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신용등급 ‘줄줄이’ 하향
우크라이나 등 세계위기 ‘새 진앙’ 우려…EBRD 지원 나서
김외현 기자 류이근 기자
‘2차 세계 금융위기’의 진앙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동유럽 나라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떨어지고 있다. 동유럽 쪽의 집단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자, 서유럽의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지원에 나섰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25일 우크라이나의 신용등급을 ‘B’에서 두 단계 낮은 ‘CCC+’로 낮췄다고 밝혔다. 이는 투자적격 등급에서 무려 7단계나 아래로,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블룸버그 뉴스>가 보도했다. 에스앤피는 등급을 추가로 낮출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를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려놨다.
에스앤피는 “등급 하향은 2010년 대선 전 필요한 예산 수정과 은행시스템 개혁에 대한 폭넓은 정치적 지지가 없는 탓에, 우크라이나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리스크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불안정은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과 율리아 티모셴코 총리와의 깊은 갈등에서 비롯되고 있다.
2007년 7.6%를 기록했던 우크라이나 경제의 성장률은 지난해 2.1%로 떨어졌고, 올해엔 -9%를 기록할 것으로 에이치에스비시(HSBC)가 전망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통화기금에 164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전날 에스앤피는 라트비아 국채의 신용등급을 BBB-(장기)/A-3(단기)에서 BB+/B로 낮추고, 올해나 내년 안에 추가 강등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장기 신용등급 BB는 경제여건이 악화하면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투기적 요소를 반영하는 ‘정크 본드’(신용등급이 낮은 국가·기업이 발행하는 고위험·고수익 채권)로 분류된다.
에스앤피는 또 인근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지정하고, “세계적인 수요 감소와 서방 은행의 대출이 줄어, 동유럽이 역내 경제위기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들 발트해 3국뿐 아니라, 불가리아·헝가리·루마니아 등 동유럽 나라들이 대외부채와 경상수지 적자 등으로 ‘절망의 선’에 놓였다는 분석이다. 루마니아의 신용등급은 이미 지난해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졌다.
라트비아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들여오려던 75억유로(약 14.5조원)의 구제금융이 절실해졌지만, 이마저도 지난 20일 정권 붕괴로 불투명해졌다. 2004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할 즈음부터 활황을 이어온 라트비아 경제의 성장률은 지난 4분기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최저치인 -10.5%를 기록했다. 올해엔 -12%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유럽부흥개발은행은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전년보다 19억달러가 증액된 70억달러를 동유럽 나라들에 지원하기로 했다. 이 은행은 “동유럽의 심각한 경제위기는 지난 20년동안의 경제개혁이 후퇴하도록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저하던 서유럽이 급기야 나선 데는 동유럽 경제가 휘청이면 이 지역에 투자한 서유럽 은행들도 커다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악의 경우, 동유럽 최대 채권국인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스웨덴, 벨기에의 은행들도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3.5~11%에 이르는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김외현 류이근 기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