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쌀 조기 개방을 묻는다 / 송기호
[연속기고] 다시보는 한-미 FTA ③
출처 : 한겨레신문 2009-04-09 오후 09:47:45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49022.html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업 선진화 위원회가 지난 7일 쌀 조기 개방을 의제로 정했다. 정부가 쌀 조기 개방론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전혀 달라진다. 쌀 전면 개방과 맞물려 돌아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속에서 쌀을 전면 개방할 경우 그 파괴력을 쌀 산업은 견딜 수 있을까?
먼저, 쌀 조기 개방론을 보자. 이것은 쌀 전면 개방을 2014년까지 늦추지 말고 지금 개방하자는 것이다. 쌀 전면 개방을 늦추면 늦출수록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외국 쌀이 해마다 늘어나므로 늦추는 것이 손해다. 만일 2014년까지 늦추면, 그해 쌀 소비량의 12% 정도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무게로 40만톤의 외국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만 하는데, 경상남도 농민들이 지난해에 생산한 쌀이 모두 47만톤이니 엄청난 양이다. 더 심각한 것은 쌀을 전면 개방하게 되더라도 의무수입량이 없어지거나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복해 말하지만, 2014년 말에 쌀을 전면 개방하더라도 매년 최소 40만톤의 쌀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 이래서 나온 것이 조기 개방론이다. 쌀 의무수입량이 더 늘어나기 전에 전면 개방을 하자는 것이다.
조기 개방론은 일본을 본보기로 든다. 일본은 1999년에 조기 전면 개방하였지만, 쌀 수입량은 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일본과 미국 사이에는 자유무역협정이란 것이 없다. 그러나 한국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있는 한, 일본은 한국의 길이 될 수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한국 쌀이 관세감축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2008년 6월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서명 당시에 한국에는 쌀의 관세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쌀 의무수입량을 계속 늘려주는 대신 쌀의 전면 개방(이른바 ‘관세화’)을 하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감축할 대상인 관세율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는 쌀 관세율 감축 의무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2014년까지 쌀 의무수입량 증가를 약속했다는 조항이 따로 들어 있다. 만일 한국이 의무수입량을 늘리지 않으려고 쌀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당연히 쌀 관세율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의무수입량 증가라는 혜택을 잃게 된다. 당연히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제에 쌀을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쌀 조기 개방에 대비해 별도의 안전장치를 미국한테서 미리 받아 두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만일 그런 것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친절히 알려주기 바란다.
미국의 요구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제에 쌀이 포함된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이 지금 미국 쌀에 600%대의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는 것은 일본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히 미국 쌀에 관세율 특혜를 줄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이 아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하고 있다. 빨리 하자고 미국을 보채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한 상태에서 쌀을 전면 개방하면서, 미국 쌀에 500%대의 관세를 매길 수 있을까? 중국 쌀이나 타이 쌀에 매기는 관세를 똑같이 미국 쌀에 물릴 수 있을까?
처음부터 잘못된 쌀 협상이었고, 자유무역협정 협상이었다. 갈수록 무거워지는 의무수입량의 무게에 짓눌린 한국 쌀 앞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버티고 있다.
쌀을 조기 개방하려는가? 그렇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