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마련 계기로” 조심스런 환영속 “돈 때문에 죽음 선택” 부작용 우려도
21일 대법원이 회복 가능성 없는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함에 따라, ‘존엄사 제도화’ 논의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의료계는 대법원 판결을 대체로 반기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된 제도를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존엄사 허용 논란은 ‘보라매병원 사건’을 계기로 본격 불거졌다. 1997년 12월 뇌를 크게 다쳐 회복 가능성이 없었던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를 퇴원시켜 달라고 보라매병원 의료진에 요구했고, 이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킨 의료진은 환자가 숨지자 검찰에 기소됐다. 2004년 6월 대법원은 해당 의료진에게 살인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의료계는 ‘연명치료 중단’ 길을 터 줄 것을 거듭 요구했다. 최근엔 의사 출신인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이 불합리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자는 존엄사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그동안 환자 가족의 요구에 따라 일부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일도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존엄사의 제도화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입법화하는 데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대법원이 존엄사 허용 요건을 제시했으나, 이런 기준을 판정할 기구나 절차를 마련하는 과정부터 녹록지 않은 탓이다. 의사협회는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과 의사의 의학적 판단 인정 범위 등에 대한 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기획조정실장은 “의료계와 시민사회 및 종교계 등이 모여 임종 환자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형편 때문에 꼭 필요한 치료를 포기하는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치료비가 부담돼 환자의 인공호흡기 등을 제거했다가 처벌받은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김정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최소한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기사등록 : 2009-05-21 오후 08:54:30 기사수정 : 2009-05-22 오전 12:3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