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고 전문의약품 광고, 의사가 ‘처방’ 하지 않으면 그만?

의사들이 ‘약 광고’를 무서워하는 진짜 이유는…
[기고] 전문의약품 광고, 의사가 ‘처방’ 하지 않으면 그만?
기사입력 2011-01-10 오후 12:32:30

2012년 어느 날 폐암으로 진단된 OOO 환자가 A 제약 회사 제품인 X 항암제를 써 달라고 나에게 부탁한다.

이 환자의 나이와 상태 등을 고려하면 Y 약제가 더 좋겠지만, X 약제도 사용할 수 없는 약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Y 약제를 사용하려면, 환자에게 긴 설명이 필요할 것이고 잘못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냥 X 약제를 사용하여 환자를 치료하기로 결정한다. 그 환자는 혈압약으로는 유명 탤런트가 광고하는 Z 약제를 써 달라고 한다. 나는 혈압약도 환자가 원하는 대로 Z를 처방해준다. 물론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가 될 정도의 처방은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전문의약품 광고를 허용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전문의약품 광고가 허용되면, 위와 같은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질 것이다.

전문의약품 광고는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문의약품은 환자가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의사가 처방을 하여야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란 게 그 이유다. 즉, 광고를 보고 환자가 원한다고 하더라도 의학지식이 있는 의사가 그 약을 ‘처방’ 하지 않으면 구입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업의 광고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야말로 무조건적으로 더 많은 상품이 팔려, 더 많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기업 마케팅의 일부다. 그래서 더 많은 소비를 위하여 기업들이 천문학적 자금을 퍼 붓는 것이 바로 ‘광고 시장’ 이다. 그리고 의료 분야를 이 광고 시장에 편입시키겠다는 것이 이번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침인 것이다.

전문의약품의 광고는 당연히 전문의약품의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전문의약품 광고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환자가 의료진에게 특정 약제의 처방을 요구하도록 할 것이다. 물론 이 약제를 처방하는 목적은 환자가 건강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광고를 낸 회사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의사가 처방하지 않으면 그만” 이라는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1시간 대기 5분 진료가 일상화된 나라에서 환자가 요구하는 약제가 환자에게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할 시간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물론 그 약제가 환자에게 전혀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해가 된다면 어떻게든 설득을 하여 처방을 하지 않겠지만, 위의 경우처럼 최선의 약제는 아니라도 사용할 수 있는 약제라면 의사는 그대로 처방을 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여러 사회적 이유로 의사의 도덕적 권위가 실추된 여건 속에서 환자의 의견과 다른 의학적 권유를 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나 자신에게 자문하여 보아도, 광고를 많이 하는 약제를 더 많이 처방할 것이 틀림없다. 환자의 건강이나 약제의 우수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말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한국에서 정치인 다음으로 욕을 많이 먹는 집단이 의사이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의사들에게는 환자의 건강이 일차적인 관심사이다. 반면 기업은 이윤 추구가 가장 큰 목표가 아닌가? 환자에게 사용할 의약품을 의료진과 제약 회사 중 누가 결정하는 것이 환자에게 더 유리할까?

경제적인 부분을 한번 검토해 볼까? 분명히 전문의약품 광고로 이익을 얻는 집단이 생기게 될 것이다. 광고를 개제하는 대중매체와 광고 회사는 매출이 증가할 것이다. 광고를 거의 도맡아 할 다국적 제약 회사의 매출도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증가될 ‘이윤’ 은 어디에서 나오게 될까?

일부는 의약품 광고 시장에서 도태되는 국내 소규모 회사들이 부담하게 될 것이다. 전문의약품 광고의 허용은 제약 회사의 독점화를 더 확대시키고 국내 소규모 제약 회사들의 입지를 더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부담을 떠안아야 할 사람들은 소비자, 즉 환자들이 될 것이다.

즉, 전문의약품 광고가 허용되면 우리 국민들은 의학적 이유와 상관없이 더 비싼 의약품을 더 많이 찾게 되어 더 많이 소비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개인의 의료비 증가와 국민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도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32% 가량이 약제비로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들이 더 많이 지출한 의료비가 대중매체와 광고 회사 및 다국적 제약 회사로 흘러가는 것이 전문의약품 광고의 경제적 효과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 악화는 결국 보험료를 올리거나, 보험 혜택 범위를 줄이거나, 병·의원에서 신청한 보험 급여를 삭감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문의약품 광고는 일부 언론과 광고 회사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국민의 건강을 아무런 안전망 없이 희생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유영진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암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