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과 제주 영리병원, ‘주식회사’라는 신흥종교
Business 2009/07/2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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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파동과 제주 영리병원 파문을 지켜보면서,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신흥 종교를 하나 발견했다. 바로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영리기업의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다.
미디어법은 경제 관련 법안이라고 한다. 이 법 통과로 미디어 산업이 더욱 성장하고 이에 따라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이라는 게 논리의 핵심이다. 그 핵심을 좀 더 뜯어 보면 더 단순해진다. 방송에 대기업 자본이 투자되면 지금보다 더 효율적으로 경영되고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영리 대기업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그 핵심인 것이다.
제주도 의회에서 얼마 전 통과시키면서 파문이 일었던 영리병원 설립도 마찬가지 논리다. 제주 영리병원이 허가되면, 외부에서 영리 투자 자본이 들어와 병원을 설립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병원은 뛰어난 경영 능력을 가진 영리 기업이 운영하기 때문에,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현재의 비영리 병원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래서 해외 환자들도 국내로 유치할 수 있다고 한다.
두 가지 모두, ‘영리 기업의 효율성’에 대해 맹신하는 점에서 보면, 거의 비슷하게 신흥 종교급의 논리다.
레스터 서로의 한숨
세계적 경제학자인 레스터 서로 교수의 강의를 두 학기에 걸쳐 들은 일이 있다. 한 번은 서로 교수가 강의실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풀리지 않는 퍼즐이야. 미국 의료의 질이 높다고 하는데, 효율성을 따지면 미국이 늘 비판하는 유럽 국가보다 엄청나게 뒤떨어지고 있거든. 정부 재정도 몇 배나 더 들어가고 있다고.”
제주도 의회에서 영리병원 설립안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그 때 그 장면이 떠올랐다. 미국의 영리병원 비중은 18%나 되고, 세계적 수준의 의료진과 설비를 자랑한다. 그런데 그 나라를 대표하는 주류 경제학자가 왜 그렇게 한숨을 지었을까? 한숨의 대상이 된 그 영리법인 중심 의료 시스템을 왜 우리 사회에서는 그리도 동경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서도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경쟁으로 의료의 질을 높인다. 둘째,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병원 경영을 정상화한다. 셋째, 외국이나 대기업으로부터 대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해 의료계 전체를 질적으로 도약시킨다.
미디어법을 지지하는 논리도 비슷하다. 일부 신문사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정치 이슈인 ‘신방겸영’을 제외하고 나면, 대기업 등 외부 영리 자본이 투자되면 산업이 발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논리가 남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주식회사면, 대기업이면 경영 수준이 높다?
여기에는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영리법인에 대한 오해와 환상이 함께 묻어 있다.
우선 흔한 오해부터 풀자. 영리법인과 비영리법인의 차이는 잉여의 분배 방법이다. 경영 효율성이 아니다. 비영리법인이라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경영을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제대로 보수를 주로 전문가를 고용해 경영을 효과적으로 하면 된다. 사업을 벌여 돈을 벌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서비스를 잘 구성해 고객을 찾아 팔면 된다.
차이는 단지 배분시스템에 있다. 주식회사는 잉여가 생기면 궁극적으로는 주주에게 배분하는 게 원칙이다. 비영리법인은 잉여가 생겨도 소유주에게 배분하지 않는다. 법인의 사명을 위해 사용하게 되어 있다. 설립자도 후원자도 이사진도 직원도 비영리법인의 잉여를 가져가지 못한다.
그러니 의료의 질이나 경영 수준 때문에 영리병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오해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그게 문제였다면, 영리법인 이야기를 꺼낼 게 아니라 효과적인 경영시스템이나 경영자 자질 문제를 꺼내는 게 맞다. 비영리법인도 얼마든지 경쟁하면서 효율성을 높여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리법인이 되면 경영이 정상화 되고 적자가 메워질 것이라는 기대도 오해다. 주식회사라고 해서 돈을 벌어올 날고 기는 재주는 없다.
실제 미국의 병원을 보면, 영리병원의 재정 상태는 들쭉날쭉이고, 비영리병원이 오히려 안정적이라고 한다.
잭 웰치 ‘전향’의 시사점
다만 영리법인이 외부 투자 받기는 더 수월할 수 있다. 투자해서 더 큰 돈을 단기에 벌어갈 수 있다는 강력한 동기를 줄 수 있어서다. 그런데 같은 이유에서 이런 성격의 자금이 공공성을 띤 서비스에 잘 맞는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외부 투자자가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세운 뒤 나중에 잉여를 모두 가져간다면 도민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 될 리 없다.
우리는 흔히 영리법인이 주는 이윤동기가 자동으로 생산성을 높여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이윤동기는 이윤을 챙겨가는 데 기여할 뿐, 실제 성과를 높이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장 이윤동기에 철저하게 경영되던 투자은행들과 제너럴 모터스 같은 미국 대표 기업들이 몰락하고, 제너럴 일렉트릭 전 회장인 잭 웰치 같은 사람이 ‘주주가치만을 위해 경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고백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특히 사회적 성격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사명에 의한 동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
‘비영리’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후진성
사실 한국사회가 비영리법인을 보는 시선은, 두 가지 점에서 극단적으로 엇갈리면서 후진적이다.
우리는 때로 비영리법인을 영리법인처럼 ‘사고 판다’고 여긴다. ‘어떤 대기업이 어느 대학을 인수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게 그 사례다. 학교법인은 대표적 비영리법인 중 하나다. 원래 소유주가 없기 때문에 누구도 사고 팔 수 없다. 물론 이사회를 장악하면 운영권을 갖게 될 수 있지만, 이는 소유와는 다른 개념이다.
반대로 비영리법인은 ‘경영’이나 ‘사업’을 하면 안 된다고 여기기도 한다. 비영리법인이 비경영이나 비사업조직인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경영을 하고 사업소득을 창출할 수 있고, 그 일을 영리법인보다 오히려 더 잘할 수도 있다.
주식회사에 대한 오해와 환상을 버리고, 냉정하게 따져 물어봐야 한다. 이 사업은 이윤 동기가 성과를 끌어내는 데 더 중요한가, 아니면 사명이 더 중요한가?
사명이 더 중요한 경우라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라. 비영리 법인이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사회적기업이 더 세련된 사업을 벌일 수 있다. 그들이 더 세련되고 효과적인 경제를 만들게 하라. 이윤을 노리고 외부에서 들어온 거액의 투자가 반드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다. 밑바닥부터 촘촘히 짠 경제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미디어와 병원이야말로 전형적으로 이윤보다 사명을 앞세워야 하는 비영리 조직에 가까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불행해질 수 있는 조직이다. 이런 조직에 이윤을 강요하는 시스템을 이식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사명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경제는 돈이 아니라 행복이다
우리 경제에 부족한 것은 이윤이 아니라 사명이다. 피터 드러커도 말년에 비영리조직의 경영에 관심을 기울이며 ‘미래에는 사명중심 조직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는 돈이 아니라 행복이다.
이원재 ( 한겨레경제연구소 홈페이지 www.her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