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제약회사 로슈의 푸제온 무상공급? 동정? (강석주)

제약회사 로슈의 푸제온 무상공급? 동정?
[인권오름] 강제 실시 청구에 이은 싸움들
강석주

출처 :  [참세상] 2009년03월05일 14시41분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1945

우리를 ‘동정’한다고?

초국적 제약회사 로슈가 별안간 ‘무상공급’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2009년 2월 25일 로슈는 에이즈치료에 필수적인 푸제온을 “동정적 접근 프로그램((compassionate access programme)’을 통해 한국에 무상공급한다”고 통보했다.

5년 만에 한국의 에이즈환자들은 푸제온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로슈의 이번 무상공급을 에이즈환자들에 대한 동정으로 볼 수 없다. 물론 생명을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로슈는 5년 동안 환자들의 호소와 요구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해 왔으며, 심지어 우리에게 절대로 약값을 낮출 수 없다며 약이 필요하면 정부에 약값을 올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빠를 것이라고 했다. 로슈는 에이즈환자들에게 치가 떨리는 회사다. ‘동정’이라고 포장한 로슈의 통보를 듣고 어이가 없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생명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은 환자, 보건의료, 인권단체의 끈질긴 투쟁과 국제적인 직접행동이 없었다면 로슈는 절대 푸제온을 무상공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  2008년 10월 9일 뉴욕에 있는 로슈의 광고대행사앞에서 미국의 에이즈활동가와 보건의료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출처: 푸제온.스프라이셀 공동행동]

약값을 올려주든지, 아니면 살해당하든지

우리의 싸움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5월, 푸제온이 식약청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더욱이 2000년 이후에 개발된 신약 중에 한국에 공급되는 약이 거의 없었기에 환자들은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가 공급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로슈는 스위스의 가격을 들먹이며 연간 약 3200만원을 요구했다. 연간 1800만원으로 보험 등재가 되자 로슈는 푸제온 공급을 거부했다.

그 후 2005년과 2007년 2차례에 걸쳐 정부에 약가인상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A7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일본, 이탈리아)의 가격을 들먹이며 연간 약 2200만원을 신청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인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해야하는 약을 2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이용하라는 것이 상식인가? 푸제온은 2003년에 미국과 유럽에 출시될 때부터 기존 약에 비해 월등히 비싸서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에이즈치료제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인지 아닐지가 푸제온의 약값에 달려있다. 푸제온 이후에 나올 신약들에 대해 푸제온 약값을 기준으로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1년에 4.2조, 2006년에 8.4조로 약제비가 5년간 2배 증가하자 복지부는 약제비를 절감하기위해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시행하였고, 필수약은 반드시 보험등재시키겠다고 호언장담 했다. 2008년 1월에 건강보험공단과 로슈의 약가협상은 결렬되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복지부는 손을 놓아버렸다. 약제비적정화방안이 약값기준도 없이 제약회사가 요구하는 가격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고, 공급을 거부해도 대책이 없는 제도라는 걸 몸으로 배웠다. 이는 작년 한 해 동안 줄줄이 결렬된 약가협상에서도 드러난다.

▲  2008년 10월 7일, 로슈규탄국제공동행동. 삼성동에 있는 로슈앞에서 기자회견, 문화제 등 ‘해가 뜨고 질때까지 12시간시위 go go’를 진행하였다. [출처: 푸제온.스프라이셀 공동행동]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로슈와의 투쟁

환자들이 제약회사와 싸우는 일은 쉽지 않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특허권을 가진 제약회사에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 약을 생산,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그런데 치료제가 필요한 것은 환자들이고, 약이 공급되지 않으면 치명적인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특허로 독점을 보장받은 제약회사는 이러한 점을 노리고 정부와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갔고, 성에 차지 않으면 약을 주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런 제도가 과연 기술을 발전시키고 환자의 생명을 위한 것인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작년 7월에 한국 로슈 사장을 직접 만나 ‘푸제온 약값인하, 즉각 공급’을 요구했다. 로슈는 ‘의약품 공급에 관한 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이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며 약값을 올리지 않으면 공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전 세계의 에이즈환자와 활동가들에게 건강할 ’권리‘를 구매력에 따른 ’자격‘으로 취급하는 로슈의 횡포에 대해 알렸다. 전 세계 곳곳에서 ’로슈규탄국제공동행동‘에 동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로슈 창립일인 10월 1일부터 각국에서 로슈에 항의전화 캠페인, 로슈앞 시위 등을 벌이고, 프랑스, 영국, 벨기에, 미국, 러시아, 프랑스, 카메룬, 남아프리카공화국, 잠비아, 말라위,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호주, 스리랑카, 베트남 등 세계 각지의 단체 및 개인들이 ’살인을 중단하고 푸제온 공급(Stop Killing and Give Us Fuzeon!)‘을 촉구하는 국제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러자 로슈 본사가 나섰다. 그 대답은 황망하기 짝이 없었다. 로슈가 푸제온을 공급하지 않는 건 푸제온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없어서라며 환자 탓으로 돌렸다.

우리를 존재하지 않는 생명으로 취급했다. 로슈의 지도에는 전 세계 감염인의 90%이상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동유럽이 없다. 우리의 지도에는 전 세계의 4천만이 넘는 감염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있다. 로슈가 90%의 환자들에게 푸제온을 공급할 수 없다면 우리가 그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작년 12월 23일에 한 ‘푸제온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청구였다. 로슈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푸제온과 똑같은 약을 생산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는 것이었다.

▲  12시간 공동행동을 하며 홍보용 박스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  

‘동정’이 아닌 ‘독점권 포기’를!

사회적으로 낙인이 심한 에이즈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어 투쟁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차별과 편견이 두려웠지만 환자들은 마다하지 않고 단상에 섰다. 한국에서 HIV감염인이 발견된지 23년만에 처음으로 거리에서 시위도 했다. 로슈가 우리를 건강할 ‘자격’이 없는 생명으로 취급을 했지만 오히려 심평원과 복지부 앞에서, 로슈 앞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외쳤다. ‘나는 에이즈환자입니다. 에이즈환자도 살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투쟁을 묻는다면, 거리의 투쟁보다는 복지부를 만나고 로슈를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 로슈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까? 지난 5년간 푸제온을 쓸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죽어간 생명들, 복지부, 건강보험공단, 로슈, 심평원, 국가인권위원회, 특허청 안 가본데 없이 찾아다닌 시간들, 그 과정에서 우리에 느꼈던 온갖 모욕과 절망은 ‘동정’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동정적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 푸제온을 필요로 하는 에이즈환자에게 공급할 수 있는 해결방안이 아니다. 로슈는 한국의 무상공급에 대해서도 ‘한시적 조치(temporary measure)’라고 밝히지 않았는가? 그동안 로슈가 푸제온의 ‘생산과정이 복잡하여 고비용이 소요되며, 연간생산량이 한정되어 있어’ 푸제온의 약값을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왔다. 약값을 비싸게 해야 혹은 특허권을 더욱 강화시켜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반대다. 2004년에 바로 한국에서 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아 코바이오텍(주)에서 푸제온을 단기간에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나 푸제온 생산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로슈가 갖고 있어서 이 기술은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그것도 세금으로 지원되어 개발된 기술이 말이다. 이처럼 ‘특허’는 푸제온을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을 방해한다.

5년간 생명을 무시하다 강제실시를 청구한지 2달이 지난 지금 ‘한시적 무상공급’을 하겠다는 것은 특허의 문제점을 은폐하고 강제실시를 막기 위한 행동이다. 로슈는 살인 무기였던 ‘푸제온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기술이전을 해야 한다. 특허청은 강제실시를 허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로슈를 ’살인기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