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주식회사’ 고집하는 윤증현의 학점은 ‘F’
[기고] 이명박 정부만 모르는 의료 민영화 현실
기사입력 2009-03-11 오전 7:57:07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호시탐탐 틈만 노리던 병원 영리법인화를 ‘선굵은 리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진한단다. “모두가 이렇게 잘 아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 아니냐”면서….
마치 정답이 명확하게 존재하는데 “이념 문제가 되는 바람에” 풀지 못했다는 투다. 그가 ‘잘 아는 문제’란 무엇일까? 경제학 개론 수준에 나오는 가격 차별화이며 더 정확히는 시장 분할이다.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서비스라면, 예컨대 줄을 서지 않는다면 돈을 더 내겠다는 부자들을 위해서 가격 차별화로 시장을 분할하는 것이 영리법인화의 핵심 목표다.
▲ 영리법인이 허용될 경우 병원의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란 점은 영국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뉴시스
기획재정부는 말한다. 건강보험은 그대로 두고 돈을 더 낼 의향이 있는 사람에게 추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뿐이고 돈 없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가격 차별화다. 예컨대 현재 커피의 균형 가격이 자신이 기꺼이 내려고 하는 값보다 낮으면 그 사람은 이른바 ‘소비자 잉여’를 누리게 된다. 이 사람들에게는 약간 품질을 달리해서 높은 가격을 매겨도 기꺼이 마시려고 할 것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으로서 누리는 명예 같은 것이 추가될 수 있다면(수익의 일부를 자선에 내 놓겠다고 할 수 있다) 금상첨화다.
호텔 같은 병원에서 줄 설 필요 없이 언제 가도 즉시, 친절한 진료를 받는 것을 꿈꾸는 부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들에게 추가로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널찍한 고급 시설과 기자재, 고급 인력이 필요할 테니 누군가 나서서 투자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투자를 하면 수익도 나눠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돈이 병원으로 들어오고 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리법인화다.
‘커피’가 아니라 ‘의료’ 문제다
그 대상이 커피라면 별 문제 없다. 그러나 의료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병원당연지정제(모든 병원은 건강보험 환자를 받아야 한다)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영리법인 병원은 어떻게든 건강보험 환자를 받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들이 오지 않을수록 더욱 쾌적하게 고급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간단하다. 호텔 수준의 시설 이용료나 고가 장비의 이용료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가 서비스를 많이 붙여 값을 올리면 된다. 의료만큼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도 드물다. 꼭 필요한 것 같지 않아도 의사들의 말을 어떻게 거역할까?
이제 병원의 양극화가 급속하게 진행된다. 영국은 대기자수를 줄이기 위해 NHS(National Health System·국가보건체계)의 일부 병원에 영리법인을 허용했다. 당연히 실력 있는 의사들이 월급 많은 영리법인 병원으로 몰려갔고, 대기자 수는 별로 줄지 않았다. NHS의 의사 숫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돈도 수익을 많이 내는 영리법인 병원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병원의 시설은 점점 더 밀리게 된다.
마치 40~50평 아파트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것처럼 영리병원의 이용이 지위재(status goods)가 되어 버리면 이제 중산층도 고급 서비스로 몰려가게 된다. 물론 세금을 더 집어넣어서 건강보험 병원의 시설과 인력을 보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증세에는 중산층도 반대할지 모른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예 외국인 투자를 10% 이상 유치해서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법인 병원을 세우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는 병원당연지정제가 적용되지 않으니 건강보험 환자를 아예 받지 않아도 되니 힘들여 쫓아낼 필요도 없다. 부자들을 위해서는 암이나 심근경색을 넘어서 훨씬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값비싼 민간 보험이 개발된다. 국민의 건강 정보를 민간보험기업에 넘겨주는 보험업법 개정(이른바 MB악법 중 하나다)이 노리는 바가 바로 이 지점이다. 바야흐로 정부의 민간의료보험 확대 정책은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다. 경제자유구역은 기존 인천, 부산, 광양에 더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면서 추가로 지정한 대구, 새만금, 황해(평택, 아산지역), 그리고 제주도 특별자치체까지 온 국토에 존재하니 사실상 병원 당연지정제는 깨진 것이나 다름없다.
건강보험 붕괴는 시간문제다
민간 보험료와 건강보험료를 이중으로 부담하는 부자들이 위헌소송을 낼 수도 있다. 건강보험 강제 가입은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종합부동산세 부부 합산을 위헌 판결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께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되면 사실상 건강보험은 붕괴한다. 부자들이 일순간 빠져 나가고 건강보험은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다. 만일 보험료를 올리면 남아 있는 사람 중에서 민간보험으로 옮기는 사람이 또 나타난다. ‘역선택’의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식코의 세계’다. 의료나 교육처럼 차별화가 가능한 서비스를 시장에 맡겨 놓으면 ‘단물 빨아먹기’(cream skimming) 현상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돈 되는 고급시장부터 차례로 챙겨서 돈과 인력이 그 쪽에 몰리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는 지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 개론을 들은 대학생도 이 정도는 안다. 한국의 기획재정부 장관, 그리고 일제히 옹호하는 사설을 올린 부자신문의 논설위원들, 일부 경제학자나 의사들만 실제로 모르거나, 또는 모르는 체 할 뿐이다.
의료서비스의 시장화가 일단 진행되면 여간해선 돌이키기 어렵다. 한국의 건강보험 비슷한 것을 만들려는 오바마의 악전고투를 보면 모르는가? 또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이 협정을 폐기하기 전에는 현재의 건강보험으로도 되돌아올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에는 래칫조항(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한 조항)이 적용되며 그 외의 땅에도 투자자국가제소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마디. 국제수지를 개선한다고? 영리병원에서 미국 국적도 줄 계획인가? 영리법인 병원이라고 간이나 심장을 돈으로 사서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얘길까? 그 문제라면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을 따를 일이다.
개론을 넘어 거시경제학을 아는 기재부 장관이라면, 예컨대 대운하 만드는 데 쓰일 세금을 투입해서 한시적으로라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대폭 늘려야 한다. 거의 정확히 그 액수만큼 소비가 늘어날 것이다. 복지 수준도 높아지고 동시에 내수도 증가하니 그 아니 좋은가. 미시로 봐도, 거시로 봐도 윤증현 장관의 경제학 점수는 F다.
/정태인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