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밖에서 시행되는 임상시험 이면에는…
듀크대 연구팀 “윤리·질·과학적 가치에 문제있어”
미국의 대형 제약사 대부분이 임상시험의 실시 장소를 해외로 급속하게 이전하고 있는 가운데 반대 견해도 높아지고 있다.
피험자의 경제상태와 교육수준이 미국보다 낮은 동유럽국가나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서 여러 임상시험의 실시가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시험의 윤리성과 질적관리, 그리고 시험결과를 미국인에 적용했을 때 과연 과학적 가치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듀크대학 푸쿠아경영대학원 세드 글리크먼(Seth Glickman) 박사와 듀크임상연구소(DCRI) 케빈 슐먼(Kevin Schulman) 박사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한 내용을 알아본다.
연구책임자인 슐먼 박사는 “임상시험을 감독하는 곳은 당연히 미식품의약국(FDA)이지만 FDA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만한 기구를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2002년 이후 미국 이외의 지역에 근거를 둔 FDA의 치험 책임자수는 매년 15% 증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의 치험 책임자수는 같은 기간 5% 느는데 그쳤다.
박사팀은 Clinical Trial.gov 임상시험 등록 시스템을 통해 2007년에 기업 스폰서를 받고 실시된 제3상 임상시험에서 나타난 피험자 모집 패턴을 검토했다.
제3상 임상을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임상시험 과정에서 수천명을 대상자로 하는 경우가 많고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치험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임상시험의 약 3분의 1(509건 중 157건)이 미국 밖에서 실시됐으며 주요 임상시험 시설의 절반 이상은 미국 이외 지역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만 4,206곳 중 1만 3,521곳).
또 1995년과 2005년에 NEJM, JAMA, Lancet에 발표된 임상시험 결과와 관련한 300건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시험실시 시설은 개도국에서는 2배 증가했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리크먼 박사는 “개도국에 임상시험을 하는 매력은 저렴한 치험 비용과 더 많은 피험자를 모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예컨대 인도의 치험비용은 미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개도국 정부의 임상시험 실시에 대한 추진력도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피험자 보호를 위해 세워진 임상시험 시책은 사실상 미국내 연구 실시의 저해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피험자 요구 무시
개도국에서 진행되는 임상시험은 현지 피험자의 의료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글리크먼 박사는 “기업이 판매할 예정이 없는 나라에서 의약품 시험을 실시하는 것은 확실히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도국에서 유병률이 높은 말라리아나 결핵 등의 치료제가 아니라 알레르기성 비염, 과활동성방광 등 선진국 시장규모가 더 넓은 의약품을 시험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사회생태학과 유전학적인 차이도 임상시험의 결과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박사는 “사회생태학적, 유전학적으로 특징이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결과를 얻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의료자원이 풍부한 선진국은 일정한 특징을 가진 환자를 만들 수 있지만, 자원이 부족한 나라의 피험자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2개의 집단에 동일한 의약품을 투여하면 매우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유전자 다형 즉 어떤 집단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일정 의약품에 대한 반응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특징이 없는 환자 집단 간에 임상시험 결과를 공유하는 것도 무리가 될 수 있다.
박사는 “의약품·의료기기산업의 미래는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미국의학연구소(IOM)이나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의해 산업계와 연구자, 규제당국, 환자변호단체가 의견을 모으기 위한 국제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메디칼트리뷴 (webmaster@medical-tribu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