요받은 사실이 있다’는 응답이 55.7%에 달했다. 또 ‘노조 대의원 후보를 사측에서 지명해 매년 1명씩 단독으로 출마케한다’는 의혹에 대해 71.3%가 대체로 그렇다고 응답할 정도로 사측의 선거 개입이 노골화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실제 상급기관인 한국노총은 한국타이어 노조의 자서식 투표방식에 대한 논란이 일자 지난 해 기표식으로 바꾼다는 협약을 체결하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도입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민 간사는 “결국 민주화되지 못한 노조와 사측의 일상적 노무감시 체계가 노동자의 삶의 질이 걸린 산재사고를 일반사고로 은폐 처리하는 일을 가능케 했다”며 “현장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선 제대로 된 내부 저항체가 절실한 만큼 노동부 차원에서 조사를 진행해 이를 반드시 시정토록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노동자인 정승기 민주노동당 한국타이어분회 분회장도 이날 토론자로 나서 “한국타이어 현장은 외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며 “무재해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개인이 아닌 집단에게 주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산재를 스스로 은폐하게 만드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분회장은 “한국타이어의 2001년 문건을 보면 안전사고 발생의 97%를 본인 과실로 규정짓고 그 원인을 안전의식 부족이라며 노동자 개인에 부과한다”며 “더 이상 노동자들이 죽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 회사 안의 민주적 노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타이어 1천4백건의 위반사항 적발돼
한편 노동부는 지난 역학조사와 별개로 산업재해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12명의 사망 노동자에 대한 개별역학조사를 4월 말께 마무리할 예정이다. 또 돌연사와 관련한 직무연관성 및 발암물질과의 연관성을 밝혀내기 위한 추가 역학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노동부는 또 지난 해 대전지방노동청의 특별감독결과 적발된 1천여건의 위반사례와 관련 구속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 수사 지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해 특별감독에서 보건.안전.관리분야에서 총 1천3백94건의 위반 사항이 적발됐고 이 가운데 산재은폐사례는 1백83건이었으며 사법처리 적발건수는 5백54건에 달했다.
유족대책위 자문의사인 임상혁 원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한 공장에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불법을 저지른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며 “노동부는 개별역학조사와 별도로 한국타이어만의 위험요인으로 지적된 억압적 노무관리, 화학물질 건강 피해조사를 철저히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장식 민변 변호사도 “과로사는 산재 판정을 받기 용이하지만 폐암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에 대해선 현재보다 더 명확한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산재 판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노동부의 철저한 재조사와 공단의 전향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병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