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국내법 충돌조사 4년째 안해
[한겨레] 정은주 기자
등록 : 20110717 21:15
정부와 한나라당이 8월 임시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서두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자유무역협정 발효가 지방자치단체 조례 등 국내 법령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태 파악과 준비 작업은 2007년 협정 타결 이후 전혀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꼼꼼한 분석과 준비 없이 비준동의안 처리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17일 외교통상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2007년 이후 개정되거나 새로 제정된 국내 지자체 조례 등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충돌하는지에 대해선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았다. 정부는 2006년 11월 전국 지자체 조례를 전수조사해 한-미 협정의 투자·서비스 개방에서 제외되는 ‘비합치 조처’(10개 분야)에 포함되는 조례 26개를 발표한 바 있다. 비합치 조처란 미국 투자자가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게 진출할 수 없는 예외적인 분야를 말한다. 이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정부는 학교급식을 지원할 때 국내 농축산물을 우선 사용하도록 하는 조례(부산 등 8곳) 등이 한-미 협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적인 조처라고 국회에 보고했다. 외교부는 2006년 이후 진행된 실태파악 작업을 묻는 박주선 의원(민주당)의 질의에 최근 ‘2006년 전수조사 이후 진행한 건 없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보내왔다.
지난해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한-미 협정의 적용 대상인지 아닌지 여부도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태다.
협정 상대방인 미국 쪽 정보에 대해선 더욱 어두운 편이다. 우리나라 지자체 조례는 상위 법규와 충돌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미국의 경우엔 헌법상 연방정부에 권한을 부여한 사항을 빼고는 주정부가 권한을 갖고 있어 주정부 법령이나 조처가 한-미 협정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외교부 관계자는 “자유무역 협상 당시 미국 측이 주정부의 비합치 조처가 너무 많아 협정문에 모두 열거하기 불가능하다며 포괄 유보를 요구해 우리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며 “미국 측이 상세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 한, 우리 쪽에서 일일이 모든 정보를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이나 투자자가 미국에 진출할 때 시행착오를 겪거나 정보 탐색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정부는 또 2007년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 타결 당시 ‘현재의 개방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약속한 우리나라 국내법의 개정 여부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개방 수준을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법령을 강화하면 협정 위반이라서 이런 사례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남희섭 한-미 자유무역협정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충돌하는 지자체 조례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협정이 발효된 뒤 이해관계자들이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2007년에 도입된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도 외교부가 뒤늦게 제동을 걸면서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