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법인 약국’ 추진…의약계 실력저지
정부 공청회 무산시켜…“대기업만 혜택” 백지화 요구
황보연 기자
정부가 약사가 아닌 일반인도 약국을 개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의약단체들은 의료 공공성이 훼손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추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일, 정부로부터 연구 용역을 의뢰받아 마련한 ‘영리법인 약국 허용 방안’ 등 의약분야 선진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은 약사만 약국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제를 허무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일반인과 기업에도 약국 개설을 허용하되, 약국을 관리하며 약품을 취급하는 사람만 약사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이런 취지가 담긴 2002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이번 방안은 사실상 정부의 뜻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정부의 최종안은 12월에 확정될 예정이다.
영리법인 약국이 허용되면 기업형 체인 약국이 설립될 수 있고 병원 처방약품을 많이 구비한 대형 약국이 많아져, 환자들의 불편을 줄일 수 있다고 연구원 쪽은 주장한다. 약국의 대형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들의 편의도 도모하자는 취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보조인력이 아예 없거나 1명만 고용하는 영세 약국은 74.1%에 이른다.
선진화 방안엔 의사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 의약품 가운데 일부를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 팔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제안도 담겼다. 일반 의약품 중에서 드링크제와 비타민, 소화제 등 약사의 전문성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일부 품목을 소매점에서 판매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약품은 의사 처방이 필수인 전문 의약품과, 처방은 필요 없지만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 의약품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이 방안을 놓고 이날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전날에 이어 ‘전문자격사 시장 선진화를 위한 공청회’를 열려고 했지만, 의약계 관계자 100여명의 공청회장 점거로 무산됐다. 이날 공청회장 안팎에선 서울시 약사회 관계자가 ‘일반인 약국 개업 반대’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삭발까지 감행하는 등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일부 약사들은 ‘×’자를 새긴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시 약사회와 의사회,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등 의약인 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내어 “정부가 공익시설인 의료기관 및 약국의 진입 장벽을 허물려 하는 것은 일부 대기업에 혜택을 주려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정부의 선진화 방안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한편, 약국 외 장소에서 무차별적으로 퓔킵풔� 의약품 유통 근절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송미옥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회장은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 의약품도 수시로 안전성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대책 없이 소매점 판매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자격사 시장 선진화 방안을 주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당혹스런 표정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향후 공청회 재개 또는 생략 여부를 관계 부처 등과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기사등록 : 2009-11-12 오후 07:46:11 기사수정 : 2009-11-12 오후 11:5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