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자살하는 사회”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보장예산의 획기적 증대가 필요하다
정부는 9월 22일 117조 5천억원에 달하는 2004년도 예산편성안 발표하였다. 정부는 내년 재정수입이 2.1%만 증가할 것이라 전망되어 균형예산을 전제로 최선을 다했으며, 그 중 사회복지분야에는 1조여원, 9.2%에 달하는 예산 증가를 허용함으로써 취약계층 보호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정부가 ‘신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진지한 고민을 했는지, 그 고민의 결과를 내년도 예산안에 얼마나 반영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벼랑 끝에 내몰린 수많은 빈곤층이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처절한 절망과 소외감을 이기지 못하여 죽음을 택하는 야만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현대국가의 책무가 유독 우리 나라에서만은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이 실상 앞에서 더 이상 분노할 여력도 없다. 더군다나 개발독재와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의해 왜곡된 한국경제의 구조를 개혁하는 한편, 그간 철저히 유린되어왔던 분배정의를 확립하여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어냄으로써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성장 철학을 기대했던 현 정부 아래에서 이러한 빈곤층의 고통이 예산을 통해 또다시 외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참담한 심경을 떨칠 수 없다.
IMF 경제위기 이후 DJ 정부 하에서 사회보장 예산의 증액이 과거에 비해 진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IMF 이후 대량실업사회를 맞아 위기에 대처하는 기본적 예산 수준이었으며, 변화되는 사회구조에 조응하고, 빈곤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었다. 그러한 결과, 현 시점에서 빈발하는 생계형 자살과 신빈곤계층의 온존으로 인한 사회적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 정부가 빈곤문제를 비롯한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DJ 정부에 비해 오히려 후퇴되었음을 확인하면서, 특히 이번 예산안을 통해 드러난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대해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위기적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신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며, 우선적으로 예산안을 통해 빈곤해소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확인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민의 생존권에 앞서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국민들의 고통을 방치하고서 균형재정을 추구하고 자주국방을 실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정부는 세입의 감소 등 사회보장예산을 더 확보하기 위한 여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국민의 생존권의 보장, 빈곤문제의 해결이라면 적자재정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기존 제도에 필요한 예산을 순증주의(純增主義) 방식을 통해 약간씩 늘이는 정도로 예산안을 확정하여 국회에 제출하였다. 우리는 법과 제도의 혁신을 통해 사회안전망과 소득보장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며, 이에 합당한 복지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점진적 접근으로는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과 고통을 지속적으로 목도해야 함이 명백하다.
우리는 내년도 정부의 예산편성 기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과거의 구태의연한 예산편성의 방식으로는 신빈곤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16대 국회가 마지막 예산안을 심의함에 있어, 국민들의 삶의 절망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회의 책임을 다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2004년도 예산안 심의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핵심적 요구사항을 밝힌다.
우리의 요구
1. 정부는 균형재정의 환상을 깨고 경기회복과 빈곤층의 사회안전망 강화를 동시에 꾀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예산의 확충을 근본적으로 검토하라
1. 차상위계층 및 비수급 빈곤계층 320만명의 부분급여를 위해 최소 5천억원 이상의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실질적인 생활고의 해소를 보장하라
1. 정부는 자활의지와 능력이 있는 빈곤층을 위해 사회적 일자리 및 자활사업을 위한 적정한 예산 확보를 행하라
1. 정부는 공공보건의 확대를 꾀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이와 관련된 예산을 삭감하는 어처구니 없는 예산 안배를 시정하고 적어도 공공보건 및 의료체계의 확충을 위한 참여복지 청사진의 제시와 함께 적정한 예산을 투여하라
1. 정부는 해체되는 가족의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아니면 즉각적인 지원을 행할 수 있도록 현재 거의 전무한 가족지원책을 새로이 확립하여 아동수당을 포함한 가족지원책에 예산을 배정하라
1. 정부는 이러한 사회복지예산의 확대와 제도적 확충을 위하여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공적 민간 인력을 확충함은 물론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나아가 복지기관과 시설에 대한 단계적 확대 계획을 제시하라
1. 정부는 올 정기국회에서 이러한 예산의 확충은 물론, 아울러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아동복지법, 영유아복지법, 모자복지법,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등을 전면적으로 개정하여 법률에 의거한 제도의 진전을 꾀하고 이를 공고화하라
2003.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