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기고 석면은 침묵의 살인자다.

              

석면은 침묵의 살인자다  
[기고]안종주 전국석면환경연합회장

2009년 04월 08일 (수) 14:46:58 안종주 전국석면환경연합회장 ( media@mediatoday.co.kr)  

한 때 기적의 물질로 불렸던 석면이 베이비파우더에서 검출되면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동안 지하철, 재개발·재건축 등과 석면광산 주변 주민, 석면방직업체 노동자 등의 석면 노출위험과 피해사례 보도를 통해 그 위험성을 막연하게 알고 있던 국민들은 이제야 그 위험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때론 정부 당국에 대한 분노로, 때론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석면이 1급 발암물질로, 침묵의 살인자로, 조용한 시한폭탄으로, 악마의 물질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석면 유해성 경고 20여년 만에 사회쟁점 돼

로마시대 때에는 석면으로 실을 만들고 옷감을 짜던 노예들이 폐질환에 잘 걸려 노예병으로 불렸다. 1900년대 들어 석면은 각종 산업용으로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석면광산 노동자와 석면제품 제조 노동자들이 대거 희생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석면이 폐암을 유발하고 흉막, 복막 등에 암이 생기는 악성중피종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는 1987년 모든 석면을 인간을 대상으로 한 1급(그룹 1)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환경보건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도 언론인 시절인 1987년 일본에서 사회문제가 된 베이비파우더 석면 혼입 사건과 관련해 문제가 된 베이비파우더 원료로 쓰인 탤크(활석)가 한국산과 중국산이므로 한국산 베이비파우더를 조사할 것을 촉구했지만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2005년 6월 일본에서도 석면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구보타라는 대형 건축자재생산업체의 노동자와 인근 주민 등 악성중피종 환자가 여럿 발생해 일본열도를 발칵 뒤집었다. 구보타 쇼크는 일본 국민 모두에게 석면의 위험성을 각인시키는 좋은 계기가 됐다.

이번 한국산 베이비 파우더 석면 검출 파문은 전 국민에게 석면이라는 1급 발암물질의 존재를 알리는 데 좋은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일본의 구보타 쇼크에 견줄만하다. 필자는 지난해 6월말 펴낸 책 <침묵의 살인자 석면>에서 다시 한 번 한국 베이비파우더의 석면 위험을 경고하면서 정부당국에 조사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다 지난 3월 중순께 KBS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이 필자에게 자문을 구해왔다. 마침내 석면 베이비파우더가 물위로 드러나 파문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베이비파우더와 화장품, 그리고 각종 제품에 한약방 감초처럼 들어가는 활석에 석면이 섞여 있을 가능성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거론돼 왔고 실제 조사결과 상당수의 제품에 섞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내셔널 인콰이러(National Enquirer)>는 1974년 11월5일자에서 “탤크파우더가 암을 일으킨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1976년 3월8일자 <워싱턴포스트>는 19개 베이비파우더 가운데 9개 제품에서 석면이 2~20% 혼입된 것을 검출했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이때부터 베이비파우더의 석면 혼입 문제에 대처해왔으며 4~5년 전부터는 베이비파우더 등 각종 화장품에 극미량의 석면이 들어있더라도 판매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관리를 해오고 있다.

위해성 과장되게 알리는 것도 문제될 수 있어

베이비파우더 파문은 어디가 종착역인지 모르고 달리는 기차처럼 질주하고 있다. 요즘 언론들도 석면과 관련한 기사거리나 아이템이 없는가하고 눈을 부라리며 달려든다. 자칫 석면의 위험성을 부풀려 국민이 불필요하고 막연한 공포감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면도 있다. 그동안 잘 몰랐던 위해물질과 1급 발암물질이라는 사실, 당장은 피해가 나타나지 않지만 30~40년 뒤에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한다는 석면의 특성이 국민들로 하여금 그런 행태를 취하도록 할 가능성이 높게 만든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석면의 위해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시민들의 석면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위험소통과 조사, 예방대책 마련을 제대로 철저하게 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의 후손들만큼은 석면 피해와 위험에서 벗어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