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느닷없는 의협의 ‘PD수첩’ 판결 반박
대한의사협회가 미국산 쇠고기 위험성을 보도한 MBC 제작진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에 대해 뒤늦게 반박 성명을 냈다. 의협은 그제 ‘PD수첩 광우병 보도 판결 관련 입장’이라는 성명에서 “일부 판결 내용이 의학적 판단과 달라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판결이 내려진 지 한 달 만에 나온 뜬금없는 성명이다. 이 방송된 날이 2008년 4월이고 재판이 시작된 게 지난해 6월이다. 광우병 보도에 의학적 오류가 있었다면 방송 직후나 수사 단계에서는 물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얼마든지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있었으나 1년 가까이 입도 뻥긋하지 않다가 뒤늦게 뒷북을 친 격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에서는 내부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면서 “전체 10만 의사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성명”이라고 비판했다고 하니 난데없이 이런 성명이 나온 배경이 더욱 궁금할 뿐이다. 경만호 의협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상임특보와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을 지낸 이력도 성명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의협의 주장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된 부실투성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의협은 성명에서 쪽이 의료진에게 소송을 제기한 미국인 아레사 빈슨 가족의 일방적인 입장만을 전달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취재는 소송을 내기 한 달 전에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인간광우병 발병에는 유전적·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재판부가 외면했다고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이미 법정에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검찰과 변호인 측의 증인으로 출석해 충분히 시비를 다퉜던 것들이다.
의협이 개별 재판 결과에 대해 비판 성명을 낸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의협은 국민에게 사회적 주요 현안에 대해 뚜렷하게 제 소신을 밝히는 모습보다 의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로서 다른 단체들과 치열한 갈등을 벌였던 기억이 더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협이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법부 판단을 반박하는 성명을 내놓은 것은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불순한 의도로 비칠 수 있다. 최근 잇따른 시국사건 무죄 판결 이후 계속되는 보수세력의 사법부 흔들기에 편승한 모양새로 오해를 사기 십상이거니와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는 모습도 구시대적 행태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씁쓸할 뿐이다.
ⓒ 경향신문
2010-02-20 02:3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