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아픈데 돈 없는 설움,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 하지마~”

“아픈데 돈 없는 설움,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 하지마~”
[프레시안-진보신당 공동기획⑤] 이제는 ‘병원비 걱정없는 사회’다
기사입력 2010-09-26 오후 4:37:07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 소외되는 가난한 이들

가난한 이들은 치료비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내몰리고 치료받을 기회조차 포기 당한다. 또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큰 병이 걸릴 경우 온 가족이 그 고통을 나눠져야 하며, 가족 전체가 삶의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기거나 반인륜 행위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절벽으로 내몰린다. “차라리 치료를 받지 않았으면 가족들을 덜 힘들게 했을 텐데…”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후회는 남은 가족들의 가슴과 삶의 흔적에 큰 상처가 되어 남는다.

▲ 전국민 건강보험시대에도 여전히 사각지대는 있다. ⓒ뉴시스

가난한 이들의 얘기라고 하면 대부분 남의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현재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누구나 해당이 될 수 있다. 지금도 노인인구 11명 중 1명은 최저생계비 이하 절대빈곤층이고, 실질 빈곤층을 보다 잘 대변하는 상대적 빈곤 개념을 적용하면, 빈곤 인구는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의 역할이 획기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의 경제수준을 고려하여 OECD 국가들의 평균 수준까지 만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많은 이들, 특히 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삶의 궤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의 그늘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경우 중 언론에 보도된 일부 사례를 소개한다.

<사례1> 치료비 부담이 삶과 죽음을 가른다.
○ 73세인 김 씨는 아들이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고, 4년 전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부인의 치료비로 월 백만 원이 넘게 들어가 몇 년 전 집도 팔아 치료비 때문에 진 빚을 갚기도 하였으나 치료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음독자살을 시도했다(SBS 뉴스 2010년 7월 10일).

○ 중학교 3학년인 정양은 몇 년 전에 뇌종양으로 쓰러진 어머니, 노숙인으로 길거리를 전전하다 2년 전에 숨진 아버지, 치료비 마련을 위해 생긴 빚 등으로 어려운 생활을 해오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과 삶의 희망을 마침내 접어 버렸다(오마이뉴스 2004년 4월 2일).

“겪어 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마~” 한 개그맨이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방송에서 자주 사용하던 표현이다. 이 말은 어쩌면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나 가족들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단기간 고액의 치료비 부담을 경험하거나 장기간 적지 않은 치료비를 지출하고 있거나 지출한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치료비 부담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게 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기도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 8~15%가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못 받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과중한 본인부담, 3%에도 미치지 못하는 협소한 의료급여 혜택 등으로 가난한 이들은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 안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사례2> 전 국민 건강보험의 사각지대, 건강보험료 체납자
○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6개월 이상 보험료가 밀린 가구가 지역가입자 811만 가구 중 156만 가구(19%)에 이르고, 이들 중 보험료 체납으로 인해 건강보험이 정지된 이들은 220만 명에 이르며(한겨레 2010년 3월 23일)

국민건강보험은 보험료 장기체납 가구에 대해 건강보험 이용을 정지시키고 있다. 이렇게 건강보험 이용이 정지된 이들이 220만 명, 전체 인구의 5%에 이른다. 이들 보험료 체납가구의 95%는 가구 연 소득이 100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들이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이들 건강보험료 체납가구에 대한 탕감을 정부가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정부의 조처는 느리고 부족하다.

지금도 건강보험 이용이 정지되어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도 못 받고, 작은 질병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 큰 질병을 갖게 된 가난한 이들이 있다.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에도 건강보험 혜택을 박탈당하고 있는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사례3> 국민건강보험 밖의 이방인, 이주노동자
○ 대구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라힘 씨는 작업 도중 검지가 잘렸지만 치료비 부담 걱정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잘려진 손가락을 붙이려는 시도조차 못하였다(시사저널 2010년 7월 7일).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 중 일부는 영세한 사업장의 사업주가 산업재해보상보험과 국민건강보험 가입을 기피하는 까닭에 라힘 씨 사례처럼 제 때 치료를 못 받아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현재 이주노동자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전면적 적용, 국민건강보험법은 합법 체류자에 대해서만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은 합법 체류자에 대해서도 일부 사업주는 보험료가 부담된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가입을 꺼리고 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불법체류 노동자이다. 이들은 아프거나 다쳐도 한국의 제도 안에서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받기도 힘이 든다. 일하다 장애를 당하고 본국으로 쓸쓸히 돌아가는 이주노동자의 사례를 언론을 통해 들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더 이상 한국이 세계 속의 반인권 국가로 남아있지 않기 위해,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사회보험제도에 대한 검토, 불법 체류자를 양성하는 한국 이주 노동자 정책에 대한 전면적 수정이 필요하다.

<사례4>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두렵다, 치료비가 걱정되는 탈북자
○ 탈북자들은 탈북 후 일정기간 동안 본인일부부담금이 면제되는 의료급여 1종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난 후 취직을 하게 될 경우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치료비가 많이 드는 병이 생길까 두려워 어떤 탈북자는 취직을 기피하기도 한다(서울신문 2009년 7월 20일).

남한사회에 채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적 지지체계도 취약한 이들에게 치료비가 많이 드는 질병은 단순한 건강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추석에도 추석을 맞지 못한 가난한 이들, 아픈 이웃들

전 국민 건강보험 10년을 맞이하여, 어떤 이들에게는 건강보험이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위의 사례들은 한국의 건강보험이 여전히 가난한 이들에게 취약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번 주는 추석 연휴였다. 수도권 폭우로 많은 이들이 올 추석에 고충을 겪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 및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가족의 건강문제와 치료비 걱정으로 추석을 준비할 겨를도 없었다. “4대강 공사에 들인 정부의 노력과 재원 중 일부를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개선하고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데 사용한다면 사회를 보다 정의롭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할 텐데” 라는 기대를 해보는 것은 현실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유원섭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