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역류하는 초헌법적 정책”
[한미FTA 토론] “관세협상 넘어 상대국 비가역적 규제완화 강요 장치”
한미 FTA 재협상과 관련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긴급하게 모여 그 문제점을 따져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본부 정책위원회’(범국본 정책위) 주최로 7일 오전 10시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미FTA 재협상의 의미와 현 시점에서의 한미 FTA 협정 재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미 FTA 재협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국회에서 비준돼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국회 비준, 반드시 막아내야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자동차 분야 양보에 따른 미국산 대형승용차, 화물차의 수입 증가 우려를 비롯해, 정부가 ‘이익의 균형’을 맞춘 분야로 든 미국산 돼지고기 및 (복제)의약품 분야의 경제적 이득 역시 미미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에 체결된 한미FTA 재협상의 주요 내용은 △미국 정부의 한국산 승용차 관세 2.5% 즉시 철폐 시기 4년 연장 및 한국 정부의 미국산 자동차 관세(8%) 중 4% 즉시 철폐(나머지 4% 관세는 4년간 연장) △미국산 돼지고기 관세철폐 시기 2014년에서 2016년으로 연장 △(복제)의약품 시판허가-특허 연계 조항 유예기간 18개월에서 3년으로 연장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7일 열린 ‘한미FTA 재협상 의미와 현 시점에서의 한미FTA 협정 재평가’ 토론회 (사진=손기영 기자)
자동차 문제와 관련해,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애초부터 한미 FTA에 따른 자동차 수출 증대 효과는 (한미FTA 협정 원안이 체결된) 2007년 당시에도 크지 않았다”며 “미국의 자동차 관세율이 2.5%로 낮아 가격인하 효과가 크지 않았고, 현대·기아차의 현지생산 증가로 관세철폐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미미했다”며 “하지만 이번 재협상으로 그 효과도 더욱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협상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국 차는 가격이 아닌, 품질로 경쟁하고 있기에 관세철폐가 유예되더라도 영향은 미미하다’, ‘미국 현지생산이 늘고 있어 관세철폐 유예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왜 한미FTA를 추진했느냐. 이는 자기 모순적인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는 ‘자동차 부품 관세는 발효 즉시 철폐되기 때문에 대미 부품 수출이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자동차 부품은 애초부터 발효 즉시 철폐되는 품목이었다. 이번 재협상으로 달라진 게 없다”며 “FTA 체결에 따른 관세 철폐, 환경·안전기준 예외 적용 등의 가격인하 효과는 대형차, 화물차를 중심으로 미국산 차의 수입을 상당한 정도로 증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산 자동차 수입 상당히 증가할 것”
미국산 돼지고기 문제와 관련해, 송기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2007년 한미 FTA를 서명하면서 (발효일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철폐시한을 2014년 1월 1일로 못 박아 뒀는데, 이번 재협상에서 미국산 돼지고기 철폐시한을 2014년 1월 1일에서 2016년 1월 1일로 늦췄다고 하는 것은, 서명 이후 시간이 흘러간 것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 FTA 발효시기와 무관하게 2014년 1월 1일이라는 관세철폐 시한을 못 박아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미국산 돼지고기의 삼겹살, 목살, 갈비살과 돼지고기 소시지 등 이었다”며 “만일 한미 FTA가 2014년이 되도록 발효되지 않을 경우 (관세철폐 시기를 2016년까지로 늦춘 재협상의 추가합의서는) 무효화될 수밖에 없는 조항”이라며 밝혔다.
(복제)의약품 문제와 관련해, 남희섭 변리사는 “복제의약품 시판허가와 관련한 허가-특허 연계는 미국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던 ‘미국형 FTA’에 포함돼 있던 내용인데, 2006년 미국 민주당이 미국 의회 다수당이 된 이후 ‘신통상정책’에 따라 페루, 파나마 FTA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허가-특허 연계는 삭제한 것으로 FTA를 개정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허가-특허 연계 의무이행) 3년 유예라는 ‘체면치례용 양보’만 받은 데, 그쳐 협상력 부재를 보여줬다”며 “허가-특허 연계 제도는 제약사의 연구개발과는 관계가 없고, 다국적 제약사의 시장 이윤을 부당한 방식으로 극대화하는 제도일 뿐이다. 원래 특허권은 ‘사권’이기에 권리침해 여부는 특허권자가 스스로 발견해 ‘손배’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돼지고기-의약품 분야 ‘체면치례용 양보’
한미 FTA로 인해 향후 발생될 사회적 문제 등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어졌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한미FTA 협정은 금융서비스 협정을 통해, 민간보험상품에 대한 허용을 포괄적 허용 방식으로 규정한다”며 “결국 현재 무규제 상태인 민영의료보험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어려워져 한국 건강보험제도 발전에 재앙적 요소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 FTA 협정이 통과되면,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의 영리병원과 약국 등에 대한 규제 조처는 되돌릴 수 없다”며 “한국의 보건의료제도가 한미 FTA에서 예외라는 게 정부의 주장이지만, 추후 경제자유구역이 추가로 지정되거나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도에서 규제가 완화되면 이로 인한 영리병원 허용은 자동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내용이 된다”고 밝혔다.
경제평론가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는 “한미 FTA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특히 금융자유화가 파탄을 맞기 일보직전에 채결됐다. 한미 FTA 금융분야에는 모든 재규제 또는 규제강화를 가로막는 조항들로 가득 차 있다”며 “미국의 FTA는 단순한 관세 협상이 아니라, 상대 국가의 규제완화, 민영화를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 FTA는 역사의 큰 흐름을 거스르는 초헌법적인 정책일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라는 구도 속에서 남북 관계를 최악으로 내몰 것이 틀림 없다”며 “백보, 천보를 양보해도 G20 결과와 WTO 체제의 수정이 이뤄질 때까지 만이라도 한미 FTA 비준을 보류해야 한다. 이제 야5당은 국회에서 총력을 다 해, 한미FTA 비준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