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간 큰 도지사의 밀어붙이기식 행보, “우리는 무소불위의 권한 위임한 적 없다”

[오마이뉴스] 간 큰 도지사의 밀어붙이기식 행보
우리는 무소불위의 권한 위임한 적 없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광역단체장 주민소환 투표를 앞두고 있는 제주도. 이번 주민투표와 관련 이규배 탐라대 교수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 교수는 일본 와세다대에서 일본정치사를 전공했으며, 제주4.3연구소 소장과 제주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 역임하고 이번 ‘김태환지사 소환운동본부 100인 대표’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의 글은 세 차례 실릴 예정이며, 이번이 두번째 글입니다.  <편집자말>  

  
  
▲ 제주지사 직무 정지가 내려진 이후 7일 오전 한림 성이시돌 요양원에서 입소 노인들과 ‘말벗’ 봉사활동 중인 김태환 주민소환대상자. 이 방문에 대해 선관위는 위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 김태환 홈페이지  김태환

찬반이 대립하는 민감한 정책사안에 대해서는 주민의 뜻을 ‘충분히’ 물어보고 가는 것이 돌아가는 듯하면서도 가장 빨리 가는 길이다.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만큼 정책추진력도 힘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수년간에 걸친 제주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론은 영리병원 반대, 도지사는 여론 거부

김태환 제주도지사도 이에 공감했는지 작년 7월 영리병원 도입문제에 대해 여론조사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갈등이 확대되고 통합을 저해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과반수가 찬성하지 않으면 아쉽게도 도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도민의 뜻을 물어본다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일방적으로 동원된 관제 반상회, 관제 광고, 공무원, 관변단체, 자생단체들을 총동원한 일방통행식 찬성 여론몰이였다. 반대단체들의 입과 수족은 철저히 결박당한 채, 도지사는 할 수 있는 모든 물량을 총동원했다. 사실 도지사는 ‘승리선언’만 남겨둔 상태였다.

그러나 전 행정력을 ‘올인’하며 전력투구한 여론조사는 50%가 넘는 찬성은커녕 반대 의견이 더 높게 나타나고 말았다. 도지사가 “이 순간부터 모든 것을 접어두고 도민평가를 겸허히 수용하기 바란다”고 발언한 것은 사실상 패배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불과 1년이 채 안 되는 금년 7월, 명명백백했던 도민의 의사를 짓밟고 도지사는 도의회라는 우회경로를 이용하여 영리병원유치를 의결·통과시키는 폭거에 나선 것이다. “주요 정책 사업을 단지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궤변과 함께. 도민들은 저 오래된 자유당 시대와 유신 시대를 떠올려야 했다. 도대체 도지사의 눈에 제주도민은 과연 무엇으로 비치고 있던 것일까?

이 시대를 견인하는 두 가지 원칙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고 한다. 도지사가 스스로 주도했던 여론조사에서 부결된 사안, 그래서 ‘도민평가를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고백했던 도지사가 이런 ‘파쇼적 방식’으로 정책을 번복시킨다면,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가 서 있을 곳은 어딘가?

제주4·3 짓밟는 이들에게 ‘명예도민증’이라니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4.3 너분숭이 유적지.  
ⓒ 윤성효  너분숭이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도에는 1948년에 발발한 이른바 4·3사건이라는 미증유의 학살사건이 있다. ‘빨갱이’ ‘폭도’라는 이유로 무고한 양민의 억울한 죽음이 수만 명에 달한다. 이념 문제를 가지고 따질 수 없는 어린이와 노인 희생자가 수천명, 여기에 나약한 여성 희생자도 전체의 5분의 1을 넘어선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이 사건을 가리켜 ‘국가공권력에 의한 학살’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다행히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에 의한 공식사과(2005.10)도 이루어져서, 반 세기가 넘도록 맺혔던 유족들의 억울함과 한이 해원되기에 이르렀다.

폭력에 의한 고통과 아픔을 알기에 도민과 유족들은 사건의 진실은 규명하되 가해자 처벌이 아닌 화해를 갈망해 왔던 것이다. 피붙이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묻겠다는 관용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수많은 비극의 과거사 중에서도 ‘진실과 화해’를 내건 4·3사건의 해법은 전범(典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4·3에 대한 기존의 모든 평가를 뒤엎으며 이념적 재평가를 공언하며 나섰고, ’4·3특별법’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4·3위원회’ 폐지는 물론이고 희생자 결정까지 번복할 수 있도록 하는 ’4·3특별법’ 개악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금년 4월 이처럼 ’4·3특별법’을 개악하려는 4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도지사가 ‘명예도민증’을 수여하겠다고 도의회에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여론의 질타와 후폭풍이 몰아닥친 것은 사필귀정이었다. 이로부터 3일 후에 도지사는 “명예도민 위촉 제도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누가 되지 말아야 한다”며 명예도민증 수여 보류를 시사했다.  

그러나 다시 두 달 후에 도지사는 재차 이들 4명의 의원들에게 명예도민증을 수여할 것을 도의회에 요청했다. 도민사회의 여론이나 유족들의 심정도 아랑곳하지 않는 행보가 이어진 것이다. 다행히 도민 정서를 감안한 도의회 의장의 직권으로 상정보류 결정이 떨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달 뒤인 7월, 완전 좌초된 것으로 보였던 명예도민증 문제를 도지사가 3번째로 도의회에 상정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명예도민증 수여 결정이 강행처리됐다.

도지사는 약 100일 사이에 같은 안건을 무려 3차례에 걸쳐 강행 상정했다. 결과적으로 도지사와 도의회는 ‘동죄’이다. 민심도 여론도 제주의 역사성도 이다지도 무참하게 짓밟는 도지사였다. 소환운동은 이렇게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격이며 병든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도지사를 회수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몸부림인 것이다. 이것도 도지사의 ‘고유한 행정행위’라는 이유로 통 크게 눈감아 주는 것이 도리인가?

알뜨르 비행장과 도지사의 치명적인 ‘여죄’

금년 4월 도지사는 정부와 제주해군기지 기본협약(MOU)을 체결했다. 도지사는 ‘시기상조’ ‘충분한 협의’라는 도민사회·도의회의 만류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절차적인 측면에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도지사를 향한 다양한 분노가 터져나왔다.

“일방적으로 제주해군기지 MOU를 체결하는 김태환 제주도정에 대해 분노와 경악을 금하지 못하며 민주질서를 파괴하고 주민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 단 한 번의 공론화 과정도 없이 ‘번개 불에 콩 볶아 먹듯’ 내 땅, 내 마을, 내 공동체를 내놓으라면 어느 누가 내놓겠는가.”(강정마을)

“지난 9년 동안 제주사회에서 첨예한 갈등으로 점철돼 왔던 해군기지 문제를 제주도의회의 거듭된 ‘MOU 체결 연기’ 권고에도 밀어붙이고 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빈 껍데기 계약’에 그칠 공산이 농후하다”(도의회 행정자치위원장)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MOU 체결만큼은 그동안 수많은 도민들이 흘려왔던 피와 눈물, 땀방울을 녹여낼 수 있는 MOU가 돼야 하지만, 지금의 형태로는 허탕이 될 가능성이 크다.”(행정자치위원회 간사)

그만큼 도지사가 체결한 일방적인 기본협약(MOU)은 숱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치명적인 것은 도지사가 모슬포에 있는 알뜨르 비행장(구 일본군 비행장)를 공군 남부탐색구조부대가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사회가 9년 가까이 해군기지 문제로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있기는 했지만, 단 한 차례라도 ‘공군 남부탐색구조부대’에 대해서는 거론도 토론도 공론화도 된 적이 없었다. 도대체 도지사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심중한 문제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일본의 항공자위대가 말이 자위대일 뿐 공군이나 다름없듯이, 남부탐색구조부대가 공군기지가 되는 것은 가까운 미래의 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군은 공군대로 제주에 거점이 없으면 모를까, 기왕지사 이 알뜨르 남부탐색구조부대의 공군기지화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는 어려울 터이다.

이미 20여 년 전인 1988년 알뜨르 공군비행장 계획이 발표된 바가 있고, 1996년에는 알뜨르 공군비행장 계획이 재발표되었으며, 최근에는 2010년 비행전대급 부대창설을 목표로 제주에 전략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도 발표된 바가 있지 않은가? 논의도 합의도 없이 이렇게 밀어붙인 대가를 어떻게 치르려고 하는 것인가? 도대체 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권한을 도지사는 도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적이 있는가? 어떻게 된 도지사가 이렇게 하는 일마다 제주사회의 민심과 여론을 철저하게 유린할 수 있을까?

흉기와 투표용지

  
  
▲ 해군 제주기지사업단이 7월 21일 분할토지 경계측량을 실시하려하자 강정마을 주민들이 막아서고 있다.  
ⓒ 제주의소리  강정마을

그런 광역자치단체장이 대한민국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이 알고 싶다. 그런 단체장을 용서해주는 관대한 주민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곳이 알고 싶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늘과 들판을 가지고 있는 이 천혜의 탐스런 평화의 섬에 이런 도지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도민들은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주도민은 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그래서 보다 생산적이며 민주적인 새로운 도정의 이정표를 수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민이 손에 든 것은 흉기가 아니라 단 한 장의 투표용지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