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市場의 힘과 민주주의

市場의 힘과 민주주의

김진국(의사, 인의협 공동대표))  

두 주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이제 권력은 시장(市場)으로 넘어 간 것 같다”는 고백을 했다. 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들만이 가진 힘이란 것은 굳이 헌법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상식에 속하는 일일진대, 도대체 어떤 절차를 거쳤기에 소리소문 없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는지 머릿속이 휘황해진다. 대통령 스스로 권력을 넘겨 준 건지, 아니면 시장의 힘에 짓눌린 탓에 빼앗긴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 무기력한 고백조차 성에 차질 않아 기업인을 ‘독려하기 위한 덕담’수준을 넘어 이제라도 당장 ‘권력을 실질적으로 시장에 넘기기’라며 대통령을 몰아붙이는 언론도 있다. 그러나 권력을 넘기네 마네 다툴 것도 없이 이미 세상은 온통 돈의 힘이 주름잡는 시장판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빈곤층이 500만명이 넘어가도 정부와 여당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은 시장의 법칙만큼은 절대 훼손할 수 없다는 통치철학 탓일 게다. 경제인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늘 사면의 0순위인 것도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우리 사회만의 도덕률이다. 대기업 사주의 심기를 잠시, 그것도 아주 잠시 불편케 했다는 이유로 관련 대학의 총장은 물론 청와대와 장관까지 나서서 대학생들을 중죄인처럼 나무라는 세상이 아닌가. 이쯤 되면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는 대통령의 고백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여·야 정치세력 사이에서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선거나 정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과도 같다.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은 국민들이 되찾아 올 수도 없다. 시장은 주권자인 국민들이 가진 유일한 힘, 표로 심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노라고 외쳐 온 것은 그 누구도아닌 바로 대통령 자신과 참여정부였음을. 그리하여 스스로 권력을 내놓았노라고 자화자찬하면서 통제불능의 언론권력과 검찰권력을 개혁하겠다며 칼을 빼던 정부가 바로 참여정부였음을. 그러던 정부가 시장의 권력은 누가,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시장의 권력은 누가 견제하지 않더라도 시장 내부의 자정력이 있기에 절대 부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인가? 그런 무모한 확신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정부는 대답 대신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시장’이라며 시장 예찬론에 흠뻑 젖어있다. 그래서 교육과 의료를 비롯하여 민생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시장판에 떠넘겨 해결하려 들고 있다.

최근에 한 헌법재판관은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부동산 임대시장의 질서와 법칙을 온 몸으로 설명하고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역학관계를 이용하여 임대소득을 축소 신고하도록 강요하며 탈세까지 하는, 엄연한 범죄행위를 저질렀음에도 그는 임대소득을 일반적으로 낮춰 신고하는 것은 세무관행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조사를 해야 할 국세청이나 형벌권을 가진 정부는 시장의 권력 앞에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린 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오로지 국정에만 전념하고 있다. 관행과 관습이 헌법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부당한 관행과 관습이 판을 쳐도 정부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 사회의 시장이란 곳이며 시장의 법과 질서는 보통 사람들의 법 상식과는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 나라 최고의 법관이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약육강식이라는 야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의 질서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간 것 같다는 말은, 게다가 그 과정이 국민들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진행된 것이라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또 다시 위기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국민들은 지난 선거에서 시장(市場)이란 권력을 선택한 적이 없다.

영남일보 2005.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