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행병 우려에 떼돈 버는 제약회사, 어떻게 볼까
“특허권 강제실시, 정부 주도로 대량 저가 보급해야” 공공 제약회사 설립 요구도
2009년 05월 03일 (일) 22:07:29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1918년 스페인독감이 유행했을 때는 세계적으로 무려 5천만 명이 죽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3일 “SI(Swine Influenza)의 경제적 파급 영향과 대책”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인플루엔자A가 스페인 독감처럼 확산될 경우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3.2%에서 최대 -10.2%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5천만 명 사망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재앙이지만 실제로 아직까지 인플루엔자A는 마땅한 치료약이 없는데다 어떤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스페인 독감도 초기에는 증상이 심각하지 않았는데 첫 발병 4개월 뒤에 급속도로 확산됐다. 최근 확산속도가 일단 주춤한 상태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1957년 아시아독감 때는 200만 명이 죽었고 1968년 홍콩독감 때는 130만 명이 죽었다. 문제는 인플루엔자A가 그동안 유행했던 조류독감 같은 H5N1형 바이러스가 아니라 H1N1 바이러스라는데 있다. 전문가들은 H5N1형 바이러스에 듣는 백신을 개발하기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스위스의 로슈에서 만드는 타미플루가 유일한 치료제인데 타미플루는 일반적인 백신일 뿐 H151에 특화된 백신은 아니다. 만약 타미플루가 듣지 않는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날 경우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아직은 타미플루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구르는 상황이다. .
▲ 인플루엔자 백신, 타미플루. (사진출처 : 플리커)
우리 정부는 타미플루를 250만명분 확보하고 있는데 전체 인구의 5%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전체 인구의 20%를 보유하라고 권고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 등은 20%, 프랑스는 50%까지 확보하고 있다. 영국은 75%까지 늘리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250만명분을 추가 구매하기로 하고 630억 원을 올해 추가경정 예산에 반영했다.
타미플루는 한 명 분 가격이 2만5천 원 정도로 매우 비싸다. 하루에 2회, 5일간 복용하고 이후 10일간은 하루에 1개씩 복용해야 한다. 문제는 이 약의 특허권이 미국의 길리어드에 있고 이 약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스위스의 로슈 밖에 없다는 것. 독점 때문에 가격이 턱없이 높게 책정돼 있는데 현재로서는 물량이 달려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최근 성명을 내고 정부가 강제실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실시를 하지 않고서는 필요한 물량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조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는 특허권을 보유한 회사의 동의 없이 공익적·비상업적인 용도로 특허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도 탄저병 치료제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독일 바이엘의 특허권을 강제실시를 한 사례가 있고 대만에서도 2005년 국내 방역에 한정해 한시적으로 타미플루를 강제실시한 사례가 있다. 태국 정부는 강제실시를 발동해 에이즈 치료제를 절반 이하의 가격에 생산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에서 “공익적 목적을 위한 강제실시는 특허권자와 협의할 필요도 없고 생산능력만 확보되면 필요한 약을 생산하면 그만”이라면서 “강제실시로 1천만 명 분의 타미플루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허권자는 이러한 생산을 막지 못하고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고 “이는 WTO에 의해서도 보장받는 각국의 권한”이라는 이야기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현행 특허법은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일 때에만 정부가 나설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전쟁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된 다음에야 강제실시를 할 수 있다면 이미 늦는다”면서 “법 제도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특허법 개정안은 2007년 임종인 전 의원 등이 발의했으나 특허청의 반발로 무산된 상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또 “특허 강제실시를 실질적으로 담보하기 위해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의 간섭과 방해를 견딜 수 있는 공공 제약회사의 설립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우 실장은 “당장 약과 백신 생산이 필요한데 국영 제약회사가 없다면 연구개발도 실제 생산도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