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미 FTA 전문가진단 의약품 의료 : 보험수가 규제할 정책권 포기 (우석균)

한겨레 기사등록 : 2007-05-31        
한-미FTA 협정문 전문가 진단  

[의약품·의료] 보험수가 규제할 정책결정권 포기

의약품 특허강화·약제비적정화 무력화
국민부담액 연 1조원 늘어 전면적 후퇴

  

» 보험수가 규제할 정책결정권 포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세계적으로 의약품의 보험 적용과 가격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규정한 두번째 자유무역 협정이다. 첫 번째 사례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이 규정 때문에 의약품제도(PBS)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미-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보다 우리 쪽에 훨씬 더 나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특허 의약품 규정이 그렇다. 미-오스트레일리아 협정에서는 특허약품 중 10% 남짓한 “혁신적 의약품”만 높은 약값을 주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한-미 협정은 특허약품 전체를 혁신적이라고 규정하여 모든 특허약품에 높은 약값을 주도록 규정했다. 한국 정부가 거부했다던 “선진 7개국 평균약가”적용도 단어만 바뀐 “경쟁적 시장 도출가격”이라는 말로 규정되었다. 의약품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또 한-미 협정에는 미국 정부와 제약회사가 보험 적용과 약값 결정에 간섭할 권한을 오스트레일리아보다 더 많이 보장하고 있다. 이의제기 기구 설치가 대표적 예다. 정부는 이를 복지부내 기구이고 원심파기 권한이 없으므로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협정문에는 복지부와 무관한 기구 설립을 규정하고 있고, 원심파기 권한은 언급도 없다. 다른 모든 부문과 마찬가지로 의약품 분야에서도 한-미 양국의 위원회가 설립돼 의약품 및 의료기기 관련 정책을 심의한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와 다국적 제약사의 도장을 받지 못하면 정책집행이 어렵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례보다 악화된 것은 또 있다. 한-미 협정은 의약품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회사에도 제약회사와 똑 같은 권한을 부여했다. 현재 보험 재정에서 1조원이 지출되는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의 진단 기기는 물론, 난청 수술에 쓰이는 2000만원짜리 인공 와우관처럼 값비싼 치료 기기에 대한 보험수가를 규제하는 것이 힘들게 된다. 의료비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 대한 정책 결정권의 포기다.

의약품 특허관련 협정에는 미국 민주당과 부시 행정부가 합의한 “신통상정책”에서조차 독소조항으로 지적한 의약품 특허강화 조항을 핵심내용으로 한다.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은 잘한 협상이라고 자랑했지만 세계 여러 나라 전문가들은 한-미 에프티에이 의약품·의료기기 협정을 최악이라고 말한다. 의약품 협정으로 말미암은 국민 부담액은 의약품 특허 강화로 연 5000억원, 약제비 적정화 방안 무력화로 연 5000억원 이상이 예상된다. 4인 가족에 연 10만원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한-미 협정은 민간 의료보험 상품 규제철폐 조처를 담고 있다. 현재 민간 의료보험은 연 8조원 규모로 공적 건강보험을 위협할 정도다. 반면 규제는 거의 없어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보험료 대비 지급율이 80% 정도인 데 반해 우리는 60% 정도이고 표준화도 안 돼 있다. 정부도 표준화와 규제 필요성을 과제로 삼았다. 그러나 이 개혁과제는 물건너 갔고, 보험사들은 사회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한-미 협정에는 이 밖에도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경제자유구역의 병원 설립을 서비스 개방으로 지정하여 의료제도 이원화를 고착화하고, 담배 관세 철폐로 정부의 금연정책 집행을 힘들게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국익에 부합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반대 쪽에 서야 할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협회(PhRMA)와 보험회사협회(AIA, ACLI)가 한-미 협정에 전적인 환영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협정인가?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