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ㆍ남미 등서 ‘위키리크스 지지’ 가두시위’위키리크스 전쟁’ 2막…사이버전ㆍ여론전 등 전방위 대결 계속
기사입력 2010-12-13 오후 12:18:16
미국 국무부의 비밀 전문(電文)을 폭로한 정보공개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둘러싼 논란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 주말 세계 각국의 수도와 주요 도시에서는 이 사이트에 대한 각국 정부와 기업의 압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는 70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위키리크스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번 시위는 이 나라의 인터넷 자유 옹호 단체인 ‘해적당’(Pirates Party)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도 수십 명이 비슷한 내용의 시위를 벌였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선 약 40명의 시위대가 영국 대사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 역시 영국 당국이 어샌지를 감금하고 있는 것에 항의하고 검열 반대와 인터넷 상에서의 자유를 주장했다. 페루의 수도 리마와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도 위키리크스 사태 관련 시위가 열렸다.
▲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샌지의 지지자들이 11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어샌지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대가 쓴 가면은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정부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려는 투쟁을 그린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서 따온 것으로 촛불시위 등을 통해 한국에도 알려진 바 있다. ⓒ뉴시스
이에 앞서 10일 어샌지의 모국인 호주에서는 500여 명의 어샌지 지지자들이 이 나라 수도 시드니에서 위키리크스와 어샌지에 대한 압력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집회에는 국회의원들도 일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색당 리 리아논 상원의원은 이날 시위에서 “어샌지가 호주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호주 연방정부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어샌지가 지난 7일 영국 경찰에 체포되면서 그를 강간 및 성폭력 혐의로 기소한 스웨덴 검찰과 위키리크스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중단한 업체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진행된 데 이어 이제 불길은 ‘오프라인’으로 옮겨 가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9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나바네템 필레이 유엔(UN) 인권최고대표가 어샌지의 체포와 이 사이트에 대한 정부.기업의 압력을 비판하거나 우려의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사이버 전쟁, ‘아마존’ 유럽 홈페이지 한때 다운
한편 위키리크스를 둘러싼 ‘사이버 전쟁’도 계속되고 있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서버 제공을 중단했던 미국 온라인 쇼핑 사이트 ‘아마존닷컴’의 유럽 몇몇 나라의 홈페이지가 다운됐다고
이들 언론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이 사이트 홈페이지가 밤 9시 15분경부터 약 30분간 멈췄다. 이 사이트들은 곧 복구됐으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온라인 쇼핑 주문이 쇄도할 시기라 피해 규모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위키리크스를 지지하는 해커 집단 ‘익명’(Anonymous)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13일 오전 0시 30분 현재 아마존 측과 해커집단 모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해커들은 지난 9일에도 아마존 사이트에 대한 디도스(DDos)공격을 시도했으나 이 사이트가 갖춘 초대형 용량의 서버 때문에 실패한 적이 있다. 한 해커가 올린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게시글은 “현재로서는 아마존을 공격할 수 없다”며 “예정상 지금 공격해야 할 때지만 우리는 충분한 힘이 없다”고 공격 실패를 시인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해커들은 지난 주에는 어샌지를 기소한 스웨덴 검찰 홈페이지와 위키리크스의 후원 계좌를 동결한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 신용카드 회사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의 홈페이지를 공격해 다운시키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미국 내 여론전도 계속 “어샌지는 간첩” vs “비밀준수 의무 없어”
미국에서는 어샌지에 대한 ‘간첩죄’ 적용을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와 조 리버만 상원 국토안보위원장 등 보수 성향의 공화당 인사들 뿐 아니라 민주당 소속인 다이앤 페인슈타인 상원 정보위원장까지 어샌지를 간첩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데 대한 반론이 연이어 제기됐다.
이미 노암 촘스키 등 진보적 지식인들이 위키리크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한 데 이어(☞관련기사 보기) 중도 보수 시각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역시 사설을 통해 어샌지에 대한 간첩죄 적용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신문은 11일자 사설 ‘위키리크스를 기소하지 말라’를 통해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위키리크스가 아니라 정보를 누출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리버만 의원이 어샌지 뿐 아니라 <뉴욕타임스> 역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나쁜 생각”(bad idea)라고 비판했다. 어샌지는 호주인이라는 것을 언급하며 이 신문은 “정부는 스파이도 아니고 비밀 준수 의무도 없는 사람을 기소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간첩죄는 쉽게 남용될 수 있다”며 지난해 ‘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의 두 로비스트가 단지 미 정부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얘기를 동료들과 공유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례를 언급하고, “이 법은 폐지되거나 더 엄격히 적용돼야(tightened) 하며, 이 법에 위험한 새 생명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곽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