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양념갈비·햄으로 ‘국적 세탁’ 낌새

양념갈비·햄으로 ‘국적 세탁’ 낌새

도매시장 유통분 대부분 가공용 공장행
작은 식당선 양념육 쓸때 원산지 안밝혀
부정적 여론·환율 급등…수입량 예상의 절반

  김진철 기자 신소영 기자  

» 석 달 남짓 전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수입되기 시작했을 때 손님이 줄지어서 진풍경을 이뤘던 서울 시흥동 수입쇠고기 판매점 에이미트는 요즘 한산한 편이다. 21일 찾아가본 에이미트는 돼지고기를 찾는 손님들이 간간이 들르고 있었다. 에이미트 박창규 사장은 “주말에는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미국산 쇠고기 왜 눈에 안 띌까? 길고도 뜨거웠던 촛불은 너무도 쉽사리 무시당했고, 속절없이 미국산 쇠고기는 한반도에 재상륙했다. 뼈를 포함한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지 4개월째.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를 판다는 식당은 찾아보기 어렵다. 들어온 물량은 있는데 먹은 사람은 없는 셈이다. 그 많은 엘에이 갈비는 도대체 누구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걸까?

■ 수입이 예상보다 적다?

지난 6월 말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고시가 이뤄진 뒤, 이달 10일까지 국내에 수입돼 검역을 거친 미국산 쇠고기는 1만7330톤이다. 여기에 지난해 수입금지 품목이었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인 등뼈가 발견돼 창고에 쌓여 있던 물량 7000여톤을 포함해 모두 2만4912톤이 검역을 마쳤다.

육류수입업계에서는 애초 월평균 1만톤으로 예상했던 수입량의 절반 수준이라고 전했다. 수입량이 예상보다 적은 이유로는 △부정적인 여론 △경제위기에 따른 환율 급등 등이 꼽힌다. 그러나 지난달은 예상치를 넘어섰고, 이달도 열흘 동안에만 5000톤 넘게 들어와 수입량은 증가세를 보인다.

100여일 동안 2만5000톤 가까이 검역을 마쳤는데도 시중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보기 드물다. 고기구이집이나 설렁탕집 등 음식점 메뉴판에는 국내산이나 호주산, 드물게는 멕시코산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검역을 마친 물량 중 얼마나 시중에 풀렸는지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 월별 수입 쇠고기양

  

■ 창고에 쌓여 있다?

수입업자들은 미국산 쇠고기 상당량이 창고에서 풀려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검역은 거쳤지만 통관을 일부러 보류시키고 있거나 통관이 됐어도 회사 창고에서 풀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유통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위기에 따른 원-달러 환율 급등 탓이다. 한 육류수입업체 임원은 “직접 현금 거래하기보다는 은행이 3~4개월 지급보증을 서고 수입을 하는데, 환율이 올라 남는 게 없는 상황”이라며 “검역을 끝내고 통관하는 시점에 결제가 이뤄지는데 환율 급등으로 통관을 미루고 있는 물량이 많다”고 전했다. 달러당 1000원대에서 수입 계약을 맺었는데 최근 환율이 1300원대로 급등해 이익이 증발해버리자 업체들이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결제를 할 수 없어 통관을 보류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상당수 육류판매업자들은 “물건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과 반감에 더해, 최근 중국산 멜라민 분유 파동으로 수입식품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져 미국산 쇠고기 유통을 미루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최대휴 농림수산식품부 축산물위생팀장은 “검역·통관을 거쳐 수입은 됐지만 소비자 반응이 안 좋아 물량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 가공용으로 나간다?

시중에 풀린 수입 물량은 주로 도매시장에서 유통되고, 이 가운데 적잖은 양이 가공용 공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한 육류수입업자는 “정육점이나 식당 등에서 소비자들이 기피하다 보니 수입 미국산 중 도매시장에서 나오는 물량이 육가공 쪽으로 많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가공되는 쇠고기는 주로 공장에서 양념갈비·불고기 같은 양념육으로 만들어지거나, 프리미엄급 햄·소시지에 들어간다.

이런 경우 원산지 표시가 문제된다. 포장된 양념갈비·불고기가 소매점에서 팔려나갈 경우엔 미국산 쇠고기 비중이 50%를 넘어 원산지 표시 대상이 된다. 하지만 영세한 식당들이 공장에서 생산된 양념육을 들여와 팔 경우에는 원산지를 알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햄이나 소시지는 쇠고기가 50% 이상 들어가지 않아 원산지 표시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공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시중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미국산 쇠고기도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달 6~16일 동안에만 서울에서 미국산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어긴 음식점 네 곳이 적발됐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은 “여론이 들끓을 땐 원산지 표시 단속에 나서는 것처럼 보였지만 현재는 단속이 활발하지도 않고 음식점들도 원산지 표시를 제대로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 대형마트에 곧 깔린다?

미국산 쇠고기를 쉽게 접할 날은 머지않아 보인다. 여러 육류수입업자들은 “대형마트들이 원래 이달 10일께 동시에 미국산 쇠고기 판매에 나서려 했는데 멜라민 분유 파동으로 연기됐다”고 말했다. 판매 분위기가 상당히 고조됐다는 것인데, 한 육류업자는 “이달 말께 대형마트들이 판매에 나서기로 계획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육류업자들도 “최소한 내년 설 전에는 본격적으로 판매가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기존 수입 쇠고기의 경우 통상 수입물량의 15% 정도가 대형마트에서 판매된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