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아르헨티나 국가부도 위기…신흥시장 ‘연쇄부도’ 공포
우크라·카자흐·라트비아·터키·헝가리도 꼽혀
‘브릭스’ 국가들도 “소비자들 지갑 닫고 있다”
한겨레 이정애 기자
서방 선진국 시장이 국제공조로 진정 기미를 보이는 있는 가운데 신흥시장은 증폭된 금융위기의 파고에 휩쓸려 들고 있다.
파키스탄과 아르헨티나 등 신흥시장 국가들의 채무 부담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이들 국가가 연쇄 부도에 처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1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분석한 결과, 신용디폴트스와프(CDS·채권 발행자의 부도 위험을 바탕으로 설계된 파생상품) 시장에서 파키스탄과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아이슬란드 등의 국가부도 위험은 8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파키스탄의 경우, 루피화 약세로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고갈되면서 신용디폴트스와프 스프레드가 사상 최고치인 3026bp(0.01%=1bp)까지 치솟았다. 1천만달러의 빚을 보증하기 위해 300만달러 이상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를 고려하면 디폴트 가능성은 90%나 된다.
차입 의존도가 높은 금융구조 탓에 경제의 건전성이 우려되는 카자흐스탄과 라트비아는 물론, 경상수지 적자가 많은 터키와 헝가리도 국가부도 위험국으로 꼽힌다. 헝가리는 자국 화폐가 급속한 평가절하를 겪은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약속을 받았다. 헝가리의 화폐 포린트는 유로화에 대해 최근 2년 동안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아르비시(RBC) 캐피털 마켓의 신흥시장 연구 책임자 닉 차미는 “이들 나라가 몇 주 안에 디폴트 선언을 할 것이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위험이 높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국가가 “서구 금융위기의 부수적 피해자들”이라며 “좋은 시절에는 혜택을 누렸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고, 이들은 압박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지구촌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해왔던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까지 월가발 금융위기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프레드 후 골드만삭스 중국지사장은 “브릭스 국가들은 더이상 수출 성장과 원자재 가격 상승에 의존할 수 없게 됐다”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위기가 개도국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최근 수출하는 상품 가격 하락이 악재가 되고 있다. 쉬운 신용대출과 높은 실질임금을 바탕으로 소비지출 붐을 이끌어왔던 러시아에선 신용경색이 나타나면서 자동차·모기지 등의 대출 요건이 까다로워졌다. 50%에 달하던 러시아 시장의 신차 판매 증가율은 지난달 22%대로 떨어졌다.
인도는 콜센터 아웃소싱이 줄어들면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주문형 곰인형 생산업체 빌드어베어워크숍이 인도 내 매장 3곳의 문을 닫았고,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20%대의 성장률을 보였던 승용차 판매 수치가 올해는 8%대로 하락했다. 중국의 경우 주식시장 붕괴와 더불어 주요 도시에서 최근 몇 달 새 토지거래가 40~60%나 줄어드는 등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소비자들이 지출 규모를 줄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3일, 금융위기에 빠진 미국을 대신해 전세계를 불경기의 늪에서 구해줄 ‘희망’으로 여겨졌던 브릭스 지역의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고 전하며, 이런 경향이 확산될 경우 지구촌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기사등록 : 2008-10-15 오전 08:41:22 기사수정 : 2008-10-15 오전 08:5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