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부자, 월급쟁이만큼만 내라’
오바마 ‘버핏세’ 추진
[한겨레] 이형섭 기자
»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간 100만달러(11억원) 이상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이른바 ‘버핏세’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 정부의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를 보전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부자 증세’ 논란이 더욱 거세게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 등은 오바마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발표할 장기 재정적자 감축안에 ‘버핏세’ 신설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17일 보도했다. 부자들에게 최소한 ‘월급쟁이’만큼의 세율로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는 방안이다.
이 제안은 지난달 언론 기고를 통해 ‘슈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내도록 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워런 버핏(사진)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이름을 따 ‘버핏세’라고 이름 붙일 예정이다. 버핏은 당시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지난해 나는 693만8744달러(74억원)의 세금을 냈는데, 이는 과세소득의 17.4%에 불과하며 평균 36%의 세금을 내는 우리 사무실 직원들보다 낮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월급 노동자들은 소득에 따라 10~35%의 세금을 내는데, 중산층은 보통 15%나 25%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돈을 투자해 얻는 자본이득이나 펀드의 성과보수 등 이른바 ‘머니 게임’에서 벌어들이는 돈에는 15%의 세금만 부과된다. 또 10만6800달러를 초과하는 연봉에는 고용안정에 쓰기 위해 거두는 ‘고용세’가 따라붙지 않는다. 따라서 백만장자들은 월급쟁이보다 더 낮은 세율의 세금을 내는 게 일반적이다.
버핏세가 신설되면 납세자의 0.3%인 45만여명이 현재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것으로 <뉴욕 타임스>는 전망했다. 하지만 이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증세에 ‘알레르기 증세’를 보이고 있는 공화당의 저항을 넘어서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공화당은 증세가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의료보장 제도를 축소하면서 민주당 내부와 지지자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는 오바마에게 부자 증세는 공화당을 압박하고 소시민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훌륭한 무기다. <뉴욕 타임스>는 내년 재선을 노리고 있는 오바마가 ‘포퓰리스트’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프랑스가 연간소득이 50만유로(7억6400만원)가 넘는 고소득자에게 3%의 추가세율을 적용하겠다고 밝히고, 스페인 정부도 부유세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부자 증세’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