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심장의 소리를 들어라”…마이클 무어 공개서한
오바마, 3만 증파 발표…지지층 이반 가속화할 듯
기사입력 2009-12-02 오후 6:35:45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띄웠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을 선언하기 하루 전인 11월 30일에 보낸 것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 편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증파는 오바마를 찍은 이들을 냉소주의자로 만들 것이라며 증파 반대를 절절히 호소했다. “희망을 품은 이들과 희망을 가진 자들이 뭉쳐서 만든” 오바마 지지 연대가 깨진다는 것이다. 아프간 전쟁을 확대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미국 진보세력의 이반을 대변하는 목소리였다. <CNN>은 오바마의 증파 계획 때문에 민주당 내 진보파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1일 보도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비록 2011년 7월부터 철군을 시작하겠다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동시에 발표했지만, 3만 명의 미군을 추가로 보내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바야흐로 ‘오바마의 전쟁’이 됐다.
하지만 10만 여 명으로 늘어난 미군이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가니스탄의 안정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오바마의 출구전략이 계획대로 이행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없다.
오바마는 육사 연설에서 “아프간 전쟁은 또 다른 베트남 전쟁이 아니다”고 역설했다. 이번 전쟁은 정당성을 인정하는 43개국이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판자들은 역사를 잘못 읽고 있다”고 말했다. 누가 역사를 잘 못 읽고 있는지는 결국 시간이 증멸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미국의 정치 논평 사이트 ‘커먼드림스’에 실린 마이클 무어 서한의 주요 내용이다. (☞원문보기)
▲ 오바마 대통령이 1일 밤(현지시간) 미 육군사관학교에서 아프가니스탄 증파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로이터=뉴시스
오바마 대통령께.
당신은 진정 또 하나의 ‘전쟁 대통령’이 되고 싶으신가요? 육군사관학교에서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아닌 증파를 선언한다면 당신은 새로운 전쟁 대통령이 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당신이 최악의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아 준 수백만의 사람들이 가졌던 희망과 꿈을 짓밟는 일입니다. 당신의 연설 한 번으로 당신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운동의 중추가 됐던 수많은 젊은이들은 환멸에 찬 냉소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군인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민간이 통제합니다. 합동참모본부가 하는 일은 바로 우리 국민들이 정합니다. 워싱턴 장군(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바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맥아더가 중국을 치고 싶다고 했을 때 투르먼 대통령도 바로 그렇게 말했어요. “맥아더 당신은 군복을 벗으시오.” 그 말만 하면 됐습니다.
당신은 매크리스털 장군(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이 (4만 명을 증파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당신을 유린했을 때 그를 잘랐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군복무중인 우리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베트남전 때의 웨스트모어랜드(당시 미군 사령관으로 수차례 병력 증파를 요구하다가 끝내 거절당했다 – 역주)부터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한 증거가 있다며 유엔에서 거짓말을 했던 콜린 파월까지, 우리는 그런 장군들을 증오합니다.
당신은 지금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정확히 30년 전 소련의 장군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쓸어버리자!”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소련을 넣은 관에 마지막 못질을 한 것이었어요.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정원의 나라’(16~19세기 서남아시아 지역을 지배한 무굴 제국이 그 지역에 타지마할 같은 정원을 많이 지어 아프가니스탄을 정원의 나라라고 부른다 – 역주)라고 부르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또 다른 이름은 ‘제국의 무덤’입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영국에 한 번 전화해 보세요. 아니면 징기즈칸에게 전화를 걸어 봐도 될 텐데 제가 지금 번호를 잊어버렸네요. 대신 고르바초프의 번호는 있습니다. +41-22-789-1662(고르바초프가 설립한 국제녹십자 전화번호-역주)로 해보세요. 그 사람이라면 당신이 꼭 새겨들어야 할 역사의 과오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무너져 있고 우리의 귀한 청년들은 교만과 탐욕의 제단에 바쳐지고 있습니다. 그런 때에 당신이 정녕 전쟁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미국이라는 이 거대한 문명은 빠른 속도로 붕괴하고 역사에서 지워져 버릴 것입니다. 제국들은 종말이 목전에 오기 전까지는 그게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지 결코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국들은 어떤 더 사악한 것이 무지렁이들을 복종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제국은 언제나 그 무지렁이들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희망을 품은 이들과 희망을 잃은 이들이 만든 연대 깨질 것”
오바마 대통령님,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당신은 일이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의 심장과 명석한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여유가 아직은 몇 시간 남아 있습니다. 당신도 그들도 이해할 수 없는 그 나라에, 당신도 그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목표를 위해 군대를 더 보낸다고 해서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임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직감할 수 있을 겁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알 카에다 요원들이라고 해봐야 100명도 안 된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동굴에 살고 있는 100명을 잡기 위해 10만 명을 보낸다고요? 제 정신입니까? 군사력이면 뭐든 가능하다는 부시의 생각을 받아들인 겁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재임 첫 해 동안 했던 훌륭한 말과 행동들은 이 전쟁으로 인해 묻힐 것입니다. 공화당에게 콩고물 하나를 더 던져줄 때, 희망을 품은 이들과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뭉쳐 만든 연대는 깨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곧바로 증오에 찬 사람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대통령님,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당신을 후원하고 있는 기업들은 당신의 재임이 불가능하다는 게 분명해지자마자 당신을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그들의 분부대로 움직이는 얼간이들에게 다시 넘어갈 것입니다. 육군사관학교 연설 다음날부터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 민중들은 당신을 아직도 사랑합니다. 우리 민중들은 아직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중들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수백만 표의 차이로 당선되었을 때로부터 점점 뒷걸음질 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왜 당신이 ‘압승’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까?
군대를 조금만 더 보내면 전세가 바뀔 수 있고 당신을 증오하는 이들로부터 환심을 살 수 있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그들은 이 나라가 갈기갈기 찢길 때까지,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1달러까지 빼앗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백만 명의 군대를 보낸다고 해도 저 미친 우익들은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계속해서 저 혐오스런 라디오와 TV에서 나오는 독설의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당신은 하나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찍지 않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님,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시카고에 있는 이웃들에게 물어보세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우며 죽어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부모들에게 물어보세요. 더 많은 돈과 군인들을 거기에 보내야 하는지. “우리는 건강보험 개혁도 필요 없고 직장도 필요 없고 집도 필요 없습니다.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우리의 돈과 자녀들을 외국에 내보내세요. 우린 그것들이 필요 없어요.” 그렇게 답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킹 목사가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요? 불쌍한 사람들을 보내 다른 불쌍한 사람들을 죽이게 하지 마라. 그들은 너희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겁니다. 미국의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잠을 자고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고 있는데 전쟁에 돈을 퍼부으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할 겁니다.
당신에게 표를 던지고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당신이 승리했던 날 밤 눈물을 흘렸던 우리 모두는 지난 8년간 우리의 이름을 팔아 범죄를 저지르는 지옥 같은 나날을 견뎌왔습니다. 고문과 강제 송환,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침공, 아프가니스탄 결혼식장에 대한 살육. 우리는 수십만의 이라크 주민들이 학살되고 수만의 용감한 우리 젊은이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정신적인 고통 속에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 ‘화씨 9.11′ ‘볼링 포 콜럼바인’ ‘식코’ 등을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
당신에게 표를 던지면서도 기적을 바랐던 건 아닙니다. 엄청난 변화를 바랐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조금은 기대했어요. 이 광기만은 멈추게 할 것이라고. 죽음의 굿판을 멈추기 바랍니다. 무력으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거두세요. 그 나라는 제대로 모양을 갖춘 나라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멈추세요, 제발. 우리 미국 젊은이들의 목숨과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의 목숨이 귀중하다면 멈추세요. 대통령인 당신을 위해, 희망을 위해, 미국의 미래를 위해 멈추세요. 하나님을 위해 멈추세요.
오늘 밤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우리는 지켜보겠습니다. 공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은 이걸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용기를 내야 합니다. 어머님의 이름에 먹칠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황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