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민주 당론 ‘무상의료’…복지 or 표퓰리즘

민주 당론 ‘무상의료’…복지 or 표퓰리즘
대선·총선 전략설 등 학계·의료계 반응 다양…재원조달 의문 공통적

정치권을 연일 뜨겁게 달구는 ‘복지 아젠다(의제)’가 무상의료로 확대됐다. 공론화에 나선 곳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지난 6일 정책의원총회를 열고 실질적 무상의료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그 방안은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전 국민 입원진료비 본인 부담률을 10%로 낮추고, 병원비 본인부담 상한액을 현행 400만원에서 100만으로 인하하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한다. 진료비 절감 차원에서 포괄수가제(입원)와 주치의제도, 총액계약제 등을 포함한 지불제도 개편도 함께 추진한다. 시민단체와 급진·진보적 성향의 야당이 주장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총망라했다. 무상의료에 소요되는 재정은 8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재원 조달은 국민 동의를 전제로 건보료를 인상하는 등 현재 국가재정 규모로도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 민주당의 설명이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총 19건의 관련 법률 제·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당 정책위는 “무상급식과 함께 무상의료, 무상보육, 대학생반값등록금 등을 시급히 도입해야 할 보편적 복지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상의료는 현 의료시스템의 대대적 손질이 불가피한 핵심 의료 정책이다. 그 대상이 한정적인 무상급식과는 비교되기 어려운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전 국민이 대상이다. 사회적 문제인 고령화와도 맥을 같이한다. 진료비 부담 해소는 국민에게 매력적인 제안이다. 집권을 노리는 제1야당은 이를 주목했다. 필연적으로 오는 2012년 총선과 대선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다. 여야는 이들 선거의 향배를 판가름할 열쇠로 복지를 주목한다. 표퓰리즘 논쟁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도 ‘무상의료’라는 용어 사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필요한 논쟁을 키운다는 우려에서다. 그 중심에 의료가 떠올랐다.[편집자주]

‘재원 조달’에 의문표 단 전문가들

무상의료가 실질적 복지의 개념보단 선거용 이슈로 다뤄진다는 점에서 비판론이 적지 않다. 당장 정책을 실현하는 핵심 요소인 재원 조달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큰 틀에서 정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획기적 건보료 인상이라는 실체적 수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양대 경제학과 사공진 교수(한국보건행정학회장)는 “무상의료 의제화는 무책임한 처사다. 표퓰리즘으로 밖에 해석이 안 된다”며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재정적인 뒷받침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공진 교수는 “급격한 고령화로 의료비가 치솟고 있고, 비급여 진료를 제외하면 실질적 건강보험 보장성은 50%대 수준”이라며 “1%의 보장성을 올리는 데 약 5000억원이 필요하다. 산술적으로도 수십조 원이 필요한데 재원 조달이 가능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사 교수는 “무상의료라는 허구에 매달리지 말고 총액계약제를 비롯한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불제도 개편을 논의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건강보험의 관리 효율화, 보험료 인상을 위한 국민적 합의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이규식 교수(의료기관평가인증원장)는 무상의료를 표퓰리즘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무상의료라는 용어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논의될 이유와 가능성도 없다”며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진보 성향의 전문가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제주의대 의료관리학교실 이상이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무상의료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방법론에는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대권 이슈에 함몰되면서 반복지적으로 무상의료를 활용하고 있으며 정치적 기만을 보였다고 민주당을 성토했다. 이상이 교수는 “건강보험료는 수입에 비례해 납부하는 누진세 성격의 재정조달 방법임에도 정치권은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 재정을 무상의료에 돌린다는 것은 도움이 절실한 타 복지 분야에 피해를 준다. 방법이 틀렸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이 진심으로 무상의료를 실현하려면 건강보험료를 올리는 것이 평등성에도 부합한다”며 “민주당은 전혀 복지적이지 않은 방법론에 주목하지 말고 국민을 설득해 건강보험료를 어떻게 올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복지국가소사이어가 제안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재차 주장했다.

일부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정책위원장은 “민주당의 정책을 크게 보면 건강보험 보성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오는 2012년 총선과 대선 이슈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로써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창보 정책위원장은 “재원 조달이 한 가지 방법으로 어려울 것이고 다양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무상의료가 실현됐을 때 어떻게 낭비적인 요소를 사전에 방지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냉소적인 의사단체…명분 싸움은 미지수

의료계는 이번 무상의료 의제에 완전히 배제됐다는 점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총액계약제와 주치의제를 포함한 지불제도 개편 논의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의약분업 재평가와 의료전달체계 개편, 일차의료 활성화를 통한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영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의료계는 주장한다. 수가 현실화도 단골 요구사항이다.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총액계약제는 논의 주제가 되지 않으며 강행할 경우 파업이 불가피하다”고 선을 그었다. 지불제도 개편 시 파업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또 “고급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통제한다는 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논리를 폈다. 의료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졌는데, 무상 의료가 현 수준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문정림 의협 대변인은 “국민을 위한 건보 보장성 강화라는 방향은 공감하지만 자칫 무상이라는 용어가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합리적 대안 마련과 함께 국민과 의료공급자와의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고 평가했다.

이상석 병협 상근부회장은 “국민에게 더 많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이상은 좋지만 재정이 뒷받침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며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과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고 높일 수 있느냐는 다른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의협 등 의료계가 구상하는 대안은 ‘다층적 의료시스템’ 구축이다. 차상위계층과 차차상위계층에 대한 건보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이다. 반면 경제력을 갖춘 중산층 이상은 의료 선택권을 넓힌다. “부잣집 아이에게도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맞느냐”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다만 일차의료 활성화라는 의료계의 대명제가 국민의 진료비 부담 해소라는 명분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의료계는 이미 한 차례 파업(의약분업 당시)으로 국민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바 있어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특정직군의 이기주의로 비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약분업 당시에 의료계는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명분에서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