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초등 3학년이 수령한 해고 통지서, 퀵서비스로 날아왔죠”

“초등 3학년이 수령한 해고 통지서, 퀵서비스로 날아왔죠”
[현장] 그들은 왜 G20에 진저리 치나
기사입력 2010-11-05 오전 10:28:39

“G20 정상회의가 열리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 10년 동안 일했던 회사에서 쫓겨나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이택호(40) 씨다. 그는 1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다국적기업의 노동자였다.

이 씨가 다니던 회사는 회사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설비투자ㆍ고용창출은 나 몰라라 했다. 규제를 피해 국경을 넘나들며 단물만 쏙 빼먹고 튀는 초국적 자본에 이 씨가 진저리를 치는 이유다. 이 씨는 “초국적 자본을 규제하지 않는 한국ㆍ프랑스 정부가 해고노동자의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씨를 포함한 해고자들은 현재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먹고 자면서 노숙 시위를 하고 있다.

▲ “G20 정상회의가 열리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이택호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이 씨를 비롯한 금융ㆍ투기자본 피해자들이 G20 정상회의를 일주일 앞둔 4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발레오공조코리아ㆍSC제일은행ㆍC&M 노동조합,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회원 등이 참석했다.

금융ㆍ투기자본 피해자들은 “투기자본의 폐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각국 정부가 투기자본을 지원하는 정책을 30년간 추진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이른바 ‘먹튀 자본’이 생겼고 서민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단물만 쏙 빼가고 퀵서비스로 폐업 통보”

이 씨가 다녔던 발레오공조코리아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다. 지난해 10월, 평소처럼 출근한 노동자들에게 사측은 공장 폐쇄를 선언했다. 회사가 수년간 연속 흑자를 내던 차에 외국인 주주들이 내린 결정이었다.

해고통지서는 퀵서비스로 날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작은아이가 가장 먼저 아빠의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 씨는 “어린 것이 아무것도 모르고 퀵서비스직원이 내민 수령확인증에 서명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 씨의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여기 노동자들이 처음 공장이 생길 때 라인을 자기 손으로 직접 깔았거든요. 대개 23~25년씩 다녀왔고요. 그렇게 애착이 있던 회사였는데 아무 사전 통보 없이 퀵서비스로 해고 고지를 날리니 너무 분노했죠. 흑자가 났던 우량 회사가 출근 당일 날 갑자기 폐업 통보를 하는데 24년 동안 다녔던 노동자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요?”

발레오공조코리아의 원래 이름은 대한공조다. 2005년 프랑스의 발레오그룹이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발레오는 전 세계 20여 국가에 120여 개 공장을 가지고 직원 6만 여 명을 거느리는 다국적기업이다.

회사가 폐업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이 씨는 여전히 복직 투쟁을 한다. 그는 “평생 다닌 직장을 떠나라는데 이유라도 한마디 듣고 떠나야 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 씨가 프랑스에 있는 본사와 대화할 공식적인 통로는 없다. 발레오그룹은 “노동조합과 상의 없이 직장을 폐쇄하는 것은 한국 법률상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 씨는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편인) 국내 기업도 이런 식으로 공장폐업을 하지는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국가는 투기자본의 편”…쌍용차 노동자의 절규

‘먹튀 자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가 있다.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자동차다. 쌍용자동차에서 16년을 일해 온 최성국 씨가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이유다. 최 씨는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했을 때 직원끼리도 회사가 3~4년밖에 못 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예상은 맞아 들어갔다. 상하이차는 쌍용차에 투자와 고용보장을 약속했지만, 기술만 쏙 빼갔다. 고용보장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2006년에는 구조 조정으로 1000명이 퇴직했다.

최 씨는 “기술 유출을 막으려 하자 중국에서 협박도 많이 받았다”며 “협박에 버티다 못 해 파업 대열에 들었다”고 말했다.

최 씨가 특히 분노한 점은 “국가가 먹튀 자본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배신”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사태로 경찰 폭력에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옥상에 있을 때도 노동자들은 방패로 방어만 하는데도 소화기, 봉, 유탄발사기로 많이 맞아서 두 번이나 실신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실신한 저를 계속 구타했습니다.

경찰이 하수구에 고인 물에 최루탄을 쏘고 사람 머리를 넣고 짓밟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경찰로 잡혀 들어가도 다친 사람이 맞아서 찢어지고 뼈가 부러졌는데도 치료보다 조사가 우선이었어요. 제가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해 생과 사를 오가는데도, 경찰은 아내가 제 근처에 잘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더군요.”

쌍용차 파업이 남긴 최 씨에게 남긴 상처는 컸다. 그는 1년 동안 휠체어 생활을 했고 불면증 때문에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그러나 “중간마다 잊어버릴 만하면” 경찰이 찾아오고 법정에 오가야 했다. 급기야는 국민건강보험마저 쌍용차 노동자에게 등을 돌렸다.

“40년 가까이 의료비를 꼬박꼬박 다 냈는데도 ‘불법 파업’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보장이 안 된다더군요. 아내는 1년 가까이 아이들과 생활이 안 돼서 집에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이 나라를 믿어야 하나 실망과 절망이 심했죠.”

최 씨는 “쌍용차는 전 세계에서도 매각으로 구조 조정하는 악명 높은 회사였다”며 “3~4년 안에 또 쌍용 사태가 생길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국가는 생산직 근로자들을 기계 소모품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은 금융자본의 천국

SC제일은행 노동자는 IMF 경제 위기의 피해자들이다. SC제일은행에 다니는 김재율 씨는 IMF 경제 위기 이후 은행 노동자들은 “벼랑 끝에 매달려서 나뭇가지 하나 잡고 있는 심정”이라고 했다. 외환위기 이전에 9000명이었던 정규직은 4400명이 됐고 해고자가 떠난 자리는 비정규직이 채웠다.

“성과주의를 통해서 개인 실적을 각종 평가지표로 순위 매깁니다. 1년마다 하위 10%를 현업에서 빼요. 그들에게 개인 목표를 주고 달성하지 못하면 20% 임금을 삭감합니다. 그래도 못 하면 면직시키겠다고 협박하고요. 제일은행에 사모펀드가 들어와 ‘먹튀’하고 지금 영국계 SCB가 하는 노동탄압이죠”

SC제일은행은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1998년에 공적자금 17조 원이 투입돼 회생했다. 2000년에는 뉴브리지캐피탈이라는 사모펀드에 5억 달러에 매각됐다. 뉴브리지캐피탈은 5년 만에 차익 1조2000억 원을 남기고 SCB(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제일은행을 재매각했다.

▲ SC제일은행의 김재율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김 씨는 “외국자본이 국내 노동자와 소비자들 통해서 얻은 이익이 있으면 국내에 이윤을 재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외국기업도 소비자 서비스를 강화하거나 산업에 재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자본은 헐값에 한국기업을 사들여 주가 실적을 내는 데 급급했다.

“금융감독원은 한국법상 규제할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지난 30년간 한국 정부가 외국자본 규제를 다 풀어줬거든요. 금융감독원이 금융자본을 감독하려 하면 외국계 자본가는 ‘왜 경영에 간섭하느냐’고 항의한다고 합니다. 오히려 감독원이 노조에 하소연하는 실정이죠. 항의할 주체는 노조밖에 없다고요.”

“G20 정상이 글로벌 금융 위기에 책임 있는 태도 보여야”

이번 G20 회의에서 최대 관심사는 환율로 좁혀지는 모양새다. 글로벌 금융안전망이라는 의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본질이 뒤바뀐 것이라고 비판한다. G20 회의 자체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책임은 고스란히 해고노동자, 금융소비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갔다.

G20 정상의 책임을 묻는 금융ㆍ투기자본 피해자모임은 “투기 수익에 세금을 물어 서민 생활을 지원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을 복직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택호 씨는 “다국적자본의 ‘먹튀’ 문제는 한국 정부에만 얘기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며 지방에서 투쟁하다가 서울에 올라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다국적자본은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데도 우리는 거리로 내몰렸다”며 “노동자의 생존권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증언대회가 끝나고 이 씨는 곧바로 서울 중구 외환은행에서 ‘투기자본 규제와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여했다. 그의 조끼에 적힌 “위장폐업 철회하고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구호 뒤로 “위기를 넘어 다 함께 성장”이라는 기업 광고가 보였다.

▲ 전국사무금융노조는 4일 오후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투기자본 규제와 피해배상 요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 장소의 G20 홍보 광고. ⓒ프레시안(김윤나영)

/김윤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