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위험성 이대통령만 못듣고 있다”
입력: 2008년 05월 19일 19:11:06
“모든 국제적 결과와 과학자들은 광우병을 매우 주의를 요하는 전염병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 기준을 사전 예방 차원에서 엄격하게 설정해야 한다.”
19일 오후 서울의대 함춘회관에서 열린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과 한국사회의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수의학·의학 전문가들이 광우병 논란에 대한 정부 입장을 “오직 협상조건의 타당함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우희종 교수 “전염병 아니라고? 광우병, 사스만큼 위험”-
첫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울대 수의대 우희종 교수는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논란에 대해 “과학적 논리가 배제된 ‘괴담’을 퍼뜨리고 있는 것은 정부”라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우교수는 먼저 한승수 국무총리가 대정부질문에서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다’고 말한 것에 대해 “공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정부 관계자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광우병은 국제수역사무국(OIE)가 ‘인수공통전염병’으로 규정한 전염병이며 광우병의 원인 물질인 변형 프리온은 탄저균, 사스 등과 같은 위험도인 생물안전등급3(BSL3)”이라고 지적했다.
한 총리가 ‘접촉이나 공기로 전염되지 않아 전염병이라 보기 힘들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그렇다면 살모넬라나 O-157 등도 전염병으로 부르지 않아야 한다”면서 “광우병은 다만 천천히 진행되는 것이다. 긴 잠복기와 치사율 100%인 전염병”이라며 “이런 황당한 논리가 정부 공식 입장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 교수는 또 ‘광우병이 5년 내로 사라진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현재 광우병 발생이 감소세라는 게 정부 주장의 논거인데 그건 마치 ‘요즘 세상이 흉흉해졌으니 말세가 올 것이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잠복기간이 긴 광우병의 특성에다, 최근 무증상 환자들이 나타나는 현실에서 과학적 논리가 배제된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소 광우병 발병 사례가 많은 유럽연합(EU)과 사례가 적은 미국의 광우병 SRM(특정위험물질)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는 정부 입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우교수는 “국가를 불문하고 질병이 발병한 개체 내에서 질병 진행에 따른 병원체 증식, 감염 조직 양상은 같다”고 주장 한 뒤, “미국의 광우병이 EU와 발병 양상이 서로 다르다는 과학적 자료가 있지 않는 한, 광우병에 대해 잘 아는 보다 엄격한 EU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 교수는 최근의 광우병 논란을 우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해 “모든 국제적 연구결과와 과학자들은 광우병이 매우 주의를 요하는 전염병임을 말하고 있다. 국민들도 알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만 못 듣고 있다”며 “국민들의 불안을 ‘괴담’으로만 몰아가고 ‘안전하니까 따르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국제기준도 각 나라의 특성을 고려해 과학적 검토 아래 설정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스스로 인정했듯 광우병에 대해 잘 아는 것이 EU라면 이번 협상이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협상이었음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해관 교수 “SRM 유입 가능성 줄이는 게 효과적 예방법”-
뒤이어 발제자로 나선 성균관 의대 예방의학과 정해관 교수는 ‘인간광우병(vCJD)의 역학과 전망’이란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발표에 앞서 정 교수는 최근 정부 발표와 관련해 “대한민국 전염병 예방법에는 광우병은 누가 뭐래도 전염병이다. 국무총리나 여러 부처 장관들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아닌 모양이다”고 일갈했다.
정 교수는 광우병의 잠복기에 대해 “최소 2년에서 사람의 일생보다 길 수 있다”며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공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해 지금은 (발병률이) 떨어진 상태지만 최근 3년간 15명이 발병하는 등 앞으로의 상황을 현재로선 추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인간광우병에 걸릴 위험에 대해서는 “(광우병은) 소 집단에서 푸드체인(food chain)으로(2단계), 푸드체인이 오염된 다음에 인간으로(3단계), 인간에서 인간으로(4단계) 전염된다”며 “우리나라는 3단계까지 오지 않았고, 종간 장벽 때문에 광우병이 푸드체인을 오염시키더라도 인간까지 오염시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우병이 사람에게 넘어와 인구집단에서 유행하면 종간장벽이 없어진다”고 덧붙였다.
또 영국을 예로 들어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경우 엄청난 사회비용이 들어간다고 경고했다. “광우병 환자와 그의 가족에게 1인당 2만2000파운드가 지출된다. 우리도 영국의 절반 정도는 지출될 수 있다”며 “거기다 의료기구 교체, 국내 혈액공급 부족에 따른 수혈 안전을 위한 비용, 국가적 신인도 하락, 의료산업 불황, 관광기피 등 광우병 발생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천문학적”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SRM의 국내 유입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광우병 예방법”이라면서 “쇠고기 수육이나 꼬리곰탕 등의 재료가 되는 SRM에 대한 규정은 국민의 식성을 고려해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지금 사랑스런 후손들에게 광우병을 남기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정태인 교수 “광우병, 엄청난 경제적 손실 가져올 것”-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단국대 권호장 의대교수는 “환경 및 먹거리 정책은 원인·결과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불확실하더라도 위협이 있을 때는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까지 광우병이 어떤 전파방식과 발병기전을 가지는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는 이상 SRM 부위는 들여오지 않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위험분석은 기본적으로 과학 차원의 ‘위험평가’, 정책 차원의 ‘위험관리’, 공청회·토론회 등의 ‘위험정보 교환’ 등으로 이뤄지는데 우리 정부는 아무런 과정 없이 쇠고기 협상이 밀실에서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서 재협상하든지, 지금의 협상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공회대 정태인 경제학 겸임교수는 “광우병 논쟁이 마치 과학 대 과학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사실은 과학 대 경제의 싸움”이라며 “광우병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 정부 관계자들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광우병 위험을 잘 알고 있지만 한미FTA로 얻을 이득이 더 크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정부는 한미FTA를 통해 10년 동안 한국이 6% 성장할 것으로 뻥튀기는데 광우병이 단 한차례만 발생하더라도 60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며 “사전예방의 원칙을 미룬 영국은 복구비용만 11조원이 들었지만 초기 시행착오를 잘 대처한 일본은 1조 3000억원 정도로 복구비용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미국은 이같은 사실을 모두 알고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영국의 1990년대 초반처럼 조치하고 있다”면서 “이유는 간단하다. 자국 내 축산업의 60% 이상을 7개 대기업이 쥐고 있는데, 이들이 지난 10년동안 500억원 이상을 로비로 사용해 규제 조치를 전면 보류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현실적인 대응방법에 대해서는 “일본처럼 도축시 전수검사, 선진회수육(AMR) 규제 등 그 정도의 안전성을 확보한 뒤 미국에 안전 수준을 올릴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미국 캔자스 주정부의 ‘광우병 관련규제로 인한 미 축산업의 경제적 손실’을 공개하며 “미국에서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소장 부위를 수출할 경우 미 축산업계는 9600만 달러를, AMR을 수출할 경우 2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한미 쇠고기 협정에서 SRM에서 제외된 부분만 수출할 경우 연 2억 달러의 이득을 벌어들인다”고 주장했다.
우 실장은 또 “미국 산업의 이익을 위해 한국민들의 생명을 포기한 한미쇠고기 협정은 무효화돼야 한다”면서 “한미FTA협정이 체결되면 국가가 국가에게 제소하는 것이 아니라 수출업체가 곧바로 제소하는 등 검역주권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한미FTA의 조기 비준을 반대했다.
<이성희 경향닷컴기자 mong2@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