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황당한 외교부 “9.11 테러 때문에 비자쿼터 합의 못해”?

황당한 외교부 “9.11 테러 때문에 비자쿼터 합의 못해”?
김현종 전 본부장 주고받은 문건은 “4년 후에야 알아”
기사입력 2011-09-30 오전 8:20:26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삼성전자 해외 법무담당 사장)이 지난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본협정 체결 당시 전문직 비자쿼터와 관련된 외교서한 두 통을 공개해 논란이 일고있다. 이런 가운데, 이를 둘러싼 외교통상부의 해명이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나 실소를 자아내고 있다.

외교부는 관련 행정소송을 통해 두 건의 외교서한 존재가 알려진 후 가진 29일 정례브리핑에서 “외교부가 서한의 존재를 (그 서한이) 재판부에 제출된 후에야 알았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당시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던 FTA 문제와 관련된 중요 문서의 행방을 전혀 몰랐다는 얘기다.

이에 더해 지난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2007년 본협상 당시 협상 수석대표)은 지난해 말 열린 국회 외통위 현안보고에서 ‘전문직 비자쿼터가 합의되지 않았다’는 외통위원들의 지적에 “그 사이에 9.11 테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상식 밖의 대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9.11 테러는 한·미 FTA 본협상이 진행되던 2007년 당시보다 6년 전인 2001년에 발생한 사건이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김종훈 현 본부장. ‘독재’라는 비판까지 들으며 한·미 FTA의 주역으로 활약한 둘의 존재감이 올해 ‘이상한’ 문서를 통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연합

외교부가 외교서한 존재 몰라

29일 이시형 외교부 통상교섭조정관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전문직 비자쿼터와 관련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28일 열린 행정소송에서 김 전 본부장은 미국 측에서 김종훈 당시 수석대표에게 보낸 문건 2건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이 조정관은 “(외교부가) 그 서한의 존재를 재판부에 제출되고 난 뒤에 알았다”며 “지금까지 그 편지의 존재에 대해 실무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협의(한-미 간에 1만5000개 이상의 전문직 비자쿼터를 발급하기로 약정한 문서 협의)가 있었는지, 합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시 통상교섭본부 수장이 미국 측 협상 담당자와 두 건의 문서를 주고받았음에도, 외교부 내에서는 이 일을 4년 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얘기다.

이 조정관은 “그 편지가 양측의 공식적인 합의 또는 협의의 문서로서 오간 사안으로 우리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며 “우리도 어떻게 김 전 본부장이 당시의 원본을 갖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상당히 궁금하다”고 해명했다.

의문은 또 남는다. 김 전 본부장이 재판부에 제출한 두 건의 외교문서는 수신인이 김종훈 당시 협상 수석대표로 적혀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김현종 전 본부장이 아니라 김종훈 현 본부장이 이 편지의 존재를 인지해야 맞다. 그러나 김종훈 본부장은 이 편지의 존재를 모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 조정관은 “통상적으로 서한에 대한 초안을 잡을 때 명의를 ‘누가 누구한테 보내는 것이 적정한지’를 서로 맞춘다. 그 편지가 어떤 경로를 통해 김현종 당시 본부장한테 전달이 됐다고 가정한다면, (단순히) 초안으로서의 문서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가 (미국 측이 정하는) 차원에서 김종훈으로 적은 것 같다”고 추정했다.

첫 문서의 발신자가 토니 에드슨 당시 미국 국무부 비자담당 부차관보인데 반해 두 번째 문서의 발신자는 한 단계 높은 크리스토퍼 힐 동아시아태평양 담당차관보인데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이 조정관은 “짐작컨대, 김종훈 현 본부장에게 보내려면 이 사람(토니 에드슨) 이름으로 하는 것 보다 이 사람(크리스토퍼 힐) 이름으로 하는 게 맞겠다고 결정해 우리 쪽에서 김현종 당시 본부장이 요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조정관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외교부는 당시 온 나라의 여론이 쏠린 중대한 외교협정을 두고, 특히 첨예한 논란이 됐던 전문직 비자쿼터 문제의 진행과정을 전혀 몰랐다는 말이 된다. 뒤집어서, 외교부가 이런 상황을 모두 알고도 국회와 국민에게 사실을 숨겨왔을 수도 있다는 추정 또한 가능한 대목이다.


▲김현종 전 본부장이 제출한 2007년 당시 외교 문서. 수신인이 ‘김종훈(Kim Jong-hoon)’으로 표기돼 있으나, 외교부는 이 문서의 존재를 김현종 전 본부장만 알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민변 제공

9.11 테러가 한·미 FTA 협상 과정서 발생?

외교부의 이해되지 않는 대응은 이뿐만이 아니다. 다시금 FTA를 둘러싼 외교부의 상식 밖의 대응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박주선 민주당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를 보면 과거 외교부가 전문직 비자쿼터 문제를 두고 황당한 대응을 한 사례가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7일 한·미 FTA 협상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는 자리인 국회 외통위에서 김종훈 본부장은 ‘전문직 비자 연장 문제에 대해 미국 측에 강력하게 요청하지 않았느냐’는 박주선 의원의 질문에 “우리가 3년 전 협상 때 그것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만, 그 뒤에 미국의 전반적인 제도가 바뀌었다”며 “특히 그 사이에 9.11이라는 테러 사태가 있었다”고 답했다.

9.11 테러는 2007년 한·미 FTA 협상과 전혀 상관없는 시기인 2001년에 발생한 사건이다. 물론 외교 전문가인 김종훈 본부장이 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 미국 국토안보부가 9.11 테러 이후로도 계속된 국지적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당시 전 세계 국제공항의 보안검색을 강화하는 등 강도높은 대응책을 마련한 것을 일컬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FTA 협정문 완성 후 비자쿼터 문제를 풀겠다”던 정부의 호언장담이 결국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이 발언은 그간 ‘전문직 비자쿼터를 1만5000개 수준인 호주보다 더 많이 받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던 정부가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이유에 대해 추궁당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협상 체결 후인 2007년 7월 5일 한·미 FTA 특위에서 당시 김종훈 본부장(당시 수석대표)은 “(전문직 비자쿼터가) 상당히 깊이 있게 논의됐다. 미국 행정부는 여러 채널을 통해 측면에서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했다”며 “다만 이 문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되면 미 의회로부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얘기를 꼭 덧붙였다”고 답했다.

이처럼 은밀한 문제이기 때문에 공개적인 서한을 주고받진 못하고, 구두로 서한에 준하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2010년의 황당한 답변은 결국 당시 정부의 주장이 의미 없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미국 정부와의 구두 약속은 당시 논란이 된 바와 같이 전혀 실효성 없었으며, 한·미 FTA 협상체결을 위해 정부가 국회와 국민을 기만한 주장에 불과했다는 의견이 힘을 받는다.

이번 논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김현종 전 본부장이 지난해 12월에 낸 책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주장한 “2007년 6월 미국 행정부에서 (전문직 비자쿼터와 관련된) 서한을 받았다”는 주장을 확인한데서 시작됐다.

민변은 그간 “외교서한이 없다”던 외교부 설명과 정반대되는 정황을 확인하고, 관련 문서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관련 소송에서 김현종 전 본부장은 “한국이 미국의 전문직 비자를 취득하도록 협조하겠다”는 토니 에드슨 당시 부차관보 명의의 외교서한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