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전략없는 쇠고기협상 ‘구멍만 숭숭, 30개월이상 금지’ 한정 자충수

전략없는 쇠고기협상 ‘구멍만 숭숭’

2008.06.20 10:51
[한겨레] 전략부재…’30개월이상 금지’ 한정 자충수
혼선극심…’핵심인사’ 면담 일정도 못맞춰

짜맞추기…협상종료 전 대통령 담화 강행

정부가 전략부재와 혼선을 거듭한 끝에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교역금지’를 위한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을 최종 타결했다. 하지만 추가 협상 결과는 한-미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민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멀고, 광우병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도 역부족인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애초부터 수입 위생조건의 문구를 수정하는 재협상과는 선을 긋고, 민간업체 자율규제에 바탕해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것에만 의제를 한정해 ‘실패한 협상’을 예고했다. 특히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도록 규정한 수입 위생조건의 문구는 그대로 유지된 만큼, 실효성 논란과 함께 세계무역기구 규범 위반 문제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추가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외교적 실수와 혼선 탓에 ‘부실 추가 협상’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추가협상에서 혼선은 지난 7일 한-미 정상간 전화 통화에 대한 청와대와 백악관 발표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미국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금지에 합의했다”고 기정사실화한 반면, 백악관은 “수출입업자간 합의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 발표에 대한 백악관의 불쾌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정상간 통화의 후속조처를 위해 당·정·청 대표단이 줄줄이 워싱턴으로 몰려갔지만, 일정에 대해 전혀 준비 없이 나서는 바람에 만나기 쉬운 미국 쪽 인사들만 중복해서 만났다. 이 때문에 즉흥 외교의 전형이란 말이 나왔다. 당·정·청 대표단은 뒤늦게 지난 10일 밤 호텔에 모여 면담 상대와 역할을 조정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박덕배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 등 정부 대표단은 10일(이하 현지시각) 워싱턴 도착 직후 미국 농무부와 한 차례 공식협상을 한 뒤 추가 협상을 하지 못했다. 황진하 의원을 단장으로 한나라당 대표단은 쇠고기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인 막스 보커스 상원의원과는 만날 엄두도 못 내고 주변인사들만 만나고 돌아갔다. 쇠고기 사태 오판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김병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일정도 제대로 조정하지 않은 탓에 1주일간 잠행체류하다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13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긴급투입됐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착한 날과 다음날 두 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미국 쪽이 민간자율규제에 대한 정부 보장방식에 관한 기술적 문제를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면서 협상이 벽에 부닥쳤다. 그러자 김 본부장은 15일 오후 협상을 접고 석줄짜리 보도자료만을 남긴 채 귀국길에 오르는 ”쇼’를 벌었다. 정부는 미국 쪽의 요청이었다고 강변하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김 본부장은 뉴욕에서 발길을 돌려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미국 쪽을 깜짝 놀라게 할 묘수가 많이 있다”던 김 본부장은 도착 직후부터 만일에 있을 협상 성과의 공을 청와대로 돌리기는 데만 힘을 썼다. “협상결과 발표는 서울에서 할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대표단에 보안유지 각서까지 받았다.

무엇보다도 이번 추가협상은 다음날 일정도 잡지 못하고 진행하는 하루살이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 본부장이 워싱턴으로 복귀한 16일에는 한 차례의 공식협상도 하지 못했고, 17일에야 오전 실무협의와 오후 공식회담을 했다. 이를 진전이라고 평가한 청와대는 일찌감치 대통령 특별담화를 예고해 한국 쪽의 협상시한을 공개하는 ‘비외교적 실수’를 범했다. 마치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을 전에 쇠고기 협상을 끝내려 했던 실수의 판박이였다.

하지만 18일로 넘어간 협상은 청와대 담화발표 예고시간까지 끝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쪽은 이런 일정들이 미국 쪽 요구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통령의 담화일정에 맞추기 위한 짜맞추기 회담이었다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하다. 결국 김 본부장은 4차 협상 뒤 “대통령의 담화와 관계없이 협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고, 서울의 대통령 담화는 급히 특별기자회견으로 바뀌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