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생명 걱정’ 도 무역장병이라니

‘생명 걱정’도 무역장벽이라니

[야!한국사회] 한겨레  

  

▲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의사

  

어떤 식당의 음식에 문제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거꾸로 확실히 안전하다는 증거도 없다고 치자. 게다가 인근 다른 식당에서 종류는 같지만 안전한 음식을 팔고 있다면? 상식적인 사람의 선택은 물으나 마나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그렇고, 세계무역기구가 그렇다.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결정했다. 되먹이 동물로 만든 사료를 소에게 먹이지 못하게 했고, 생후 30개월이 안 된 소에서 내장·등뼈 등의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한 쇠고기는 ‘먹었을 때 광우병에 걸린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이 그 근거란다. 정부는 규정보다 더 엄격하게 모든 뼈를 제거하기로 했다고 자랑까지 한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수역사무국 규정 자체에 있다.

소 사료로 되먹이 동물만 금지하면 된다고 규정한 것부터가 비과학적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광우병 예방방법은 소에 대한 동물성 사료 전면금지”라고 말한다(광우병 위협에 대한 이해, 2002. 6). 되먹이 동물이 아닌 돼지나 닭이 소를 먹는데, 소에게 다시 돼지나 닭을 먹이면 먹이사슬에서 광우병의 위험이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은 이 규정을 채택하고 있다.

소를 채식동물로 알고 계시는 ‘상식인’들은 이게 뭔 말인가 하실 수도 있겠다. 광우병 이해를 위한 사전지식은 이렇다. 광우병은 소가 소나 되먹이 동물의 버려지는 ‘뼈와 고기’를 먹고 자라서 생긴다. 공장식 축산방법으로 사육되는 소들은 빠르게 살을 찌우기 위해 ‘육식동물’이 되었고, 현재도 미국에서는 되먹이 동물 사료만 금지되었을 뿐 사정은 같다. 간단히 말해 소를 채식동물로 돌려놓자는 게 세계보건기구의 권고다. 그런데 국제수역사무국은 이를 거부한다. 왜? 미국의 거대 축산자본에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국제수역사무국의 다른 규정들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송아지는 안전하다? 광우병에 걸린 소가 증상을 보이려면 4~5년이 걸린다. 30개월에 소를 잡으면 광우병 검사를 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이 소가 광우병에 걸렸어도 알 도리가 없다. 살코기는 괜찮다? 광우병에 걸린 인간의 ‘근육’에서 광우병의 원인물질인 프리온이 나왔다는 논문이 미국 최고권위의 의학저널에 실렸다.

인도의 유명한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의 말을 빌면 “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은 카길협정”이다. 미국 최대 곡물다국적기업 카길사의 부회장이었던 댄 암스투츠가 작성한 협정 초안이 그대로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의 수역검역협정(SPS)이나 국제수역사무국 규정도 미국 거대 축산기업의 이해를 그대로 반영했다. ‘안전하지 않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곡물이나 육류의 수입 거부는 ‘무역장벽’이고 ‘제재 대상’이라는 게 이들 협정의 원칙이다. 인체에 안전하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을 때는 금지하라는 것이 의학에서의 ‘신중의 법칙’이고, 찜찜한 음식은 안 먹는 것이 상식이다. 소는 채식동물이라는 것도 상식이다. 그러나 이윤 앞에서 이 상식은 몰상식이 되고, 무역장벽이 된다.

유럽연합은 미국소에 성장 호르몬이 쓰이고 있다며 수입을 거부했고, 무역 제재를 받았으나 차라리 벌금을 내겠다고 버티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앞장서서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에게 쇠고기 수입 문제는 몇몇 재벌에게 이익이 된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내 ‘상식’으로는 정부의 첫째 의무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인데 말이다.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