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민영화 논란, ‘광우병 파동 바통 이어받나’
기사입력 2008-06-12 18:10
【서울=뉴시스】
광우병 파동의 여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의료민영화 논란이 본격적으로 점화될 기세다.
출범초기부터 의료민영화 추진 의혹을 받아온 정부는 이달 들어 제주특별자치도 의료분야 개선안을 마련한데 이어 의료법 일부를 손질하는 등, 국내 의료시장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한 굵직한 시책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정부는 일련의 시책들이 침체돼 있는 국내 의료산업을 활성화하는 한편, 해외환자유치 등을 통해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시민단체들은 정반대 입장이다. 의료산업활성화는 사실상 의료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건강보험의 붕괴와 의료시장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며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이같은 주장은 건강권에 민감한 국민 정서와 맞물려 한층 파고를 높이고 있다.
건강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3일 한승수 총리 주재로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에서 결정된 의료 제도개선안 가운데 영리법인 설립과 영리병원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제한적 허용, 외국의료기관 의약품 수입허가 기준 완화가 포함된 것에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특히 제주도 내 헬스케어 타운 부지에 국내 영리병원이 들어설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주도 김창의 특별자치도 추진단장은 5일 제도개선 직원교육에서 “헬스케어타운을 순수(비영리) 병원들로만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정부와 국내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토록 정부측과 협의중임을 시사해 시민단체들의 우려를 확신으로 바꿔 놓았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 국내 영리법인의 병원개설을 허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제주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신중하게 의견수렴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국내 영리 병원 허용 여부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는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제주도는 미국의 연방에 준하는 위치에 있다”며 영리 병원 허용문제는 제주도의 소관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민단체들은 물론 정치권과 언론도 의료민영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가세하고 있다. 각종 특혜가 제주도내 국내 영리병원에 주어질 경우, 이는 곧 비영리 병원과의 형평성 문제를 촉발시켜 국내 의료시장에 일대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박형근 교수는 “영리병원이 활성화될 경우,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이 높은 의료공급자들이 건강보험체계 밖으로 이탈하거나 가격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작동할 것”이라며 제주도에서 시행되는 정책들이 건강보험제도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박 교수는 정부의 의료정책 기조에 비춰볼 때 “의료민영화는 제주를 시발점 삼아 경제자유구역으로 확산된 후 단계적으로 전국화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시민단체 등의 우려는 10일 발표된 의료법 개정안에서 다시 한번 촉발됐다.
이들은 의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인 영리목적 부대사업 전면 허용, 제3자 환자 유인알선 행위 허용, 병원 인수합병(M&A) 허용 등이 모두 병원의 영리화, 즉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길터주기용’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부대사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병원지원경영회사(MSO)의 설립에 있다며 이는 곧 병원이 일반 영리추구가 우선시되는 주식회사와 동일한 위치에 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의료서비스의 국제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입법적 기반을 구축한 것”이라며 “개정안의 경우, 이미 지난 17대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 중에서 쟁점이 적고 개정이 시급하게 필요한 내용을 선별해 다시 입법예고한 것으로 의료 민영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제주특별자치도 의료분야 개선안과 마찬가지로 의료민영화 논란을 수습하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의료민영화 논란이 한달여가 넘게 한반도를 뒤흔들고 있는 광우병 파동에 못지 않은 메가톤급 파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손대선기자 sds1105@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