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약국개설 허용의 맹점
리병도 전 건약회장
일반의약품 슈퍼(?)판매나 약대신설, 약대정원 증원 등 약사사회에 이런저런 정책변화들이 정신없이 몰려오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서비스 선진화 방안이라는 미명 하에 일반인 약국 개설문제가 메가톤급 지진을 몰고 왔다.
이 지진에 이은 쓰나미가 일듯 이명박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서비스 산업 선진화가 필수적’이라며 거들었다.
이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첫 국정 과제는 경제를 살리는 것이고 그 핵심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며, 올해 우리 정부는 ‘일자리 정부’로 자리매김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정책과 예산을 봐도, 선진화 방안 등을 봐도 일자리를 창출할지는 많은 의문이 든다.
예산 측면에서 민주당 김진표의원은 MB가 입으로만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 국정 핵심과제로 내걸고 있지만, 2010년 예산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미미한 대운하 토목공사에만 집중된 ‘일자리 무시 예산’으로 관련 추경예산을 1.1 조나 삭감하여 22만개의 일자리가 줄게 됐다고 비판했다.
대기업 투자는 늘린다 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전체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 지원을 늘려야 하는데, MB정부는 ‘대기업 프렌들리’만 외치면서 중소기업 예산을 2009년 추경보다6.4 조원이나 대폭 삭감했다. 한마디로 말 따로 행동 따로 이다.
또한 일자리 창출의 대표적인 예로 드는 ‘서비스 산업 선진화’는 대표적인 중소기업 시장들을 대자본에 넘겨주려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첫 타겟이 되고 있는 약국은 어림잡아 전국에 6만여 개의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관련업계까지 합친다면 그 일자리는 족히 10만 개는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약국시장을 선진화한다 하여 재벌들에게 넘겨주면 일반 약국들의 줄 이은 폐업과 함께 이를 차지한 대기업들의 이른바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 정규직도 아닌 비정규직에 최소의 인원만을 고용하여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 뻔하다.
왜냐하면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자본의 입장에서 비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부분은 인건비 비중이 높은 대표적인 업종이다.
대자본이 들어와 자영업자들이 붕괴된 유사한 사례를 우리는 대형 슈퍼체인들이 들어오면서 중소슈퍼나 일반상가 상권이 죽어가는 것을 주위에서 비일비재하게 보고 있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월마트가 인수한 영국 아스다는 지역사회를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스다는 그들의 웹사이트에 ‘지난 5년 동안 영국에서 많은 기업 투자와… 2만500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고 자랑하면서 아스다 매장은 지역사회를 위한 매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스다가 새 점포를 열어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영국소매포럼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새로운 대형슈퍼마켓이 하나 생길 때마다 평균 276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밝혔다.
필자 악력
-강원대 약학대학 약학과 졸업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사회약학 석사
-7기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회장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건강과 대안 연구위원
-참좋은온누리약국 대표
-서울시약 정책실무팀장
심지어 기존 슈퍼의 매장을 늘리는 것으로만 해도 지역상권이나 일자리에 충격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스다는 일반적인 신청절차를 거치지 않고, 슈퍼마켓에 여분의 중간층을 넣어 매장 크기를 두 배로 늘렸다.
그리고 다수의 소규모 소매업체를 입점시켜 그 결과 2004년 2월 가디언의 기사에 따르면, 이런 매장확장의 영향으로 1997년과 2002년 사이에 13,000개의 전문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고 보도했다.
2003년 캘리포니아의 콘트라코스타 카운티는 월마트의 슈퍼센터 개설 제안을 거부했다. 그 근거로 든 샌디에고 납세자협회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매장이 하나 생기면, 매년 공중보건 비용으로 9백만 달러가 더 들고, 게다가 지역민의 임금과 이익이 1억500만만 달러에서 2억2100만 달러 정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마트가 들어옴으로 해서 지역 내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고 이들이 월마트의 비정규직으로 흡수되어 임금은 내려가고, 주정부에서는 이들의 공공의료 서비스 보조금을 내주고 푸드스탬프 및 사회 서비스를 대신 지불해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몰고 오게 된다는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을 망치고 대자본에게 유리한 정책을 쓰는 경우 서민들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하다. 이른바 선진화방안은 일자리를 늘린다고 약국을 다 헤집어 놓고 일자리도 없애고 오히려 재벌에게 의약품 유통시장을 다 가져다 맡기는 꼴이 될 수 밖에 없다.
브레이크 없는 자본의 무한 질주를 막아야 할 정부나 정부 정책이 오히려 무한질주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면, 이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약국 같은 중소규모의 업체나 시장 분야를 보호하고 이를 도와주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