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국회는 ‘독소’를 보기나 했나 / 정태인
[연속기고] ① 다시보는 한-미 FTA
왜 이 시점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인가? 지금 이명박 정부는 위기를 빌미로 시장만능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그 최후의 일격이다. 지난 3년간 지겹도록 얘기했지만 이 협정의 본질은 미국의 법과 제도를 한국에 이식하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이런 법과 제도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바로 역사가 우리 눈앞에 낫을 들이댔는데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기역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한 서비스시장 개방, 투자, 지적재산권 분야가 특히 문제다.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 부위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한국의 은행들이 미국 금융상품의 판매수수료나 챙기는 신세로 전락하리라고 예측했다. 이 예언은 이미 실현된 우리의 미래다. 법원이 불완전 판매로 판정한 우리은행의 파워인컴펀드가 바로 그것이다. 예금하러 간 할머니에게 높은 수익률을 약속한 은행원들이 미국의 파생상품을 제대로 이해하기나 했겠는가. 미국 금융당국도 제대로 감독을 하지 못했고 지금 수습도 하지 못하는 그런 상품이 일으킬 위기를 우리 금융위원회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고 믿을 수 있을까?
이런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현재유보에 대한 래칫 조항의 적용(더 많은 개방은 가능하지만 거꾸로 돌아가는 것은 금지), 미래의 최혜국대우(앞으로 다른 나라에 허용하는 특혜는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적용), 그리고 저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제소권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4대 독소조항이다. 이 중 투자자국가제소권은 미국 의회마저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조항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심지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이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우겼다니 협상단의 무능은 가히 하늘을 찌른다.
철도를 민영화했던 영국은 대형 사고가 잇따르자 시설부문을 재국유화했고 미국의 애틀랜타시는 수에즈사와 20년 계약을 맺은 물 민영화로 수질이 악화되고, 심지어 화재를 진압하지 못하자 중도에 계약을 파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위 독소조항들 때문에 이런 시정 조처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명박 정부는 세계경제의 흐름과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에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와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제도이사회 의장까지도 스스로 파산을 선언한 바로 그 정책들을 위기의 해법인 양 뿜어내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이들 정책으로 인해 바야흐로 빈사상태에 빠질 공공성을 확인사살하고 사경에 이른 환자의 수술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
딱 한마디로 진실을 말하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외교나 정치적 문제를 고려한다면 최소한 모든 조항을 하나하나 국회에서 뜯어보아야 한다. 오로지 쇠고기 협상만 제대로 국회가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문제점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국민이 동의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벌-경제관료-조중동이라는 지배 삼각동맹의 영원한 이익을 위해서 정부-한나라당이 비준을 서두르는 것뿐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뻔하다. 일정한 비율의 자동차시장 점유율과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까지 완전한 개방이 그것이다. 국민 몰래 (예컨대 부속 서한으로) 이런 걸 약속하면서까지 기어코 파국으로 폭주할 열차의 고동을 울려야겠는가?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