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2년’ 보도 <조선> 기자, 토론회서 설전
촛불 지식인 토론회 “MB와 <조선>, ‘적반하장’·’후안무치’”
기사입력 2010-05-20 오후 12:32:03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영어 몰입 교육 반대, 한반도 대운하 반대, 의료 민영화 반대…. 2년 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외쳤던 구호다. 촛불 집회가 연일 더 큰 규모로 확산되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추가 협상, 한반도 대운하 포기 등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아침 이슬’을 들으며 “청와대 뒷산에 올라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봤다”던 이명박 대통령은 2년이 지나서야 ‘촛불 사태’에 대한 뜻밖의 회고를 내비쳤다.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며 이들의 ‘반성’을 종용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의 ‘광우병 촛불 2년’ 보도도 그런 발언을 이끌어 내는 데 한 몫을 했다.
‘촛불 2주년, 왜곡으로는 감출 수 없는 촛불 운동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조선일보>의 보도는 ‘적반하장’, ‘후안무치’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촛불, 그 후 2년…정부 ‘재협상’ 약속은?
광우병국민대책위원회 전문가자문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과),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박상표 국민건강수의사연대 정책국장,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조능희 문화방송(MBC) <PD수첩> 전 책임 PD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반성해야 할 지식인’으로 지목한 학계·의학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셈이다.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2년 전 촛불 집회가 달아올랐을 때 정부가 약속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주변국의 미국산 쇠고기 위생 조건 협상 결과가 한미 협상 조건보다 개방의 폭이 축소될 경우, 재협상을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2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정책국장은 “올해 호주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조치를 해제하려다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2년 더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고, 일본은 여전히 20개월 미만으로 수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대만 역시 한국보다 수입 조건이 더 엄격하다”면서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우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선전했던 것과 달리, WTO에 제소를 당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재협상을 하거나 국내법을 통해 당장 주변국 수준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강화하는 것이 2년 전의 약속을 지키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연계됐으며,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통상 마찰이 생길 것처럼 말했는데, 주변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면서 “국민의 안전과 국익에 위해를 가하는 정부야말로 진정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촛불 집회는 정부의 ‘협상 실패’서 비롯돼”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촛불 집회는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논란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쇠고기 수입 조건 협상 실패를 거짓말로 덮으며 소통을 거부한 정부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며 “정부는 당시 OIE 기준을 광우병 발생과 확산 방지에 대한 충분한 조건으로 설명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OIE 기준보다 강화된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국가들이 현재까지도 WTO에 제소되지 않는 이유가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는 지적이다.
우 교수는 “정부가 광우병 분야에서 제대로 연구 실적조차 없는 ‘날조 전문가’를 동원해 광우병에 대한 거짓 선전을 하고, 이를 <조선일보> 등의 보수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면서 국민들을 혼란에 빠트렸다”고 덧붙였다.
▲ 토론자로 나선 우희종 서울대 교수. (왼쪽) ⓒ연합뉴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정부와 보수 언론이 촛불 집회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축소시키고 있지만, 촛불은 영어 몰입 교육, ‘강부자 내각’, 한반도 대운하 시도 등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우 정책실장은 이어서 “촛불은 국민 스스로 끈 것이 아니라, 정부의 폭력적 진압으로 꺼진 것”이라며 “2008년 5월부터 7월 10일까지 집계된 부상자만 2000여 명에 달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이는 정부의 폭력적 진압이 어떤 수준이었는지 보여주는 실례”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촛불 보도, 언론의 ‘ABC’도 모르는 왜곡”
이날 토론회에서는 <조선일보>의 ‘촛불 2년’ 관련 보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조능희 전 <PD수첩> 책임PD는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2년 남짓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보수 언론에 잘못된 내용을 흘려주면 언론이 확인 취재도 없이 검찰의 말을 앵무새처럼 받아쓰는 모습을 수차례 목격했다”면서 “조중동은 언론의 ABC를 이미 포기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조선일보>의 촛불 2주년 보도는 취재한 내용을 왜곡하면서 언론의 기본 자세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며 “지난해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종합편성채널 진출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조선일보>가 정부에 우호적인 기사를 쓰며 촛불 2년 보도를 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조선일보> 기자, 토론회서 설전…”소송 들어오면 맞서겠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조선일보>의 ‘광우병 촛불 2년’ 기획의 특별취재팀장인 최규민 기자가 참가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최 기자는 “<조선일보>의 기사가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데, 해명할 것이 있다면 해 달라”라는 참가자들의 질문에 “왜곡이라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최 기자는 “촛불 소녀 한채민 씨의 경우, 나눔문화가 써준 글을 읽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 않다. 당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던 한 씨에게 접선해 선동의 도구로 삼은 나눔문화의 행태는 비판하지 않으면서, <조선일보>의 보도 방향만을 비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우희종 교수가 ‘짜집기 기사’라고 반발한 10일자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조선일보
최 기자는 “인터뷰의 의도와 발언의 앞뒤 맥락은 삭제하고, <조선일보>가 원하는 발언만 골라 짜깁기를 했다”는 우희종 교수의 지적에 대해서도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장이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조인트’ 발언을 해 사퇴를 했는데, 그럼 ‘조인트’ 발언만 제목으로 뽑은 <신동아> 역시 왜곡 보도를 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기사에 대한 소송이 들어오면 맞설 것이며, 기사의 왜곡 여부는 소송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조선일보>는 이날 토론회를 두고 ‘본지 비난 나선 2년 전 광우병 선동 주역들’, ‘그때 그 주역들, 광우병 괴담 사실 여부는 침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해 20일자 신문에 게재한 상태다.
/선명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