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고지원 규정 한번도 안지켜
2002~2008년 미납금 3조7천억 … 차상위계층도 건보가 떠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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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5 오후 12:22:57 게재
분석 | 건강보험 적자 왜?
건강보험 재정이 지난해 적자전환에 이어 올해 1조8000억원의 당기적자가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 낮은 임금인상률에 따른 보험료 수입 증가폭이 줄고 정부의 국고지원도 규정대로 입금되지 않은데다 지출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15일 보건의료단체에 따르면 정부가 국민건강보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고지원 기준(20%)을 준수한 적이 없으며 재정책임을 줄이고자 차상위계층 약 25만명을 건강보험제도로 전환시킨 데서 재정적자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 제약사의 영업리베이트를 줄이고 고평가된 약값의 거품을 빼기위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정부가 기본적인 책임만 다해도 3조7000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재정적자는 오지 않고 도리어 급여확대를 통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보건의료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선진국에 비해 국가지원을 늘려야 할 판에 현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며 “2008년 건강보험 보장률이 떨어진 상황에서 정부가 국고지원을 제대로 하면 적자를 해소하고 보장률 확대여지도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총재정의 38%를, 대만은 28%를 국고지원하고 있다.
◆차상위 계층 지원에 추가 7000억 부담 = 건강보험 재정은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보험료 수입을 좌우하는 임금인상률이나 실업률이 있다. 고령화 정도나 진료의 적정성, 국고지원 등도 요인이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흑자와 적자상황을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정적인 재정운영을 위협하는 요인이 만성적이거나 불필요한 것이라면 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공적부조의 하나인 의료급여 수급권자 일부가 건강보험으로 전환되면서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크게 늘었다. 지난 2008년4월 1종 희귀난치성 질환자 2만359명이 의료급여에서 건강보험 가입자로 넘어왔다. 이어서 지난해 4월 2종 만성질환자 9만2740명과 18세 미만 아동 13만9447명이 건강보험으로 전환했다. 모두 25만2546명이 정부 직접지원에서 건강보험으로 바뀐 것이다.
이들 차상위계층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액은 올해 8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1100억원 정도는 국고지원으로 충당할 수 있으나 나머지는 모두 건보재정에서 부담해야 한다. 약 7000억원 정도가 건강보험에서 추가 지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건강보험 전환 희귀난치성 질환자에게 1401억원이 지출됐다. 정부지원액을 감안하면 899억원이 새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된 셈이다.
지난해는 만성질환자와 18세 미만 아동 건강보험 전환에 따라 5200억원의 건보재정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정부지원액 1479억원을 뺀 3832억원은 건강보험이 부담하게 된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건강보험 전환은 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에 떠넘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가 기본적인 책임만 해도 = 지난 2000년 7월 지역의료보험과 직장의료보험이 통합되면서 건강보험으로 출범했고 의약분업이 도입됐다. 통합 건강보험은 의료수가 인상 등으로 재정지출이 급격히 증가해 2001년 2조4000억원이라는 당기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때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액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2년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 제정과 함께 정부의 건강보험 지원규모가 지역가입자 50%지원으로 법제화됐다. 그러나 지난 2002~2006년 국고지원액은 5년 평균 44.3%에 그쳤다. 한 번도 국고지원 기준을 준수한 적은 없다.
국고지원액은 지난 2002년 3조139억원, 2003년 3조4239억원, 2004년 3조4830억원, 2005년 3조6948억원, 2006년 3조8362억원이었다. 법정지원액과 실제 지원액과 차이는 각각 5123억원, 2946억원, 3679억원, 3974억원, 6799억원이었다. 누적금액이 2조2521억원이었다. 정부가 이만큼 건강보험에 지원하지 않은 셈이다.
정부는 2006년 한시법인 특별법이 만료된 뒤 건강보험법을 개정했다. 국고지원기준을 ‘지역가입자 급여비 및 관리운영비의 50%’에서 ‘예상 보험료수입액의 20%’로 변경했다. 수입액 20% 부담은 일반회계에서 14%,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6%로 정했다.
실제 국고지원액을 보면 2007년 3조6718억원, 2008년 4조262억원이었다. 이는 법정지원액과 비교하면 각각 17.3%, 16.5%으로 20%에 크게 못미쳤다. 국고지원 준수 기준 부족금액은 각각 3102억원과 4592억원이었다.
또 담배부담금으로 조성한 국민건강증진기금 지원액도 법적기준인 6%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2007년 9676억원이 건강보험에 지원돼 4.6%를 기록했다. 2008년에는 1조239억원으로 4.2%를 차지했다. 지원액 6%와 차이가 각각 3076억원과 4424억원에 달했다.
정부의 지원이 제대로 됐어도 건강보험 재정수지 악화를 막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인상은 낮고 지출은 많아져 = 올해 건강보험 재정이 1조8000억원 적자 예상 근거는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험료가 크게 오르지 않는 반면 지출은 대폭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데서 기인한다.
15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노동부 집계결과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명목임금 인상률은 1.5%이내에 불과했다. 예전에는 4% 수준을 유지했다. 결국 호봉승급과 같은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추가 보험료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반면 지난해말부터 건강보험 혜택이 늘어나면서 6500억원의 지출이 늘 것으로 보이고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고지원액도 지난해에 비해 3~4%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건보공단 재정관리실 관계자는 “올해 수입 증가율은 7~8%에 머무는 반면 지출은 12% 이상이 될 것”이라며 “이 차이만큼 적자가 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는 5월 직장가입자의 연말정산결과 추가 보험료 수입액은 2009년 1조2000억원보다 줄어든 8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차상위 계층 지원도 지난해보다 늘어 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지난해 5200억원보다 차이를 보인다.
보험자인 건보공단의 ‘방만한 경영’도 지적되고 있으나 실제 총지출에서 관리운영비는 2009년 3.04%에 불과하며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회보험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독일(5.7%), 프랑스(7.9%)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건보공단은 2000년 통합이후 정원의 절반가까이를 구조조정한 바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송재찬 보험정책과장은 “오는 5월 연말정산 결과를 보고 올해 어느 정도 적자가 날 지 추정하는 게 정확한 추계가 될 것”이라며 “수입을 늘리는 것과 지출을 절감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등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