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럽다” – 우희종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럽다”  
  [기고] 광우병에 비친 부끄러운 자화상  

  2008-05-26 오전 7:40:07    

  

  
  검역 주권과 더불어 안전성 여부로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논란은 과학자 간의 논쟁을 거쳐 촛불 집회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이러한 사태의 발단은 정부가 종전의 30개월 미만 소의 살코기만을 수입하던 조건에서 갑자기 검역 주권은 물론 국민의 생명권마저 포기한 사상 유래 없는 조건으로 타결한 굴욕 협상 때문이다. 가공육으로나 쓰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와 더불어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이라고 하여 소각 처분하는 감염력이 매우 높은 부위마저 극히 일부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대책 없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수입된다.
  
  광우병의 병원성은 99%가 SRM에 몰려 있으며, 이 부위는 1g 미만의 소량으로도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며, 0.001g만 먹어도 발병이 확인될 정도로 위험한 물질이다. 불행히도 지금 타결된 조건으로는 미국의 오염이 그대로 한국에 연장되어 이 위험한 SRM이 국민 식탁에 오르게 될 상황이다. 더욱이 병원성 프리온의 매우 높은 안정성과 더불어 창자까지 먹는 우리의 서민 요리, 그리고 국내 축산 기반 시설의 낙후성을 고려할 때 미국으로부터의 광우병이 장차 국내에서 현실화될 때 생겨날 국내 충격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미국산 쇠고기가 지금 당장 광우병에 걸린 위험한 쇠고기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돈을 내어 수입하는 입장에서 더 안전한 기준으로 수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국민들의 요구에 정부는 “국제수역기구(OIE)의 기준은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증명된 국제기준이기에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더욱이 정부는 협상 결과를 합리화하기 위해 여러 관변 학자들을 동원해 OIE와 과학의 권위를 빌어서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고 5년 내로 사라질 것이라는 너무도 비과학적인 이야기마저 유포하였다.
  
  하지만 “OIE 기준이 그다지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 내 기준은 더 엄격하다”라는 버시바우 미국 대사의 말처럼 OIE의 기준이란 교역에서의 최소한의 기준일 뿐 안전성을 보장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결국 그동안 OIE의 기준을 강조하며 국민의 소리를 무시해온 정부는 즉시 그 동안 주장해왔던 OIE 기준의 과학적 안전성과 무조건적 수용의 논리를 버리고 수입 기준을 미국과 유사하게 변경했다는 것으로서 다시금 국제 기준에 적절하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유럽이나 일본의 SRM 기준에 비해 미국은 턱없이 허술한 기준이다. 혹자는 유럽에서는 발병 사례가 많고 미국은 적기 때문에 유럽의 엄격한 SRM 기준과 미국의 기준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강변하지만, 사실 미국소와 유럽소가 근본부터 다르면 모를까 발생 숫자와는 상관없이 발병한 동물에서의 오염된 부위나 장기는 유사하기 때문에 SRM에 대한 규정은 광우병을 더 많이 연구한 유럽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
  
  사실 정부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OIE에서의 자체 SRM규정은 없다. OIE는 유럽의 SRM 자료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OIE와 유럽연합에서 동일하게 제시하고 있는 ‘진정한’ 국제 기준이란 OIE 기준을 바탕으로 각 나라의 사회구조, 오염 상태, 국민들의 인식도, 식문화 등에 의거하여 각 나라별로 적절한 기준을 만들어 교역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기준을 널리 참조하여 가장 안전한 수입 조건을 제시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간 교역을 위한 OIE의 기준을 안전성에 관련된 국제기준인 것으로 선전하면서 국민의 생명권은 팔아넘겼다.
  
  불행히도 지금은 언론에서 거론된 30개월령 이상 소의 쇠고기가 주로 문제되고 있지만, 실제로 더욱 위험한 것은 정부가 가장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설정된 유럽연합의 SRM 기준은 무시한 채 자국 사회의 특성을 고려한 엄격한 기준도 없이, 미국도 외면한 OIE의 기준을 근거로 미국의 30개월령 미만 소의 뇌나 척수 및 창자와 같은 SRM을 그대로 직수입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순히 검역 주권의 문제를 넘어 국민 생명권의 문제이다.
  
▲우희종 교수는 “안전하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요구하는 아이들의 촛불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또 부끄럽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이제 생명권이라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어린 학생들이 길거리에 나서고 있다. 지금 시대는 단순히 정부가 주장하고 적당히 관변 학자들을 동원하여 정부 주장에 힘을 실으면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던 시대가 아니다. 이미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으며 정부나 엉터리 전문가의 허울 좋은 답변은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 즉시 인터넷에서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보장해 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을 하는 학생들을 교육부와 교육청이 나서서 참가를 못하게 하고 있다. 옳은 소리를 하는 학생을 막는 교사들이 학생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 것이며, 정부로서 당연히 수용해야만 하는 당연한 국민의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적단체의 배후 조종이 있다는 식의 구시대적 낯 뜨거운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어린 학생들이 무엇을 느낄 것인지 정부는 생각해야 한다.
  
  결국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나는 묻고 싶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같은 입으로 전혀 다른 두 말을 국민 앞에서 해야만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여, 부끄럽지 않은가. 정부의 주장이 옳다면서 과학적 사실마저 왜곡하고 아첨의 미소를 짓는 영혼 없는 학자들이여, 부끄럽지 않은가. 미국 입장을 대변하는 못난 정부의 홍보를 위해 미국 쇠고기 시식회를 열고서는 맛있다며 먹고 있는 영혼 없는 단체장들이여, 부끄럽지 않은가.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영혼 없는 과학·학술 단체장들이여, 부끄럽지 않은가. 깨끗한 먹거리를 보장해 달라는 당연한 주장을 하는 어린 학생들을 막아서는 영혼 없는 교사들이여, 부끄럽지 않은가. 국민의 안전권을 요구하는 일반 국민을 연행하고 구속하겠다는 영혼없는 경찰들이여 부끄럽지 않은가.
  
  물론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결국 이들 역시 국민의 생명권이 무엇인지, 한 국가의 주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지 돈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이명박 대통령의 뜻을 따랐을 뿐인데 말이다.
  
  더 안전하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수입해 달라는 쇠고기 문제는 이제 과학적 사실을 넘어섰고,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참을 수없는 경박의 무거움이 거리의 촛불 하나하나에 맺혀갈 뿐이다. 나 역시 거리의 촛불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기성세대에 속한 나이든 사람으로서 거리에 나선 어린 학생들 보기에 너무도 부끄러운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우희종/서울대 교수·수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