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진실은 무엇일까…5대 의혹 해부
의혹은 여전한데…검찰은 이미 ‘수사’ 끝?
기사입력 2009-02-02 오전 9:45:24
용산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본부(정병두 본부장)는 오는 5~6일경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미 검찰은 매일같이 언론을 통해 ‘잠정 결론’을 내보냈다. 수사 방향은 전국철거민연합이 불법·폭력 시위를 주도한 정황에 집중됐다. 6명의 희생자를 낳은 화재 사고와 진압 과정에 대한 수사는 뒷전으로 물러난 듯한 분위기다. 일부 언론은 화재 원인이 ‘영구 미스테리’가 될 것이라고도 보도했다. 이미 ‘짜맞추기 수사’라는 비난이 나왔다.
어느 정도 수사가 정리됐다는 검찰 측 입장과 달리 화재와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 대한 의혹은 여전하다. 철거민, 유가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의 주장과 경찰의 주장이 엇갈린다. 검찰 역시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확증 없는 주장으로 부인할 뿐이다. 현재까지 철거민과 검·경찰 사이에서 특히 첨예한 공방이 오가는 의문점을 정리했다.
■ “숨진 2명은 화재가 났을 때 망루에 없었다” vs “그럴리 없다”
지난 달 28일,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과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으로 이뤄진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은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사망한 고 윤용헌, 이성수 씨가 화재 발생 후 망루에서 옥상으로 뛰어내렸다는 것.
윤용헌, 이성수 씨는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망루에서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러나 화재 발생 당시 현장에 있었던 철거민 지석준 씨는 진상조사단과의 면담에서 “나는 망루에서 떨어지는 과정에서 다리를 다쳤다”며 “내 앞에 윤용헌 씨가, 내 뒤에 이성수 씨 순으로 망루에서 떨어졌고, 이성수 씨가 내 다리 위에 떨어져 이 과정에서 골절상을 입었다”고 진술했다.
▲ 지석준씨가 난간에 매달리는 모습. 지 씨는 다리가 부러진 자신을 돕고 있는 이는 이성수 씨라고 주장했다. 또 이 상황 바로 전 윤용헌씨는 사진 왼쪽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진상조사단
지 씨는 망루에서 뛰어내린 후 쓰러져 있는 자신을 흔들었던 이가 윤용헌 씨였으며, 자신을 불타는 망루에서 멀어지도록 부축한 이가 이성수 씨였다고 진술했다. 또 그는 이들이 뛰어내린 장소가 주차장 방향이며, 곧바로 베란다로 이동해 옥상 벽 불길을 차단하는 장소에 있었다고 구체적인 상황까지 묘사했다.
“망루에서 떨어져 있는 나를 향해 윤용헌 씨가 ‘성우야(지석준 씨의 아들이름) 정신 차려, 여기 있으면 죽어’라고 말했다. 윤용헌 씨는 남일당 빌딩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봤다. 그래서 나중에 윤용헌, 이성수씨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 그리고 그분들이 돌아가셨다면 골절상으로 돌아가셔야지, 왜 불타서 돌아가셨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 씨는 이 두 사람의 이후 행적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두 사람은 뛰어내린 후에도 스스로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진상조사단 측은 “지 씨가 굉장히 구체적이고 일관돼 진술을 꾸며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사진 또한 이야기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단은 “검찰은 이처럼 강한 의혹이 제기되면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같은 의혹을 두고 언론에 “말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BBS와의 인터뷰에서 “탈출에 성공했다면 누군가 시신을 다시 가져다 놨다는 것인데 당시 불길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며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 씨의 부상이 심해 조사를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 “철거민들이 시너 뿌렸다” vs “증거 없다”
최근 공개된 경찰의 채증 동영상에는 망루에서 불이 나기 직전 망루의 계단 부분에서 물이 쏟아지는 장면이 나온다. 지난 달 29일 검찰 관계자는 “여러 가지 근거로 판단할 때 이 액체가 시너일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며 “경찰과 소방대가 뿌린 물이 흘러내렸다기보다 시너를 농성자가 부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찰은 참사 현장에서 경찰이 촬영한 동영상과 물대포가 뿌려진 각도 등을 근거로 이 같은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시점이 경찰 컨테이너가 망루와 충돌한 시점과 발화 시점 사이임을 확인했다”며 “정확한 발화 시간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에 있던 채증용 비디오 카메라 9대를 모두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개된 또 다른 동영상에는 불길이 일기 시작한 뒤 철거민들이 다급하게 창밖으로 시너통을 내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검찰 역시 아직까지 망루 내 농성자나 경찰 특공대원으로부터 “망루 계단으로 시너를 부었다”거나 “붓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을 놓고 진상조사단 측은 ‘액체가 시너’라는 주장은 검찰의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이들은 지난 달 30일 성명에서 “망루 계단에 흐르는 액체가 물대포나 살수차에서 뿌려대는 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 유류인지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며 “당시 경찰특공대가 콘테이너에서 망루 안으로 물대포를 쏘고 있었고 시너통에서 나왔다고 보기에는 액체의 양이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동영상만으로는 판별하기 힘든데도 언론에서 누군가가 시너로 보이는 물질을 뿌렸다고 보도했는데, 명백한 오보”라고 주장했다.
■ “위험 알면서도 무리한 진압” vs “화염병이 화재 원인”
진상조사단은 “경찰이 이미 1차 화재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진압을 멈추지 않고, 2차 진압을 강행한 것이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강제 진압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찰이 진압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것.
사고 당일인 지난 20일 오전 7시 5분경 경찰특공대는 1차로 망루 3층까지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연행자가 발생하면서 망루 2층의 바닥이 가라앉았다. 철거민들은 당시 경찰이 망루 2층 바닥을 지지하던 기둥을 제거했고, 이로 인해 인화성 물질이 망루 내에서 뒤섞였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단은 “당시 망루 붕괴를 우려하며 특공대원들이 빠져나갔고, 곧이어 망루 내에서 1차 화재가 발생됐지만 1~2분 내에 진화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경찰은 오전 7시 16분경 두 번째 컨테이너를 건물 옥상으로 올려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컨테이너가 망루 지붕을 내리 찍고 옆면을 밀었다. 진상조사단은 “경찰은 이미 1차 화재가 발생한 것을 알았는데도 컨테이너를 망루에 충돌시키는 등 매우 위험한 작전을 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찰 무전 교신에 기록된 ‘컨테이너를 이용해서 5층 망루 해체작업 중입니다’라고 했던 교신과 동영상에서도 뒷받침되듯 컨테이너로 망루를 친 것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라 망루를 해체하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곧 이어 7시 20분경 망루 내에서 2차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를 지켜보던 한 기자는 “1차 화재와 달리 2차 화재는 인화 물질이 한 곳에 대량으로 모여 있다가 갑자기 폭발한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단의 지적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또 경찰은 2차 화재 이후 유류 화재이기 때문에 물로 소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대포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현재까지 일관되게 화재의 원인은 화염병이었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검찰은 “농성자가 경찰 특공대의 진입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망루에 불을 내려는 고의를 갖고 화염병을 던지진 않았지만 불이 붙은 화염병을 실수로 떨어뜨렸거나 방어 차원에서 던진 것이 큰 불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은 “망루에 진입한 경찰 특공대가 불씨가 될 만한 물건을 지참하지 않았고 전기를 사용하는 도구로 불이 났을 가능성도 매우 낮아 화염병 외의 화인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이를 뒷받침할만한 동영상 자료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 “경찰 구타 있었다” vs “없었다”
경찰 특공대가 농성자에게 폭행을 했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현재 철거민 변호인 측과 진상조사단는 생존자들로부터 일관되게 경찰에 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지난 달 26일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 마련된 임시합동분향소 앞에서 철거민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폭력을 증언했다.
진압 과정에서 연행된 A씨는 “경찰이 내 앞에 있던 남자를 곤봉으로 때린 뒤에 발로 밟았고 나도 맞았다”고 말했다. 또 A씨는 “연행이 된 뒤에도 경찰들이 너희가 사람이냐는 등 갖은 욕을 했다”며 “한 사람이 너무 춥다고 하니까 곤봉으로 치면서 조용히 하고 앉아 있으라면서 공포감을 유발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존자인 B씨는 “경찰이 여자를 곤봉으로 때리는 걸 보면서 공포에 치를 떨었다”고 말했다.
순천향대병원에서 치료 중인 천주석 씨 역시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왼쪽 눈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그는 “옥상바닥에서 떨어져서 엎드려 있는 것을 소방관들이 보았으나, 본척만척 하였고 ‘살려달라’고 하니까 경찰특공대를 불러, 나를 질질 끌고나가 호송차에 태워서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 마지막까지 옥상 난간에 남아있던 농성자들에 대해, 아래 쪽의 특공대원이 곤봉을 휘두르고 있다. 진상조사단은 “이 농성자들이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것도 아니고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단 제공
역시 입원 중인 김영근 씨는 화재를 피하기 위해 뛰어내렸으며, 건물 1층 높이에 튀어나온 가건물 샌드위치 판넬 지붕 위에 떨어졌다. 그는 당시 “누군가가 올라와 나를 끌어 내리면서 경찰이 ‘너 새끼 잘 걸렸다’며 옆구리를 걷어찼다”며 “떨어지면서 손에 화상을 입어서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으나 경찰들은 화상자국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호송차 바닥에 30분 가량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고 말했다.
또 진상조사단은 증거 사진을 제시하며 “마지막까지 옥상 난간에 남아 있던 농성자들에 대해, 특공대가 곤봉을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불타는 망루 내에서 여러 사람이 사망한 직후인 만큼 흥분한 상태일 수 있어서 충분한 설득을 통한 안정과 자진 하강 유도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도 경찰은 농성자의 안전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폭력 사실을 적극 부인하고 있다. 당시 현장을 지휘했던 경찰 특공대 제1제대장은 “내가 망루 현장엔 없었지만, 폭행은 전혀 없었다고 보고받았다”고 반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역시 “철거민 측 사망자 5명의 시신에 대한 부검에서 이들이 숨지기 전에 폭행당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철거민 측에서는 의혹을 놓지 않고 있다. 진상조사단 측은 “시신들이 불에 심하게 타서 변형된 상태라 진압 과정에서의 폭력에 의한 외상 유무를 판단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 “용역업체 있었다” vs “없었다”
진압 당시 용역업체 직원들이 동원됐는지 여부 또한 진위 논란이 팽팽하다.
김유정 민주당 의원이 두 차례에 걸쳐 공개한 경찰의 무전 교신에는 특공대원이 건물의 잠금 장치를 해제했다는 내용이 온다. 당시 기록을 보면, 경찰은 철거민들이 설치한 용접 장애물을 가능한 한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제거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경찰력을 동원한다는 작전을 편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검찰은 철거민이나 특공대원의 진술, 채증 동영상 어디에도 건물 안에서 용역업체 직원을 봤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경찰 및 용역업체 직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실제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작업을 수행한 것은 경찰특공대원이었다고 잠정 결론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용역들은 작전이 시작되면서 건물 밖으로 철수했다”며 1차 무전 기록에 대해서는 “어수선하고 급박한 현장에서, 지휘 간부들이 경찰병력을 오인해 보고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강이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