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 13만여가구 ‘체납 건보료’에 운다
기초생활수급자, 소득 조금만 있어도 구제 못받아
김소연 기자
» 기초생활수급자 건강보험 체납 현황
일용직 일을 하는 이아무개(50·서울 영등포)씨는 지난해 9월부터 기초생활 수급자가 됐다. 일정한 거처 없이 노숙과 찜질방 등을 전전하던 이씨는 수급자가 되면서, 그나마 고시원에 들어가는 등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요즘 근심이 크다. 수급자가 되기 전, 경제적으로 어려워 못낸 건강보험료 90만원이 ‘꼬리표’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료를 내라는 독촉장이 수시로 날아오는 바람에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씨는 “생계급여로 한 달에 40만원을 받는데, 고시원 비용(25만원)과 생활비 등으로 쓰고 나면 보험료를 낼 여력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처럼 우리 사회의 극빈층이면서도 건강보험료 체납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기초생활 수급자가 13만여가구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낸 자료를 보면, 기초생활 수급자 13만8865가구가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53%인 7만3369가구는 체납기간이 6개월을 넘긴 장기 체납가구다. 체납액이 100만원 이상인 가구도 1만4636곳(10%)이나 됐다.
기초생활 수급자는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구로, 정부가 인정하고 있는 우리 사회 빈곤층들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72조에는 건강보험료를 낼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결손처분(면제)을 해주도록 돼 있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수급자라고 해도 재산이나 소득이 있으면 결손처분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돈이 있으면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곽정숙 의원은 “생계 때문에 도저히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결손처분 제도를 만든 것인데, 빈곤층 수급자조차 그 대상이 되지 못한다면 이 제도는 누굴 위해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성남희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도 “의료지원을 해줘야 할 수급자에게 오히려 국가가 채권자가 돼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급자들의 체납 보험료는 탕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와 빈곤사회연대 등 15개 시민단체는 건보료 체납자들의 사례를 한데 모아 이달 말께 건강보험공단에 빈곤층의 건보료 체납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집단 민원을 낼 계획이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