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대책 ‘미봉책’에 그쳐…국민불안 해소 역부족
입력: 2008년 05월 06일 18:33:43
ㆍ당정 대책 실효성 있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과 관련해 정부와 여당이 6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어 내놓은 종합대책은 점증하는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발생시 수입·검역조건에 대한 재협상 검토 방침은 미국이 응할지 의문인 데다 사전예방이라는 검역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 월령 표시를 위반하면 전량 반송조치하겠다는 방침도 미국의 도축시스템 등을 감안할 때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또 원산지 표시 대상 음식점을 모든 식당으로 확대키로 한 것은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왼쪽)와 한승수 국무총리(오른쪽)가 6일 국회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파문관련 제2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각각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 광우병 위험발생시 재협상 검토
당·정 협의에서 재협상이란 말이 나왔지만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번 합의문을 무효화하고 협상을 다시 하는 재협상보다는 수입위생조건의 개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농수산부 관계자는 “국제적인 기준이 변경될 만한 새로운 과학적 근거가 있거나, 미국이 광우병 위험을 통제할 수 없다고 인정될 때에는 미국 측에 수입위생조건 개정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농수산부가 제시하는 전제조건 자체가 미국이 동의하기 어려운 데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의 역학관계상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민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한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는 “우리 측이 재협상을 요구해도 미국 측이 응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며 “검역은 철책선을 제대로 세우는 것인데 철책선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나중에 재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합의는 고시류 조약으로 그 자체로서 완결적 효력이 없으며 미국과의 합의대로 고시해야 한다는 국제법적 근거도 없다”면서 “우리 정부가 새로운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하지 않으면 문제는 아주 간단해진다”고 강조했다.
■ SRM 월령 표시 위반하면 전량 반송조치
SRM의 개념이나 제거 방법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 일본, 미국, OIE 등 국가와 국제기구에 따라 기준이 차이가 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가장 기준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했다. 30개월 미만 소의 경우 SRM 중 편도와 회장원위부(소장 끝)를 빼고 뇌, 눈, 척수, 머리뼈, 등배신경절, 척주(등뼈)를 모두 수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때 모든 연령의 소에서 SRM 제거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쇠고기협상 타결로 SRM까지 수입하기로 한 상황에서 SRM의 월령 확인이 안되면 검역 때 불합격시키겠다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 우희종 교수(수의학)는 “미국이 소의 연령을 측정하는 방식도 이빨을 통한 것이어서 측정 방식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며 “OIE의 광우병 발생통계를 보면 24개월령부터 잡고 있는 상황에서 30개월이냐, 아니냐는 광우병 위험성을 줄이는 데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치아감별법의 오류 가능성은 정부 측에 의해서도 이미 제기된 바 있다. 특히 미국은 소의 출생기록을 문서로 남기는 경우가 15~20%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80%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는 월령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 쇠고기 원산지 표시 모든 식당으로 확대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를 학교·직장·군 급식을 포함해 모든 음식점으로 확대키로 했지만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우선 6월부터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가 100㎡ 이상 업소(11만7700곳)로 확대되는 것에 대비해 단속인력(특별 사법경찰)을 4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리기로 정했지만 전체 음식점(57만3600곳)으로 대상이 확대되면 단속인원을 5배나 늘려야 한다. 또 영세음식점까지 단속이 이뤄질지도 불투명하다.
농수산부 관계자는 “육안으로 원산지를 판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대부분 장부추적을 통해 단속이 이뤄지는데 영세음식점은 영수증 없이 거래되는 물량도 많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광우병 원인물질로 알려진 프리온은 0.001g만 섭취해도 인간 광우병에 감염될 수 있는 점도 문제다. 햄버거, 잡채 등 쇠고기를 주원료가 아닌 보조재료로 사용하는 음식이나 단순히 쇠고기를 우려낸 국물을 육수로 사용하는 음식까지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으면 소비자 불안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미국에 검역관 상주 검토
정부는 오는 15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이 발효되면 1차로 9명으로 구성된 점검반을 미국에 보내 31개 도축사업장에서 30개월 이상 소가 제대로 도축되는지, SRM을 구분해내는지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쇠고기협상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수입위생조건에 따르면 미국내 모든 도축 작업장은 우리나라로 쇠고기를 수출할 자격이 부여되는 반면 우리 측의 현지점검은 표본에 대해서만 할 수 있게 돼 있다. 또 우리 측 검역관이 현지 도축장에서 중대한 위반사항을 발견하더라도 미국에는 통보만 할 수 있다. 우리 측 현지점검반이 중대한 위반이라고 판단한 사안을 미국이 경미한 사안으로 보고 쇠고기를 계속 수출하더라도 이를 막을 수단이 없는 것이다.
<강진구·오관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