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윤증현 장관, ‘미국 꼴등’, ‘영국 1등’인 게 뭘까요?”

“윤증현 장관, ‘미국 꼴등’, ‘영국 1등’인 게 뭘까요?”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의료 산업화’, 공부 좀 해라
기사입력 2009-05-18 오전 10:05:57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궤변을 늘어놓았다. 어려운 경제나 신경 쓰시지 뭐 그렇게 나서길 좋아 하는지 의료 산업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의료 제도까지 고쳐놓겠단다. 그러면서 들이댄 논거가 걸작이다.

“의료 시스템은 민영의료보험을 중심으로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미국식과 거의 공적보험으로 가는 영국, 유럽 시스템이 있는데 둘 다 문제가 있다. 영국은 거의 무료지만 의사들이 제한된 수가로 봉사하다 보니 메리트가 없다. 그래서 미국 등 다른 나라로 가버리고 저개발 후진국에서 의사를 모집한다. 환자들은 병원에 가면 퇴원을 안 한다. 병원 한 번 가려면 3~4개월 기다려야 한다.”

윤증현 장관의 ‘물타기’의 진실과 거짓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궤변을 늘어놓았다. 어려운 경제나 신경 쓰시지 뭐 그렇게 나서길 좋아 하는지 의료산업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의료제도까지 고쳐놓겠단다. ⓒ뉴시스

이는 윤 장관이 지난 15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조찬 강연에서 한 말이다. 여기서 진실은 미국은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민영의료보험 중심인데, 영국과 유럽식은 거의 공적 보험으로 한다는 것과 영국과 유럽의 의료제도는 거의 무료라는 사실뿐이다. 물론 다른 말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윤 장관의 개인 편견에서 나온 거짓말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듯 모든 제도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문제도 문제 나름. 개선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도 자체를 통째로 뜯어고쳐야 하는 치명적 문제가 있고, 개선 가능하기 때문에 제도 자체의 틀은 유지하되 나쁜 것만 없애는 방향으로 가도 되는 정도의 문제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미국 의료시스템은 거의 망했고, 공적 보험으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과 유럽 시스템은 날로 흥하면서 특히 경제 위기 국면에서 국리민복(國利民福)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 경제를 이끌고 가는 경제부처 수장이 개선 불가능한 치명적 제도와 개선 가능한 제도를 섞어 놓고 둘 다 문제가 있다는 식의 물 타기 논법을 전개하는 것은 국가 신인도와 국민 안위에 “치명적 문제”를 안긴다.

의료산업화로 의료후진국으로 전락한 미국의 고백

“미국 의료제도는 망했다.” 나의 주장이 아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이야기다.

미국 정부의 계산에 따르면, 매년 1만8000명이 부실한 의료체계로 인해 불필요하게 사망하고 있다. 이 숫자는 매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가는 미국인과 테러리스트 공격으로 희생당하는 미국인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이를 빗대 CNN 인터넷판은 5월 16일 톱으로 “오바마의 치명적인 적은 내부에 있다”고 일갈했다.

CNN은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10년 전에 의료 문제를 개선했지만, 미국만은 (선진국들의) 가장 공통된 개선책인 국가 의료보험, 즉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회피해왔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 도입은 거부하고 의료 산업화를 신나게 추진한 미국은 재벌병원과 사보험(민영보험)의 천국이 되었고, 대한민국 인구보다 더 많은 5000만 명에 달하는 국민(미국민의 4분의 1 이상)이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의료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전국민 의료보험은 사회주의”라며 미국 망친 우파들

물론 미국에도 국가 의료보험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전국민 복지”가 아니라 “잔여적 복지” 차원으로 극빈층과 노인들에게만 적용된다. 공화당 류의 우파들은 정부가 사회적 약자의 의료보험만 운영하면 된다면서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을 “사회주의”로 낙인찍고 그 도입을 줄기차게 가로막아왔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국가 의료보험제도에 들고 싶어도 그런 게 없으니, 회사를 통해 민영보험을 들 수밖에 없다. 우리로 치자면 내가 다니는 회사가 삼성생명 같은 사보험사와 계약을 맺어 나의 의료보험을 들어준다는 이야기다.

회사는 정부에 의료보험비나 관련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삼성생명 같은 사보험사에 보험료를 납부하고, 삼성생명은 거기서 이윤을 취한다. 국가는 개입하지 않고, 민간의 사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의료보험을 “산업화”하여 장사를 하는 시장원리에 가장 충실한 의료보험 제도인 것이다.

시장원리에 내맡기다 보니 여러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돈 버는 게 주목적인 사보험사가 의료보험을 장악하고 있으니 의료보험제도가 국민 건강증진을 위해 움직이기는커녕 사기업의 이윤증식 논리를 따라간다.

미국 민간의료 보험료는 연 10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우선 보험사에 내는 보험료가 국가 규제를 받지 않고 시장 논리로 결정되다 보니 터무니없이 비싸다. 4인 가족 기준으로 1년 의료보험료가 1000만 원을 훌쩍 넘는다(물론 부동산이나 주식시장 투기로 놀고먹으며 떼돈을 버는 이들에겐 껌 값이기는 하다).

또한 보험사가 피보험자의 의료행위를 적극 지원하기보다는 치료비가 많이 들어 보험사의 이윤 축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의료 행위는 억제하는 방향으로 병원과 환자에 압력을 행사하고, 심지어는 보험사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병원과 환자를 상대로 법정 분쟁으로 몰아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에서 피보험자의 의료서비스에 사용되지 않고 민간보험사의 운영비, 인건비, 법정소송비 등 비(非)의료비로 나가는 비중이 꾸준히 증가해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그루그먼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국가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는 재원의 2%만을 관리비 명목으로 지출하는 반면, 사보험사의 경우에는 관리비용이 15%에 이른다. 물론 이 비용은 민간보험사의 행정비용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며, 의료비 지급을 담당하는 많은 인력을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추가 비용 역시 포함하지 않았다.

미국 1인당 의료비는 ‘무상의료’ 영국의 2배

그러고도 미국 정부의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사회주의식”인 영국의 두 배를 넘었다. 2004년 미국 정부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6102달러인 반면,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영국은 2508달러였다. 국가의료보험제도였으면 지불되지 않았을 돈이 민간보험사 주도의 시장논리가 관철되는 민영의료보험 제도이기 때문에 쓸데없이 낭비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의료제도는 들어가는 돈에 대비한 생산성과 효율성이 선진국 가운데 최악으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 전무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그 솔직한 자기 고백이 오바마 대통령의 “우리 의료 제도는 망했다”다.

2007년 의료 문제 연구를 지원하는 미국의 민간재단인 커먼웰스펀드(Commonwealth Fund)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의료의 질, 효율성, 형평성, 접근성 따위에서 영국은 사보험의 천국인 미국은 물론 공공의료보험이 주를 이루는 나라인 캐나다, 독일, 뉴질랜드, 호주를 앞섰다.

2007년 전체 순위를 보면 영국 1위, 독일 2위, 호주와 뉴질랜드가 공동 3위, 캐나다가 5위, 미국이 최하위인 6위였다.

“남 나라 탓하기 앞서 한국의 사보험 ‘나이롱’ 환자부터 챙기시죠?”

윤증현 장관은 “외국에서 사람이 들어오면 학교 가는 게 가장 큰 문제이고 그 다음이 병원이다”며 우리나라 학교와 병원이 큰 문제가 있는 듯이 말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우리나라 학교의 학력 수준은 OECD 최고 수준이고, 병원은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경탄할 만큼 값싸고 질 좋다. 그래서 오바마는 한국의 교육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고, <조선일보>는 우리나라 병원에 외국인 의료 관광객이 벌써부터 많이 찾아온다는 기사를 낸 적도 있다.

일국의 장관이라면 속내는 따로 있으면서 물 타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물론 외국인이 국내 학교와 병원에서 의사소통의 문제를 겪는다고 말한다면 말이 된다. 착각하지 마시라. 영어 문제가 아니다. 미국식 좋아하는 윤증현 장관의 머리 속에 외국인은 미국인이거나 영어를 쓸 줄 아는 부자 백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의 상당수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물론 이들은 윤 장관이 추진하고 싶은 “의료 산업화”의 수혜자인 “외국인”의 범주에는 끼지도 못한다.

윤 장관은 “(영국에서) 환자들은 병원에 가면 퇴원을 안 한다”고 말했다. 막 말이고 영국민에 대한 인격모독이자 대한민국 장관의 수준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작년 12월 영국 병원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어서 살펴보니, 영국 환자들도 입원보다 퇴원하길 좋아하고 병원에 머물기보다 집에 가길 좋아한다.

병원에 가면 퇴원을 안 하고 삼성생명 같은 민간보험사 보험료 타먹는 재미로 버티는 환자들이 있는 득실대는 나라도 있다. 대한민국이 바로 그 나라다. 사보험사 감독 기능까지 장악한 경제부처의 수장이라면 남의 나라 환자 타령하기 전에 자기 나라 ‘나이롱’ 환자부터 감독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윤증현 장관님, 미국 공부 좀 하세요”

윤 장관은 경제 정책 통합 조정 기능을 높여야 한다는 질문에 “이젠 어느 한 사람의 천재가 이끄는 시대는 지나갔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고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혼자 잘난 천재처럼 까불대다가 대한민국 의료제도를 미국 꼴 만들지 말기 바란다. “산업화·상업화”라는 시장 논리를 의료제도에 들이댄 나라는 모두 의료후진국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일 것은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위기의 주범인 미국 금융회사들이 실은 민간보험업도 같이 해왔다는 점이다. 미국의 민간보험제도에 기생하여 단물 빨아먹고는 온 세계를 경제 파탄으로 몰아넣은 배경에 “산업화·상업화” 중심의 의료제도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약화되고 그 자리를 삼성생명 같은 사보험사들이 채운다고 상상해보라. 삼성병원 같은 일급병원들은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상상해보라. 삼성생명과 삼성병원이 윤증현 장관이 주장하는 “의료 산업화”의 날개를 달고 국민건강보험의 규제망을 피해가고 더 나아가 국민건강보험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해보라.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우리의 의료제도는 망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자기 고백이 대한민국의 것이 될 것이다. 국민세금으로 만든 서울대 나와 국민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호의호식(好衣好食)해온 윤증현 장관과 경제 관료들은 미국 의료제도가 왜 망했고 세계경제위기가 왜 왔는지 공부 좀 하시기 바란다.

/윤효원 ICEM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