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왜 12분에 1명꼴로 죽지? 미국인들 열공 중

왜 12분에 1명꼴로 죽지? 미국인들 열공 중
[해외리포트] 오바마 ‘의보개혁’ 둘러싸고 블로거 논쟁 활발

09.09.23 15:39 ㅣ최종 업데이트 09.09.23 15:39  전희경 (hkchun)  

오바마 의보개혁, 미국, 의료보험

  


  
▲ <미국의 회복> 표지  
ⓒ T.R. 레이드   미국 의료개혁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이와 관련한 책과 다큐가 입소문을 타고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워싱턴 포스트> 특파원이자 미 공영라디오방송(NPR) 논설위원인 레이드 기자. 레이드 기자는 지난달 <미국의 회복>(The Healing of America: A Global Quest for Better, Cheaper, and Fairer Health Care)이라는 책을 발간한 데 앞서 지난해 4월,  공영방송 PBS <프런트라인>을 통해 다큐 <다른 나라의 의료체계는 어떤가>(Sick around the world)를 상영한 바 있다. 최근 오바마의 의료개혁 논쟁이 불거지면서 레이드 기자의 저작물도 주목을 받게 된 것.

공공 도서관마다 비치됐던 <미국의 회복>은 모두 대출중이고, 수많은 블로거들이 책과 다큐에 담긴 내용을 토론하고 있다. 방송된 지 1년 반이나 지난 다큐멘터리 <다른 나라의 의료체계는 어떤가>는 170여 명의 블로거들이 토론거리로 삼음으로써 한 주의 최다시청 다큐가 됐다.

의보개혁 어떻게? … 미국민들은 열공중

레이드 기자는 다큐와 책에서 국영보건제도(베버리지 모델)인 영국의 의료체계, 사회보험제도(비스마르크 모델)인 독일·일본·스위스의 의료체계, 캐나다식(두 모델 혼합형) 국가의료보험제도인 대만의 의료체계를 비교한다. 마이클 무어가 다큐멘터리 <식코>(sicko)에서 전 세계의 선진의료 체계가 국가주도의 전 국민 의료보장(Universal HealthCare)이라고 단순화한 데 비해, 이 책에서는 5개국의 차이점을 부각시킨 것.  

레이드에 따르면,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는 세금을 재원으로 해서 국가가 의료서비스 공급과 의료비 지급을 모두 담당한다. 독일·일본·스위스의 경우, 의료서비스는 민간이 제공하지만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서의 의료보험은 공공보험을 주축으로 한다. 하지만 민간의료보험시장도 위축되어 있지 않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 95년 대만은 좋고 싸고 공정한 의료체계를 위해 세계 의료보험체계를 탐색했다. 그 후 각국의 장점만을 모아 캐나다식의 전국민의료보장체계를 만들었다.

  
  
▲ 미국 공영방송 PBS의 프런트라인에서 지난해 4월 방영한 <다른 나라의 의료체계는 어떤가>(Sick around the world) 화면.  
ⓒ 피비에스   미국 의료개혁

미국 내에 퍼져있는 5가지 잘못된 믿음도 소개된다.

[오해1] 미국이 세계에서 최고의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는 국영화된(사회주의적) 의료체계다.

≡ 아니다. 최근의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구에 따르면, 고비용 구조(25%의 행정비용지출)인 미국은 의료서비스의 질과 형평성 면에서 코스타리카에 이어 37위를 차지. 영국은 국영화된 의료체계이지만, 일본, 독일, 스위스는 민간과 공공이 혼합된 체계이다.  

[오해2] 의료개혁이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고 환자들은 할당되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의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아니다. 일본, 대만 등에서는 기다릴 필요가 없고 선택의 자유가 많다. 미국의 현 보험체계가 선택의 폭이 큰 것은 아니다. 보험사가 정해준 특정병원, 특정의사에게 제한된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해3] 외국의 의료체계는 비효율적이고 관료주의화 되어 있다.

≡ 미국이 더 비효율적이다. 미국의 기업이 일본에 비해 8배나 의료비지출을 많이 한다. GDP 대비 의료비용 비율(=의료비지출/GDP)은 미국의 경우 19%인 데 반해, 영국8.3%, 일본 8%, 독일 10.7%, 스위스 11.6%, 대만 6.3%이다.    

[오해4] 의료개혁은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를 줄임으로써 비용절감을 하려고 할 것이며, 이러한 비용절감은 혁신을 제약할 것이다.

≡ 반대의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MRI 한번에 1500달러를 지불해야 하지만, 일본에서는 98달러만 내면 된다. 정부의 수가조정에 맞춰 기술개발을 했기 때문이다.

[오해5] 의료개혁은 생의 마지막에 와 있는 노인층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등 무자비할 것이다.

≡ 다른 나라의 의료체계에서는 모든 국민이 의보수혜자이고 의료수가가 정해져 있어 영리를 추구할 수 없지만, 미국은 영리를 추구해서 좋은 보험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좋은 체계이다. 노년층을 위한 메디케어(Medicare)가 없다면, 삶의 최후까지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이드는 95년 의료개혁에 성공한 대만과, 미국과 유사한 민간주도의 의보체제이고 의료비지출이 크지만 94년부터 95%의 국민들에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스위스의 예를 들면서 미국도 전 국민 의료보장체계로의 개혁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에 대한 토론의 내용은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배울 점이 무엇인지, 5가지의 잘못된 믿음이 무엇이고 그 증거들이 맞는지, 의료보장의 확대와 비용절감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지, 오바마의 의보개혁이 현실적인지, 전 국민 의료보장체계로의 개혁은 요원한지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무보험으로 사망하는 미국인 12분마다 1명꼴

  
  
▲ <로이터>의 의보개혁 특별보고 페이지.  
ⓒ 로이터화면캡처  미국 의보개혁

18일, 하버드 대학은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매년 4만5천명(매 12분마다 1명)이 무보험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는 것. 이는 2002년 발표한 ‘연간 무보험자 1만8천여 명 사망’이라는 기존 통계보다 훨씬 높아진 수치다.(데이비드 힘멜스테인 교수, 미국보건학회지 <아메리칸 저널 오브 퍼블릭 헬스>(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발표 논문)

18일 하바드 교수와 인터뷰를 했던 <로이터>는 ‘특별보고’와 ‘거대한 논쟁’ 란을 만들어서 의료개혁 논쟁과 의료체계 관련 연구 성과물을 소개하고 있다.

논쟁은 주로 더 좋고 더 싼 의료체계가 가능한지,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전국민의료보장과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의보개혁안 중 무엇이 더 현실적인지 등에 대해서다.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의보개혁의 핵심은 현행 민간의보체계에 정부 주도의 공공보험을 도입해 무보험자들을 구제하고, 경쟁을 통해 보험체계를 바꾸자는 것이며,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전국민의료보장’은 영국의 NHS와 같이 전 국민이 공공보험에 가입함으로써 평등하게 의료보험 혜택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 <로이터>의 의보개혁 관련 ‘거대한 논쟁’ 페이지.  
ⓒ 로이터화면캡처  미국 의보개혁

미국의 경우, 전반적으로는 민간의보가 시장을 장악한 체계로, 한 민간보험사가 전체 주를 독점 장악한 곳도 15개 주에 이르고, 매사추세츠나 캘리포니아 주처럼 주 정부가 전 주민 의료보험체계를 추진하는 곳도 있다.

반대로 8천만 명 가량이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노년층을 위한 메디케어, 빈곤층을 위한 메디케이드, 군인을 위한 군인보험 등의 형태로 캐나다 또는 영국식 의료보장혜택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한편, 퍼스트 레이디인 미셸 오바마도 의료개혁 논쟁에 뛰어들었다. 오바마 행정부 8개월 동안 정책 논쟁에 뛰어들기를 자제해왔던 미셸 오바마는 18일 여성지도자 모임에 참석해 의보개혁과 관련해 연설했다.

미셸은 “여성이 가정에서 갖는 엄마로서의 지위에서 볼 때나, 사회에서 차별받으면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보더라도 의보개혁은 여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여성들도 관심을 갖고 논쟁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진영은 사활 걸고 반대, 진보진영은 “이 정도론 부족”

오바마의 의보개혁과 이에 대한 지지흐름에 대해 보수진영 기득권 세력들은 “이대로”를 외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상하원연설 도중 공화당 윌슨 의원이 “거짓말쟁이”라고 소리를 지른 것이 대표적인 예.

정부가 현 의보시장에 뛰어들어 공공의보를 제공할 경우, 정부보험에 고객을 빼앗긴 사보험이 특정 서비스에 대해서 자신들에게 비용을 전가하지는 않을지, 혹시 전반적인 의보서비스의 질이 저하되지는 않을지를 우려하는 것이다.  

의료보험사 또한 정부보험이 사보험 시장을 위축시켜 현재의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일부 의료종사자,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들도 경쟁심화와 전자의료 기록체계 확립으로 의료비 과다 청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의 경우, 4천5백만 명이 보험을 살 여력이 없거나 기존질병 등을 이유로 의료보험 가입을 거부당함으로써 의료보험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민간의보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공보험이 추가되는 형태는 사회보장에 대한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15일 미국노동총연맹(AFL-CIO)은 피츠버그에서 열린 전미회의에서, 현존하는 연방정부보험인 메디케어를 전 국민에 확장한 형태의 전 국민 의료보장 요구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 미국진보센터가 공개한 4인가족 소득기준 의료비 지출(2009~2029).  
ⓒ 미국진보센터  미국 의보개혁

  
  
▲ 미국진보센터가 공개한 4인가족 소득기준 의료비 지출(2001~2019).  
ⓒ 미국진보센터  미국 의보개혁

다큐 <식코>를 제작한 마이클 무어감독은 연설에서 “65년 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유니버설 헬스케어를 제2의 권리장전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미 국민이 이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며 “의료보험사들이 미 국민의 권리를 빼앗기 위해 매일 백만 달러씩 쏟아 붇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같은 날 진보진영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는 지난 9년간의 소득대비 의료비 지출 자료와 밀리맨 의료지표의 연 증가율을 토대로, 의보개혁 없이 현 상황대로 갈 경우, 4인 가족 소득기준 의료비지출이 2009년 현재 19%에서, 2019년에는 31%로, 2029년에는 48%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미 국민 대다수는 일단 오바마의 의보개혁안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오바마의 개혁안이 증가일로에 있는 의료비 지출 증가를 막을만한 충분한 대안은 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제약업계의 800억 달러 비용절감 약속을 이끌어내는 등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적어도 무보험자를 구제하는 현실적인 개혁안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